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67편
꼬박 열흘.
센쥬로는 충실히 수련에만 몰두했다. 이따금 겐야와 대화를 나누거나 휴식 중의 상태를 보면, 시간이 흐르며 속내를 정리하고 어느 정도 뜻을 정한 듯한 얼굴이었다.
"오늘이냐?"
"네, 사부님. 듣기로는 오늘이 맞을 거예요."
이제는 우울의 조각조차 남아있지 않다.
"아, 맞다! 이거 받으세요!"
그답지 않게 호들갑을 떠는 센쥬로. 그 손에는 검집이 들려있었다.
"돌려드린다는 걸 깜박해서! 면목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몸 둘 바를 모르고 연방 굽실거리며 사과하는 그에게 손사래를 친다.
"됐다. 지금 네가 얘기해서 나도 알았다. 정신없었던 거 다 아니까, 너무 괘념치 말고. 사실 겐야가 더 걱정한 것 같다만.."
"제, 제, 제가 언제 말입니까?! 허, 허참.. 야! 거 대장장이 분인지 언제 오신다냐?"
당황하는 겐야. 영문을 모르는 센쥬로.
떠드는 사이 그가 왔다.
"..."
말없이 서서 검집만을 척 내미는 사내. 그 주둥이 삐죽한 못난이 가면 뒤에 어떤 표정이 있을지 짐작도 안 갔다.
"받아도.. 되, 됩니까?"
"...예."
단답형으로 사무적인 답만 하는 사내.
떨떠름하게 검을 건네받은 센쥬로.
"오, 드디어!"
"얼른, 뽀, 뽑아봐!"
지켜보는 사람이 더 애가 타서 재촉하는 상황. 센쥬로 본인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일터.
그도 그럴 것이, 파문을 익히고 느꼈으며 실제 사용까지 했지만, 직접 눈에 보이는 명확한 증표는 아직 못 봤던 거다. 이를테면
"우와아아아!"
점점 크게 입을 벌리며 일륜도의 날 하단에서 위로 색변화를 따라 오르는 그 초롱초롱한 눈빛. 지금의 이 상황같은.
"변했습니다! 진짜죠? 거짓말 아닌 거죠? 으야야"
싱글벙글하며 볼을 꼬집은 겐야. 아파서 눈물을 찔끔 내비치면서도 탄성이 끊이지 않는 센쥬로.
그 일륜도의 빛은 황금이었다.
"진짜 저도.. 사부님, 겐야 형님같은..."
"...이만..."
말없이 지켜보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사내. 정말 칼만 전해주고 가는 게 전부였나. 종전까지의 대장장이들과 확연히 달라 적응이 어렵다.
울먹이는 센쥬로의 등을 토닥이는 겐야.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연다.
"그 센쥬로. 너 그거 입어봐라. 대원복 받아온 거."
"아, 네."
코는 여전히 쿨쩍이며 주섬주섬 꺼내든 제복으로 재빨리 갈아입는 소년.
"어떻...습니까?"
상하로 까만 제복. 등에는 멸 자가 선명히 박혔다. 그 손에서는 칼날이 드리운다. 어색한지 좌로 우로 돌며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해보는 센쥬로.
"이야... 동생이 드디어... 진짜배기 대원 티가 납니다."
"잘 맞네. 어울려."
"헤헤. 좋긴 한데 뭐라고 해야하나 말로 하기가 어렵네요.."
뒷머릴 긁적이는 센쥬로는 웃는지 우는지 그 중간 어디쯤이다.
"맞다, 깜박했네요 이거."
센쥬로는 자랑하고 싶은 모양인지 대뜸 손등을 내밀어보인다.
"계급을 보여라!"
그의 음성에 맞추어 나타나는 글자, 계 癸.
어깨동무를 하며 칭찬하는 겐야와 부끄럼타는 센쥬로. 화기애애한 광경에 문득 궁금해졌다. 난 뭐였더라.
궁금하니 해본다.
"계급을 보여라."
주먹을 꾹 쥐며 넌지시 이르자, 글씨가 스윽 나타난다.
을 乙
뭐지?
언제 바뀌었더라. 암만 기억을 돌려봐도 시야에 박히는 요 글자보다 꽤 낮았는데. 시술받은 적도 근래 따로 없었고.
