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57편 (57/109)



〈 57화 〉57편

"저 녀석이 어른스러워서 그렇게 느꼈을 수 있지."

둘러싼 외부의 압박과 내적인 고충.

"마음고생이 심했을 테니. 조숙하다고 하던가?"

"볼 수록 남같지가 않습니다."


얼굴을 말끔하게 씻은 센쥬로가 돌아왔다.


"자,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냐."


겐야를 지목한다.


"넌 내가 알려준 파문의 기술들 있지? 그걸 수련하면서 새겨넣어라. 어떤 상황에서도 반사적으로 쓸  있게끔. 파문의 호흡 전반부의 기술들은 기초에 바탕을 두고 있지. 그걸 숙달한다면 파문을 다룸에 있어 수월하게 된다."

"다른 수행도 병행하면서 하면 됩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파문은 그 자체로도 생명력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신체 능력에 기반을 둔 것. 튼튼한 몸을 갖춰야만 파문의 효용이 빛을 발한다. 이쯤에서 알려두는데"


겐야와 센쥬로가 귀를 기울인다.

"전집중 상중에 대해 들어봤어?"


둘 다 긍정을 표했다.


"귀살대에 들어와서 그런 소문을 듣기는 했습니다만... 전 당시 호흡 이외의 방도를 찾는데 신경을 쓰느라 기억이 어렴풋합니다."

"예전에 아버님이 가져다주신 서책에 적혀있었어요. 호흡을 상시 유지함으로써 더욱 강해지는 수단이라던 구절이 떠오릅니다."


"그 정도면 알고 있네."

물  잔을 들이키고 말문을 연다.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혈귀를 상대하기 위해 전해지는 호흡법. 당연히 쓰면 통상의 신체능력을 넘어선다. 강화한 상태로 움직이는 시간이 늘면 체력도 쉽게 붙지. 근육이나 다른 조직들도 활발해지고. 호흡을 유지하며 훈련을 한다면 효과는 배가한다."


비어있는 시간까지 활용한다면.


"호흡법을 무의식의 상태인 수면에서도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상시 훈련과 마찬가지. 수명에 한계가 없는 혈귀와 맞서려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하는 인간으로서, 선물이나 다름없다."


"아니 무라타 씨. 전에 말씀해주셨을 때 파문은 다른 호흡과 다르다지 않으셨습니까?"

긍정.

"그것도 맞아. 특징이 다르고 양상도 달라. 그래도 호흡을  수록 강해지는 점은 같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두 사람을 응시한다.

"너희들이 수련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호흡법을 자각하고 의식하면서 사용 시간을 늘려주었으면 한다. 다행히 시간 여유가 있으니."

손을 번쩍 드는 센쥬로.

"손  들어도 돼. 뭐야?"

"아까는  길이 멀다시지 않았나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의미로 들렸습니다."

슬그머니 손을 내리며 물어온다.

"시간이 많지 않다. 사실이야. 먼저 겐야에게는 해둔 이야기지만 짧게. 난 요양 중이다. 쓰면 위험한 기술을 썼고 큰 부상을 입었다. 현재 재활 겸 수련 중이고. 회복이 끝나고 판정이 내려지면 다시 현장에 나가겠지. 너희들과 있을 시간은  때까지다."

"그럼에도 여유가 있다. 상대적으로. 내가 상중을 습득한 건 집단 임무 직후였어. 부상으로 인한 임무 배제. 한 이삼 주일가량 회복기간이었는데, 보통 방법으로는 상시 호흡을 익힐 수가 없었지. 그래서 이렇게"

머리를 뭔가로 둘러싸는 시늉을 한다.


"단단히 싸매서 호흡을 차단하는 극약처방을 했다. 간신히 기간 내에 성공했고."

"그럼 숨을 못 쉬는 게..."


겐야와 센쥬로는 나란히 겁에 질린 표정.

"죽지는 않을 정도니. 어차피 너희들에게는 필요없어. 보름 안도 아니고, 몇 달은 되니까. 호흡도 익혀가는 과정이고, 차차 늘리면서 해나가면 무리없다. 탄지로가 했던 것처럼 여차하면 도움을 받으면 된다. 나비저택에서."


"으으"

겐야가 손목 언저리를 감싸쥔다.

"왜 그래?"

"탄지로라면 그 이마에 흉터있는 대원 아닙니까? 제가 최종선별 시험 막판에 잘못을 하긴 했는데... 그 때  녀석이 틀어쥐었던 팔이 아직도 아픈 거 같아서..."


얘는 또 뭔 일을 했던 거야.

"아무튼 그렇게 호흡의 수준을 높여가면서 체력도 기른다. 겐야는 이미 알려준 기술을 터득하면 상위 단계로 넘어가며 이론 설명도 하고. 센쥬로는 음..."


고심하고 있으려니 센쥬로가 의기양양하게 목검을 꺼내들었다.

"준비됐습니다! 가르쳐주세요!"

눈이 빛나고 의욕이 가득하다.

"일단...."

"네!"


가늘게 눈을 뜨고 목검을 쳐다본다.

"그 검을 버려라."

"예...네?"

어안이 벙벙한 센쥬로. 순간 오만가지 감상에 휩싸인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꾹 다물고 눈을 질끈 감는다. 울상을 짓는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손가락을 떨며





정든 목검을 던진다.


"...뭐하니?"


"아, 아니, 검을 버리라셔서..."

떠듬거리는 소년. 한숨을 쉰다.


