〈 70화 〉70편
간발의 차. 못 피하면 죽었다.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체력, 파문, 쌓아온 모든 힘을 바닥까지 긁어내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면.
의도대로 혈귀를 선제공격했다면 당했다. 갈비뼈는 물론 내부 장기까지 뜯겨나가고도 남았을 공격의 피해가 겉의 부상 정도로 그쳤다. 무의식 덕에 멈춘 선택이 낳은 결과다.
'아프다.'
가벼운 부상은 아니다. 벌어진 상처로 새나온 피가 피부를 타고 흐른다.
조금 전까지와는 완연히 다른 힘을 보인 그 혈귀는 멀리 떨어져 노려봐온다. 쪼그려앉은 채 손가락에 묻은 핏물과 살점을 정성스레 핥는다. 그 모습은 제 몸을 손질하는 길고양이와 닮았다.
변화하기 전의 혈귀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속도에 적응해 어찌 막아내던 그 때는 겉보기로는 대등했다.
실상은 약간 밀렸다. 한 방의 주먹마다 실은 파문은 현재 겐야에게 결코 가벼운 양이 아니었다. 그걸 때려넣었다. 혈귀는 접촉한 부위가 슬쩍 타들어가는 것도 같다가, 금세 재생해버렸다.
지금의 저 짐승은 아까까지의 전력을 월등히 상회한다.
"놀자"
다시 허벅지를 팽창시키는 녀석. 막는다. 막아야한다. 생각만은 간절한데
스컥
"허억!"
또 당했다. 대퇴부가 불에 덴 듯 통증이 덮친다.
싸움은 이미 일방적이었다. 크게 당할 뻔한 이후는 완전한 수비. 선제공격, 또는 최소한 틈을 노려 맞받아쳐야한다고 잠깐은 생각했다. 몸은 판단을 내려버린 것이다. 막기만 해도 힘들다고.
두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감시했다. 파문 탐지 또한 혈귀의 움직임을 구석구석 파악할 정도로 활성화했다.
따라갈 수가 없다. 날아드는 그 순간의 움직임, 속도는 보고 반응할 수준을 넘어섰다. 무의식, 예측, 예지, 뭐라고 해도 좋을 극한의 집중력이 아니면 진작 죽었다.
노린다면 움직이기 직전. 착지하고 나서 다음 도약을 위해 방향을 정하고 뛰어오르는 그 시점을 찔러야 맞다.
겐야 자신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전력을 발휘해도 그 틈을 잡을 속도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큭"
어깨 언저리를 베였다. 자상과는 다른 거친 참격. 오른 팔에 힘이 빠진다.
"놀자아"
저 혈귀는 이제 먹잇감을 사냥하는 놀이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번득이는 눈알은 온전히 겐야의 전신을 훑고 있다.
분명 정직한 직선의 공격. 그런데도 부상은 피할 수 없다.
핏
옆구리의 옷이 뜯기고 살을 약탈당한다.
압도적으로 속도의 차가 나버리니 속수무책. 어떻게든 애를 써봐도 상처는 늘어간다. 체력은 떨어진다. 혈귀의 맹습은 도리어 기세가 오른다. 막막하다.
'차라리 총이라도 있었으면."
평범한 탄환으로는 별 피해도 없겠지만 아무 것도 못하는 지금보다는 나았을지 모른다. 최소한 시간이라도..
아쉬워도 소용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일륜도. 사부님의 말씀대로라면 한 번은 시도할 수 있다. 파문을 담아 던진다는. 될까?
부정적이다.
짧은 수련. 총을 다뤄본 기간보다도 단기간이었다. 검술은 후순위였다. 하물며 투척이라니. 고정된 목표물도 아닌 무식한 민첩함을 자랑하는 혈귀를 노리는 건 도박이다.
이도 저도 못하는 사이 부상은 는다.
위기다.
"더 해봐. 더."
재촉하며 다음을 노리는 소녀.
겐야는 움직일 수 없었다. 버티고 버티다 이제는 운신이 불가해졌다. 꿇어앉아 정지한다. 팔다리가 힘을 잃고 늘어진다. 다음은 없다.
야성을 드러내며 웅크리는 혈귀. 부푼 저 다리의 탄력을 터뜨리는 순간이 끝이다.
그녀의 입이 곡선을 길게 그리며 한껏 미소짓는다.
스걱
그리고 떨어진다. 머리가. 웃음이.
샛노란 한 줄기 섬광 아래로.
겐야가 수 차례 몸으로 혈귀의 공격을 받아내던 도중, 젠이츠는 일어났다.
더 이상 떨지 않는다. 두 눈은 감겨있다.
지나칠 정도의 고요함.
광적으로 몰아치는 혈귀도, 눈 앞의 적에 몰입한 겐야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는 자세를 낮춘다. 발검 직전의 태세. 손은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듯 팽팽한 긴장 상태.
소리를 듣는다.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순간. 겐야의 발걸음. 혈귀의 착지. 할짝이는 소리. 부풀어오르는 근육의 수축음.
꾸구국
몇 번이고 듣는다. 귀에 박힌다. 혈귀의 근섬유가 조이고 풀어지기까지의 전 과정, 그 한 순간의 소리가.
털썩
겐야가 주저앉는다.
젠이츠는 손잡이를 움켜쥔다.
혈귀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과도하게 허벅지를 팽창시킨다.
찰나. 조여드는 그 소리가 들리고 혈귀의 위치가 고정될 수밖에 없는 한순간.
"번개의 호흡, 제 1형"
인간의 몸으로 소리의 속도를 넘보는 절기.
"벽력일섬"
초속의 기술은 선을 긋는다. 시작에서 끝까지. 혈귀의 목줄기를 사이에 두고 일직선의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쾅
혈귀는 들었다. 시야가 반전하며 빙글 돈다. 우레 소리가 그녀의 귀를 강타한다.
"신속"
젠이츠의 말이 멎는다.
그 다리가 떨린다. 격통이 젠이츠를 덮친다.
단 두 번 시전하면 다리가 망가질지도 모를 그 기술을 사용한 반동이다.
"으, 으아아아파아아악!"
어느새 잠에서 깬 그가 다리를 부둥켜안고 데굴데굴 구른다.
"더, 더... 더 놀..."
더듬거리는 혈귀. 머리와 분리된 몸통은 도약 직전의 자세에서 굳어버린 채로 점차 무너져내린다. 가루로 흩어져간다. 공허한 그녀의 목소리조차 공기에 녹아버린다.
곧 공터엔 둘만이 남았다.
"...야...여기...도와달...라고..."
구르던 젠이츠의 눈에 다 죽어가는 겐야가 들어온다. 통증도 어느덧 가라앉았겠다, 주변을 둘러본다.
"어, 야! 혀, 혈귀! 혈귀 어디갔어!"
"...죽..었...나도...죽겠다..."
어리둥절해하다 혈귀의 소멸에 뛸듯이 기뻐하는 젠이츠. 겐야에게 다가와 부축한다.
"겐야구운. 궁금해서 물어보는데.. 상현도 아니고 말이지. 설마 저 정도 혈귀에 만, 신, 창, 이가 된 거니? 서얼마아아? 푸훗"
"끄윽"
격통에 겐야는 말을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다만 상현 처치에 기여했던 젠이츠가 상위 계급을 달고 속삭이는 그 말에, 얼굴은 벌개지고 상처의 출혈이 조금 더 심해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