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69편 (69/109)



〈 69화 〉69편

벌써 십여 명. 도착한 마을은 물론 인근 주거지에서도 한 두명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서 돌아온 자가 아무도 없으니."

"그 말씀하신 낙인은 뭡니까?"

이어진 이야기는 기묘했다.

간격은 불규칙. 밤이 되면 다들 문을 닫고 창을 걸어 잠근다. 그럼에도 운이 나쁜 사람은 꼭 있다.

며칠 전. 한밤에 목격된 남성 하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비틀거리며 어디론가 가더라는 것이다.

머리 위 허공에는 거무스름한 덩어리를 띄운 채로.

"그   없는 형체... 그걸 달고 사라진 사람들은 어김없이 돌아오지 않았다지."

꿀꺽


"쩝... 아재. 여기 마을 사람들은 상부상조 그런 풍습 없어요? 걱정도 안 되나?"


음식물을 삼킨 젠이츠가 심드렁한 말투로 묻는다. 흘끗 쳐다본 아저씨.

"왜 안 했겠나.  좀 쓴다는 몇인가가 나서서 따라갔지. 그게  주 전이고. 그들까지도 감감무소식이야. 이제는 그저 빌고만 있는 게지, 다들. 제발 오늘만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건장한 그들마저 실종되고는 아무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침울하게 기도드리며 하루하루 가시방석 위의 삶을 보내는 것이 이곳 주민들. 그의 설명이었다.

"야. 그냥 돌아가면  될까? 영 느낌이 좋지 않은 게 몸살날 조짐이..."


몸을 부들부들 떠는 젠이츠. 겐야는 두통을 느끼며 관자놀이를  누른다.


"잘 먹었습니다."

주인장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뒤 물러나온다. 당장이라도 탈주할 기세인 젠이츠를 붙들면서.

"아니... 그 선배인지 뭔지 자처를 했으면 귀살대원답게 행동을 해야될 거 아닌가? 엄살부리지 말고 좀."

"봐줘어! 보라고!  돌아왔다잖아! 필시 무시무시한 혈귀 조상님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부르고 있는 게 틀림없다니까! 하라부지 따라오너라...이러면서..끼야아악!"

되도 않는 귀신 흉내까지 내며 저혼자 자지러진 그는 쪼그려앉아 바들바들 떤다.

푸욱 한숨을 내쉰 겐야는 생각한다. 지금은 오후. 몇 시간이면 해가 지고 밤이 된다. 며칠 걸릴지 모르지만 운이 좋으면 오늘. 그 수상한 형체가 들러붙은 사람이 발견되는 즉시 움직인다.

어차피 젠이츠는 구석진 벽에 기대어 혼잣말만 하고 있어 어디 움직일 만한 상태도 아니다. 그대로 기다린다.



해가 기울어간다. 푸른 하늘이 노랗게, 붉게 변해간다. 쪽빛이 덧칠해지며 거리에 등불이 빛을 밝힌다.

불안정한 불빛 아래 여전히 자리잡은 둘. 언제 올지 모를 그 순간을 기다린다.


어느덧 인적이 끊긴 길가.


"언제까지 기다려야돼.. 킁"


코를 훌쩍이는 젠이츠. 하도 지루하니 겁에 질리기도 지친 듯 했다.

"조용히 해봐."


겐야의 작은 속삭임에 젠이츠는 의문을 표하면서도 일단 침묵한다.




나타났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의식이 없는 낯. 잠자던 중에 잠깐 나왔던 것인지 가벼운 옷차림에 신발은 한 짝만 신은 그. 느리지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으아아... 귀신이야? 귀신이냐고! 사람이 왜 저...읍! 읍!"

젠이츠의 입을 틀어막고 다급히 주위를 살피는 겐야. 아무도 없다. 거리에는 오직 홀려있는 저 사람 뿐이다. 조심스레 접근한다.

"아 놔봐 쫌! 조용히 하면 되잖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하며 젠이츠 역시 관찰한다. 겐야는 파문 탐지를 활용한다.

"저 사람 살아있어. 심장뛰는 소리가... 잠들어있는 것처럼 차분한..."


귀를 귀울인 젠이츠가 토로한다.

"인형?"


언뜻 보기엔 거무스름한 덩어리처럼 생긴 구체. 마을 주민들은 공포심을 담아 저승사자가 찍은 낙인이라 부르던 그 물체. 겐야가 파문으로 들여다본 그것은 인형처럼 보였다. 커다란 머리에서 뻗어나온 가느다란 두 팔. 앙상하고도 길쭉한 손가락들이 까딱거리며 움직이는 기괴한 모습. 인형극을 선보이는 기술자가 꼭두각시를 조종한다면 저런 손놀림이지 않을까.