"말을 잘못했네. 내 말은 그걸 진짜로 버리라는 소리가 아냐. 당장  일이 없을 거라는 거다."

그는 반색을 하며 곧장 목검을 집어든다.


"신체와 파문은 밀접한 상관성을 띠고 있다. 체력이 부족하면 파문의 성장도 더뎌지고 다시 신체 능력의 향상도 느려진다. 악순환이야. 그러니 센쥬로, 넌 기초 체력부터 키우자."


어리둥절한 채 목검만을 소중하게 끌어안은 소년에게 할 일을 일러준다.


아주 기초 중의 기초. 이를테면 걷고 달리기. 팔굽혀펴기. 앉았다 일어서기. 등등.

"특히 식사가 중요해. 네 몸은 전체적으로 근육이 턱없이 부족하다. 체급을 올린다."

먹는 양을 이전보다 늘린다. 한 번에 많이 먹으면 무리가 있을 수 있으니 잘게 여러 번, 하루  끼 기준이라면 사이사이에 간식을 먹고 잠들기 전에도 한 번 더 먹는 셈으로.


"먹기만 하면 튼튼해지기보다는 살만 찌지 않을까요?"


"움직여야지. 잠들기 전까지 먹는 시간 빼고, 죽을  같아서   빼고 무조건 움직인다. 뭐라도 한다. 먹은  다 소화하고도 녹아없어지는 그 때까지."


"해보겠습니다..."


반쯤 넋이 나갔다.

그날부터 당장 시작한다.

"헤엑, 히악"

아니나다를까 부실했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지쳐 쓰러진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뛴다. 반복.

"컥, 켁, 읍!"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넣다가 가슴을 치는 센쥬로.


"야, 물! 물 마셔!"

겐야가 급히 물을 넘기자 삼키고 숨을 돌린다.

"감사합니다, 겐야 형님."


겐야도 그리 불리는 게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원체 예의바르고 시키는 일은 어떻게든 해내려해서일까, 닮은 구석이 있어서일까,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했다. 어찌보면 형제같기도..

"우웨에에엑"


애써 먹은 음식은 늦은 시간이 가까워오면 도로 튀어나오곤 했다. 센쥬로는 찔끔 튀어나온 눈물을 닦았다.


혹사에 가까운 훈련. 토나오도록 구르고 또 구른다. 토하면 머지않아 또 먹는다.

이쯤되면 피로누적이나 근육파열을 걱정해야하지 않을까? 여기서 파문의 기가 막힌 장점. 뛰어난 재생력. 과하게 움직여도 그만큼 회복된다.

센쥬로는 계속 운동하고 또 뛴다.

수행하는 틈틈이 센쥬로를 지켜보는데 겐야가 다가왔다.


마치 똥마려운 강아지같은 표정이다.

"뭔데?"

한동안 뭉그적거리다 힘들게도 입을 연다.

"드릴.. 말씀이..."


"속시원하게 좀 해봐라."

결심한 듯 눈을 부릅뜨는 겐야.

"사부님으로 부를 수 있게 해주십쇼!"

"뭘 큰 일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불러."


"가, 감사합니다, 사부! 아니 사부님!"

기뻐하는 모습에 마음이 푸근하다. 별 일도 아닌데 고민하다니.

오산이었다.



"사부님!"


"사부님?"


"사부님."

"사부님!!!"


계속 듣다보니 뭔가.. 치밀어오른다. 반복이 지겹기도 하고, 사부라는 명칭과 맞는 사람인지 되돌아보기도 하고. 그럼  낯부끄러워지는 것이다. 고역이다.

그만두게 하기도 힘들었다. 그 호칭을 부를 때마다 저토록 생기가 충만한 표정인데, 행복해하는데 관두라 윽박지르기도 무안하다.

"겐야."

"네, 사부님!"


고심 끝에 수행 강도를 극적으로 높였다. 때마침 겐야도 그간의 수행에 익숙해져 무리없이 소화해내는 느낌이 슬슬 들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토할 정도로 구르면 너무 힘들어서 말도 못할 게 아닌가? 그럼 잠잠해지겠지.

"헉, 컥, 커허억!"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우웨엑!"

"우억, 트학!"

센쥬로와 쌍으로 토하기 일쑤. 이쯤되면 괜찮지 않나?


그러던 어느 날 둘의 대화를 듣게 됐다. 파문의 차이 덕에 그들의 탐지 범위 밖에서 들을 수가 있다.


"겐야 형님. 요즘 형님의 수행이 지나치게 혹독해진 거 아닙니까? 혹시 무라타 씨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라도..."


우물우물 씹어삼킨 겐야가 확신에  답을 했다.


"아니, 사부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다. 사실 수행이 익숙해진 느낌이 들곤 했는데, 눈치채신 거지. 나태할 틈을 주지 마라, 더 조이고 채찍질해라. 방심하지 말고 노력해라."


"하..."

센쥬로의 감탄사.

"수행 강도를 올려 그런 가르침을 주신 거야. 의심하지 마라. 화낸다."


"아니 그럴 의도는 전혀 없어요! 단지 왜 그러실까 궁금해서... 그럼 말이죠. 저도..."


설마


"그분을 사부님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물론이지! 무라타 씨는, 아니 사부님은 자격이 차고 넘치시니까! 하하하!"


"저도 그런 사부님을 모실 수 있어서 뿌듯해요. 헤헤."


우애좋은 형제. 순수한 열의로 가득한 그들의 대화. 그리고 센쥬로까지 전염될 그 호칭.


"아이고..."


두통이 엄습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