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55편 (55/109)



〈 55화 〉55편

"아"

화들짝 놀라며 올려다보는 소년. 황급히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닦는다. 눈시울이 붉다.

"귀살대 관계자 분이신가요? 저는 렌고쿠 센쥬로, 렌고쿠 쿄쥬로 형님의 동생입니다."


꾸벅 허리까지 깊이 숙이며 인사를 해온다.


짐작대로 현 염주와 가까운 사이, 그것도 형제였다. 한  보면 잊기 힘든 머리니만큼 모종의 관계가 있겠거니 생각은 했다만.

공손히 모은 두 손, 예의바른 몸가짐, 왜소한 체구.

"렌고쿠 씨의 동생이라면... 혹시 그분을 뵈러 온 건가?"

"네... 부상... 을 당해 치료 중이고, 가까운 가족이 내방해 면회하라는 통보를 귀살대로부터 전달받았습니다. 그런데..."


침울해하는 센쥬로.


"그런데?"

"걸음을 재촉해서 어찌저찌 도착했지만 근 며칠 형님의 용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들어서... 고비...라...흑"

주저앉아 눈물을 비치는 센쥬로. 소년을 사이에 두고 어느샌가 겐야와 나는 앉아있었다.


"다행히 조금 전 위기는 넘기셨다 들었지만... 병세가 극히 안정된 상태에 접어들어야만 면회 가능하다 듣고 기다리던 도중이었습니다."


"숙식은 어떻게 하고?"

"배려해주셔서 이곳, 나비저택에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대기하다 점점 마음이 초조해지고 불안해져 바람을 쐬러 나와봤는데... 저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나와서... 죄송합니다."


잠시 진정하길 기다린다.


"가족이라면 부모님은 오시지 않은 거냐? 심히 걱정되셨을 텐데."


머뭇거리던 센쥬로는 말을 꺼냈다.

"어머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미안하다. 그럴 의도는"


"아닙니다. 아버님은 그게..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렌고쿠 센쥬로.

아버지는 렌고쿠 신쥬로로 전대 염주, 형은 렌고쿠 쿄쥬로이며 현재의 염주이다.

대대로 지주의 자리에 걸맞은 불꽃의 호흡 검사를 배출한 명문가의 자손이기도 했다.


센쥬로는 이러한 가문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러나 그보다 자랑스러웠던 것은 아버지, 그리고 형이었다.


간혹 아버지가 들려주는 무용담. 혈귀의 재액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내는 이야기는 소년의 모험심을 자극했다.

타고난 신체 조건과 특출난 재능으로 정통 후계의 자리를 잇기에 부족함이 없는 형.


그들의 존재는 센쥬로의 은밀한 자랑이었다.

그들을 따라 검을 잡고 호흡을 익혀 귀살대원으로 활약할 날을 꿈꾸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노력하면 자연스레 그리 될 거라 믿었다.




현실은 달랐다.

이상하게도 체력이 약했다. 검술도 머리로는 알았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특히 호흡. 아무리 설명을 듣고 따라해보려 노력하고, 집에 예비된 일륜도를 들어보아도 티끌만한 변화마저 없었다.

당황했다. 이럴 리가 없다.


어머니는 아픈 손가락을 돌보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형은 격려했다.


이상했다. 불안하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센쥬로를 데리고 찾아간 곳은 당시 귀살대의 병동이었다.


'이 아이는 호흡의 재능이 없습니다.'

냉엄한 선고. 소년은 무겁게 짓눌렸다.

센쥬로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서적을 구해보았다. 검술, 호흡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고 정리하고 연구했다. 나름의 체력 키우기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불꽃이 아닌 타 호흡의 검사, 귀살대원들을 소개받아 지도받는 귀중한 기회도 얻었다.

그들과 함께 얼마간 수련한 뒤의 반응은 비슷했다.

'저도 호흡을 익힐 수 있나요?'

'귀살대원이   있을까요?'


어떤 이는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는 짜증을 냈다.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다 외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후 아버지는 서적을 구해다주었다. 검술이나 호흡과는 무관한, 평범하고 착실한 장래를 설계하기 위한 종류의 책들.

다정했던 아버지는 가끔 선대 불꽃의 호흡 검사들의 이야기도 해주시곤 했다.


그때마다 어린 센쥬로는 질문을 했다.

'저도 그분들처럼 멋진... 사람들을 구해내고 지켜주는 검사가   있을까요?'


그러면 복잡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시다, 한참 뒤 말문을 여시곤 했다.

'미안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소리없이 끌어안았다. 소년의 옷자락이 촉촉이 젖어들도록 숨죽여 울면서.


누구도 바라던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떤  한 권을 읽어내리던 아버지의 방에서 고함과 큰 소리가 몇 번 들렸다. 이후 아버지는 변했다.

염주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술,  가져와!'


쨍그랑하고 깨져버린 술병. 조각을 치우다 그만 손가락을 다쳤다.

'못난 놈.'

흘긋 쳐다본 아버지가 남긴 말. 꽂혔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다.


어떻게든 하면 된다. 하면 될 거다.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어떻게든

끊임없이 되뇌고 노력했다. 아버지의 냉대를 묵묵히 감내하며 버텼다.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형, 렌고쿠 쿄쥬로가 염주의 자리에 올랐다.


터질 듯이 기뻤다. 자랑스럽다.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았다. 힐난했다. 상관없었다.

작은 소망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

'렌고쿠 쿄쥬로 중상'


어느  들려온 소식.

손이 덜덜 떨렸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알지 못했다.


센쥬로의 앞을 비추던 한 줄기 빛. 그가 쓰러졌다.

절박해져 노력하고, 내몰리면서도 끈질기게 붙들고 있던  마지막 하나. 소년은 깨달았다.

저기에 내 자리는 없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저는 그래도 좋았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라도 형님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는데.. 그랬는데... 이제는 모르겠어요..."

안색이 어둡다.

"그래서"


"네?"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어떻냐니 물으셔도..."

"형님을 돕고 싶다며. 방법이 있다면 어떡할래?"


"무슨..."

"호흡이라도 가르쳐줄까?"

"...그런 일이 가능할 리..."

"내가 있다."


옆에서 겐야가 입을 열었다.


"호흡을 쓰지 못하는 몸이었지만,  이분의 도움으로 쓸 수 있게 됐다."


"저, 저, 정말입니까? 지, 진짜요?"


겐야가 고개를 끄덕인다. 센쥬로는 입을 뻐끔거리며 한참을 말을 못했다.


소년은 간신히 말문이 트였다.


"정말.. 정말로 호흡을 익힐 수 있습니까?"


간절함.

"그래."

대답한다.


"저도, 이런 저도 될 수 있을까요? 저도 귀살대원이 될 수 있나요?"


가슴팍의 옷자락을 꾹 움켜쥐며 물어온다.

"너는"

빨갛게 상기된 소년의 얼굴을 직시하며 대답한다.

"귀살대원이 될 수 있다."


그 눈가에 그렁그렁 맑은 물이 고인다.


"..거..기..."


울먹이며

"있..어도..돼..요...?"


떨면서 물어온다.

"...된다."




조용히 하늘을 바라본다.

소년이 눌러담아왔고,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던  마음이 하염없이 쏟아져내린다.


세 사람의 머리 위로 등나무 꽃잎이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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