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60편 (60/109)



〈 60화 〉60편

기억, 행동, 감정. 모든 걸 통틀어 큰 변화로의 기폭제를 만드는 것. 하나의 심상 구축이 관건이었다.

이로써 신체의 힘을 끌어내는 단련은 마무리 되어가는 느낌이다.

체력적 기반은 만들었으니 이 방향으로 밀고 나가면, 지금까지의 수행을 반복하며 강도를 높여나가기만 하면 된다.

어제 바위를 여섯 걸음 밀었다면 오늘은 일곱, 내일은 여덟 걸음을 옮기면 되는 것이다.


중간에 겐야에게는 나무타는 훈련법도 알려주었다. 손가락만으로 줄기에 구멍을 내가며 등반하는 그것. 처음 듣고 뜨악한 표정이었으나, 금세 알았다며 해보겠단다. 옆에서 듣는 센쥬로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가르치던 두 사람은 알아서 잘 해낸다. 대부분의 신체능력 향상용 수행들도 익숙해져가는 상황.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이제부터는 새로 생긴 이 시간을 자기 계발에 사용한다. 정말로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할 때가 왔다.


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겪어온 일들과 호흡의 특징을 고려한다. 파문을  파고들고, 체술을 탐구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다. 연마할 구석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검토한다.

과거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거슬러 올라가, 염주 렌고쿠 쿄쥬로와의 집단 임무가 있기 이전, 개인 임무에서 겪었던 일이다.

의문의 희생자 넷이 이미 발생했다. 귀살대에서는 혈귀의 소행으로 판단해 나를 파견했다.


혈귀는 특별한 이능이 없이 단순 신체 강화형이어서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문제는 거기부터였다.


민가, 정확히 이르자면 도장이라고 하던가. 무술을 갈고 닦을 법한 장소와 합쳐진 형태의 집이었다.

이지를 상실한 혈귀는 그날 밤 그곳을 덮쳤다. 다행히 행적을 뒤쫓아온 나도 자리에 때맞춰 도착했다.


여성 하나를 잡아먹으려 덮쳐든 그놈. 그녀는 바들바들 떨며 겁에 질려있었다. 도저히 어떤 행동을 취할 만한 심적 상태가 아니었다. 이대로 두면 불현듯 뻔할 상황.


가로막는다. 그리고 상대한다.

괴물의 등장, 이해할 수 없는 위기, 이쪽이 나타나 한숨을 돌리기까지. 급박한 흐름 끝에 여성은 눈물을 쏟는다.  앞에서 혈귀는 마무리했다.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저기, 이제 괜찮습니다. 안심하셔도.."


인기척.

"누구냐."


부서진 도장의 출입문. 우뚝 선 인영. 달빛을 등지고 선 다부진 체격의 사내. 도복을 걸친 그 사람이 재차 물어왔다.

"누군데 여기서 행패를 부리냐, 이 말이다!"

그는 말릴 틈도 없이 으르렁거리며 내게 덤벼들었다. 범과도 같이 흉포한 기세. 사나운 눈빛은 살의로 가득하다.

뭔가 잘못됐다. 해명을 하고 싶어도 틈을 주지 않는다. 유일한 목격자인 뒤편의 여성은 입을 막고 신음하면서 울음을 터뜨릴 뿐, 이성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피하고 또 피한다.

동세를 관찰한다. 파문 감지로 지켜본다. 이 사내는 호흡을 구사하지는 못하는 일반인. 그래서  껄끄럽다.

맘먹고 상대하면 제압은 쉬울 테지만 사람이다. 혈귀가 아닌 이상 함부로 기술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피하다 등 뒤로 벽이 닿는다. 남자는 이번에야말로 끝장낼 기세로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러온다. 바닥에서 구르듯 옆으로 팽글 돌아 피했다.

콰앙


그 한 번의 주먹질에 단단했던 벽이 말 그대로 터져나갔다.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잔해가 허물어진다. 심히 놀라운 파괴력이다.

"그만두세요! 그분은  도우셨습니다!"

다행히 목격자이자 사건의 피해자인 여자가 정신을 차리고 바락 소리를 질렀다. 남성은 어느새 순한 양이 되어 그녀와 마주한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

뒤에서 팔짱을 낀  사죄드리라 요구하는 여성의 퍼런 서슬에, 그 남자는 절절 매며 사과를 했다. 동일 인물이 맞나 싶었다.

듣자하니 두 사람은 부부라 했다. 하루 남편이 출타한 사이 사건이 터졌다는 것. 덕분에 살았다며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아내 분에 저절로 맞인사를 하게 된다.


"근데 정말 믿으십니까? 보통 소문 속의 존재라고 반신반의하기 마련인 혈귀인데, 아내 분의 증언만으로 확신하신다는 게."


사내는 활짝 웃어보인다.


"이 사람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으니깐요. 단 한 번도 제게 거짓을 말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둘. 신뢰가 굳건해보였다.


"아, 아까 그건 뭐였습니까?"


"그거라면.. 대관절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어리둥절한 그. 벽에 구멍을  주먹. 휘두를 때 손가락으로 취했던 기묘한 손놀림.


"아하! 이야 대단하십니다. 선생께서는 눈썰미도 좋으십니다. 자자, 차라도 한  드시면서"

호칭을 변경한 남자는 부인의 손짓에 나를 이끌었다. 마주앉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헌데 어째서 그런  관심을 두신 겝니까, 선생은."

"저도 주먹을 쓰거든요. 그래서 궁금해지던데요."

허 하며 찻물을 한 모금 들이킨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볼 때 호흡을 쓰지 못하는 그 남자. 주먹 하나로 벽을 부순 비결. 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신묘한 수법까지. 자신을 권사라 일컬은 그는 아낌없이, 거리낌없이 얘기해주었다. 하나 뿐인 반려자를 구해준 작은 보답이라면서.


그리고 얼마  무한열차 임무에서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 재활까지 또 얼마쯤 걸렸다. 이제서야 권사라던 그 사내와의 담화를 되돌아볼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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