"인형이 뭐? 어쨌다고?"


답도 없이 겐야가 주의깊게 앞서나가자 뒤따르는 젠이츠. 투덜거리면서도 부득불 따라붙는 꼴이 칭얼거리며 부모의 손에 끌려가는 아이의 그것과  닮아있다.

행인은 인가 밀집지역을 벗어나 숲 속을 파헤치고 나아간다. 날벌레와 거미같은 것들이 달려든다. 거미줄이 붙을 때마다 소릴 지를 뻔하는 젠이츠. 스스로 입을 봉해 소란까지는 가지 않았다.



냄새. 썩은 내가 난다.


"히이익!"

질겁하는 비명. 젠이츠가 걷다 발로 건드린  시신의 일부였다. 썩다 만 살점이 질척거리는 그 부위는 뼈가 비친다.

걸음을 옮길 수록 피비린내가 짙어진다. 풀숲을 빠져나온다.

공터. 널찍한 바위. 앉아있는 소녀.

"그어어어"


앞서 봤던 그 사내가 휘청이며 그 앞에 섰다.


그녀는 가만히 보다 그자의 팔뚝을 움켜쥔다. 손의 크기가 작다. 그에 반해 남자의 팔은 굵었다.

뿌드득

너무나도 쉽게 우그러뜨리더니


꾸작


비틀어 뜯어낸다.

"그억! 그르륵"

숨넘어갈 듯한 소리와 전신을 덮는 경련. 잡아뜯은  부위를 입에 물고

우그적


먹는다.

"혈귀다."


"우웩...우욱"


창백한 안색으로 구토를 간신히 참는 젠이츠. 그 옆에서 경계하는 겐야.


팔을 잃은 사람에게서 뿜어지는 피를 무감각하게 바라보며 혈귀는 식사한다.


순간 그녀의 눈이 이채를 띤다.

동시에 셋, 쓰러져있던 시신이 꿈틀거리며 솟아오른다. 저마다 허공에는 저승의 낙인, 그 인형이 붙었다.


누구는 다리, 또는 팔, 어딘가 결손된 시신들은 비틀거리며 걸어오기도, 안 되면 기어오기도 하며 접근한다. 팔을 뜯긴 그자도 철철 피를 흘리며 합세한다.


"윽, 억, 끅, 깨엑"


겐야가 돌아보니 낯빛이 창백해져가던 젠이츠는 이내 기절했다.


"젠장..."

지체할 틈이 없다.


몸에 파문을 돌리며 뛴다. 세 시신엔 강력한 권격을, 곧 사망할지 모르는 그에게는 손속을 둔 한 방을 먹인다.

"재밌어."


단숨에 넷을 제친 겐야에 혈귀는 일어섰다. 뜯던 팔도 아무 데나 던져버리고 팔에 힘을 준다. 돋아나는 날카로운 손톱. 길어진 그 흉기를 앞세워 날아드는 소녀.


파바바밧

한  도약. 허공에서 소녀 혈귀는 수 차례의 공격을 가한다. 들짐승의 앞발질과도 유사한 그 가격은, 한 방이 무시하기 힘든 힘을 담고 있다.

"흡!"


겐야는 하반신에 힘을 주고 버티며 막아낸다. 팔과 특히 주먹에 파문을 집중해, 매 일격을 상쇄하는 데 집중했다. 파문연타의 기술을 살짝 응용한 수비.

혈귀의 공격이 매서워 결국 몇 걸음 물러섰지만, 마침내 공격은 멎고 그녀는 착지했다.


이번엔 지상에서 다시 덤벼왔다.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아 어떻게든 막을 수가 있었다. 다만 찌르고 들어갈 틈은 아직 찾기가 어렵다.

탓 탓

뒤로 총총 뛰어 거리를 한참 벌린 혈귀.

"싸우자. 더."


한 구절 뱉은 그녀는  손을 바닥에 붙이고 쪼그려앉는 자세를 취한다. 슬쩍 허리를 든다. 뛰쳐나가려는 듯한 낌새.


"혈귀술"

소녀의 읊조림. 기형적으로 부풀어오르는 허벅지. 기세가 사나워진다.


"저건!"


어느샌가 예의 그 인형이 그녀의 머리 위 허공에 둥둥 떠있다. 크기가 배는  크고 뿔이 돋아 흉측하다. 혈귀의 생명력이 급증한다.

위험하다. 직감. 어서 쓰러뜨려야 한다. 최대한 신속히 기술을 생각하고, 움직여야


"흑자무상"

스칵




가슴팍이 뜯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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