둘에게는 수련 빼먹지 마라 말해두고 움직인다. 의문을 해결해야겠다.
귀살대 인사 담당을 찾는다.
"아, 그.. 진급 일자 말인가요? 어디보자..."
두터운 기록을 뒤적이던 그는 어떤 책장에 멈춘다. 위부터 손가락으로 종이를 훑어내리다 정지한다.
"여기네요. 그러니까.. 대략 석달하고도 보름 전에..."
그때면 잠깐만. 내가 열차 임무끝나고 병동 신세를 지고 있던 그 시기 아닌가? 그것도 죽은 시체처럼..이 아니라 거반 시체로 누워있을 시점인데.
"혹시 이건 언제인지 알 수 있습니까?"
담당자에게 예의 계급을 보여주며 각인 일자를 물어본다.
그는 잠시 기다리라더니 쪽지를 적어 까마귀 편에 어디론가 보냈다.
"차라도 한 잔 드시죠. 기다리셔야 할 텐데."
"그럼 사양 않고 감사히.."
콧노래를 부르며 내온 찻잔. 먼저 내게 따라준 그는 자신의 잔에 마저 덜고 음미한다.
향긋하기 짝이 없다. 코를 간질이는 다향을 맡으며 위화감을 느낀다. 혈귀와 사투를 벌이며 이런 걸 누려도 되나.
아니다. 오히려 목숨을 건 줄타기를 하는 이 귀살대이기에 필요한지도. 차를 마실 수도, 산책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그림을 그리거나 간식을 즐기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팽팽하기만 하면 줄은 끊어지고 만다. 극의 극한까지 저마다의 동기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귀살대. 그들에게 작은 안식처가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까아악
상념을 깨고 꺽쇠 까마귀가 돌아왔다.
쪽지를 받아든 담당은 고개를 끄덕인다.
"말씀드렸던 당일에 하셨다네요. 계급 각인하시는 분의 기억이 맞다면."
기억력도 좋지. 기록도 없이 머리 속에 저장해둔단 말인가. 어쨌든 전언이 진실이라면 시술 시점은 무의식 중이던 그 때가 된다.
"병동에 스미, 키요, 나호 셋 중 하나가 있을 때인가."
느닷없이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괴인이 환자의 손등에 사정없이 대바늘을 찔러대는 참사를 목격하고 소녀가 기겁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기절해있을 때 당했으니.. 아픈 거 모르고 넘어간 부분은 다행이랄지."
사소한 푸념을 하며 돌아오는 길. 손등을 다시 본다. 지금은 사라져 보이지 않는 글자. 작은 글씨 하나가 크게 와닿는다. 그동안 해온 일들이 쌓이고 쌓여 손등에 박혀있다. 마음에 온기가 감돈다.
그 즈음이었다. 저만치서 몇 명인가 무리지어 질주하던 복면의 대원들. 낯익은 인물들을 저마다 업은 채로 나비저택 방향으로 몰려간다.
그 날이었다.
음주와 대원 삼인 귀환.
음주 우즈이 텐겐 중상.
아가츠마 젠이츠 경상.
카마도 탄지로, 하시비라 이노스케 중상, 상기 이인 의식 불명.
귀살대로선 낭보일 소식 하나도 들려왔다.
상현 6 격파.
"백년이나 변하지 않았던 상황이 지금 바뀌었어! 이 파문은 주변을 삼키며 커지고 흔들려 이윽고 그 사내에게 닿겠지! 넌 반드시 내 대에서...커헉!"
피를 토하고 주위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회심의 미소를 잃지 않는 귀살대의 수장. 우부야시키 카가야.
"내가 좋아하는 건 불변. 완벽한 상태로 영원하게 변하지 않는 것. 나의 고요한 수면에 번져가는 파문을 용납할 수 없구나. 실망시키지 마라."
상현 다섯을 불러모아 냉엄한 경고를 남기는 혈귀의 중심, 키부츠지 무잔.
"어떻게 하면 실마리를 잡는단 말이지... 단 한 걸음이 부족한데... 파문의 이론이나 경험들을 통틀어봐도..."
늦도록 몸을 움직이고 반복동작을 시행하며 깊은 고민에 빠져드는 계급 을, 무라타.
각자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