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54편
"그렇게 좋냐."
"아, 죄송합니다!"
넋놓고 칼날을 바라보던 겐야는 황급히 정돈한다. 입을 닦고 옷의 먼지를 턴다.
"이해는 한다만, 기뻐하고만 있을 시간이 없어."
그는 의문을 품고 바라본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 요양중이라 볼 수도 있지. 머지않아, 아마도 몇 달 내에는 임무에 투입될 거다. 전적으로 봐주고 가르쳐줄 시간이 부족하단 말이야."
지금의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 몇 년이나 걸렸다. 시행착오도 숱하게 겪었고 비효율적인 과정도 거치느라 늘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분명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게 허용된 시간은 짐작컨대 몇 달, 그보다 짧을 수도 있다.
가슴팍에 손을 얹어 어루만진다. 오랜만에 파문을 제대로 사용한 부작용인가, 아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내상이 완치되고 나면. 시간이 없다.
"죽을 각오로 수련에 돌입하는 거다, 겐야. 파문 수행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시간 낭비나 시행착오는 내가 줄여주마. 그래도 몇 년을 몇 달로 줄이기는 굉장히 어려워. 전력을 다해라."
"...각오는 했습니다."
그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이미 호흡의 습득을 체험한 상황. 겐야의 눈빛에는 희망과 열망이 가득했다.
"좋아. 시작하자."
기존의 암주 수행은 지속한다. 스승님 밑에서 익힌 방법으로 체력을 보강. 나비저택의 훈련 기법도 가능하면 동원하고. 파문이 궤도에 오르면 개인적으로 만들어낸 수행 수단도 전수한다. 틈틈이 파문의 이론도 전달한다.
암주의 수행을 하며 그 강도를 높이고 반복동작을 습득한다는 개인의 과제도 남아있다.
한숨을 쉰다. 심호흡한다. 갈 길이 멀다.
수련을 거듭한다. 폭포 아래에서 이각에 가까운 시간을 견디게 되었고, 통나무를 짊어진 채로 버티는 시간도 늘었다. 바위의 흔들림도 거세졌다. 그 반복동작의 원리만 제대로 이해하고 습득하면 곧 움직이게 될지도.
"아프네."
날이 갈 수록 줄고는 있지만 미미하게 아프다. 파문을 쓸 때 닥치는 통증.
내상의 완전 치유 전까지는 자제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진퇴양난. 감각 유지 차원에서 파문을 손에서 놓을 수도 없다. 찌르는 이 불쾌함을 견디며 이따금씩은 사용해준다.
따아앙
산을 울리는 폭음. 소리의 진원지를 탐색한다.
"뭐해?"
"아, 무라타 씨."
겐야가 어떤 물건을 손에 쥔 채 서있었다. 수행 중 휴식시간이었나보다.
탄 냄새. 매캐한 공기.
"사격 연습을 했습니다. 요 총으로."
산짐승을 사냥하는 포수들이 쓴다고 들었는데.
"네가 그걸 왜?"
멋쩍게 웃어보이는 겐야.
"예전에 발버둥친 흔적이죠. 호흡 없이 어떻게든 혈귀와 싸워보려고... 이제는 필요없겠지만, 미련이 남았는지 잡게 되네요."
"쓸모없는 건 없다. 아직 그 용처를 못 찾았을 뿐. 경험은 중요한 거야. 헛되이 버리지 마라."
그에게 다가가 손짓한다.
"잠깐 줘볼래?"
의아한 표정의 그에게서 건네받은 총.
"별 건 아니고 하나 알려줄게. 잘 봐."
총을 잡고 총구를 나무줄기에 갖다댄다. 살짝 힘을 줬다 뗀다. 당연히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나무껍질이 약간 부스러진 것 빼고는.
"다음."
철로 이루어진 총신에 파문을 불어넣는다. 그대로 반복.
"아니, 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겐야. 나무 줄기에 총구 형태의 자국이 남아있었다. 깊이. 꽤나 탄탄한 나무인데도 아무 저항없이 쑤시고 들어갔다.
"파문은 사물에도 주입할 수 있다. 알아두면 좋은 정보지."
"허... 감사합니다."
여전히 놀란 눈치의 그. 곧 기대감이 넘친다. 이제 막 새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 아이같은 미소다.
"그거 쓰셨죠?"
"어, 아, 그게..."
코쵸우 시노부가 뚱한 표정으로 노려본다.
"...죄송합니다."
"하.. 상태가 좋지 않은데 그 파문인지 뭔지 자꾸 쓰시면 회복이 지연된다니까요. 말하면 좀 들어요!"
진찰 한 번으로 귀신같이 알아챈다. 적당히 조절하면 큰 이상은 없겠지 싶었는데 몸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체력적으로는 큰 문제 없네요. 다만 내적 부상, 제발, 제에에발 주의하시라구요. 얼른 낫고 싶으면."
차게 쏘아붙이는 그녀. 식은땀이 흐른다. 당분간 단순 체력 훈련으로 가자.
작게 한숨을 쉬며 나온다. 암주의 거처를 찾아간 뒤로 처음 맞는 정기 검진의 날. 시나즈가와 겐야와 동행했다.
"들어가도 됩니까?"
겐야가 출입구에 슬쩍 머리를 내밀며 물어온다.
"겐야 군, 들어오세요. 말 안 듣고 혹사하시는 분은 얼른 사라지시고."
쉿쉿하며 들짐승을 내치는 듯한 손짓으로 눈치를 주는 시노부. 잘못도 있고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난다.
진찰실에서 떨어진 곳에서 앉아서 쉬려니
"아니, 무라타 씨! 얼른 들어와봐요!!"
시노부의 고성이 귓전을 때렸다. 부리나케 달려간다. 이미 내 차례는 끝났을 텐데.
"뭔 짓을 한 건가요? 설명해보세요!"
어리둥절한 겐야. 그런 그를 가리키는 시노부. 무슨 일인지 몰라 잠자코 있으니,
"호! 흡! 겐야 군이 호흡을 익혔다는데 이거 당신이 한 겁니까?"
아. 그건가.
"네, 뭐. 겐야가 많이 곤란해하기에 도움을 줬습니다. 시노부 씨가 지적하신 파문 사용도 그에게 호흡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썼던 게 지분이 크고..."
시노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중얼거렸다. 상식, 어긋나, 말도 안, 기타 등등의 단어들.
"...도대체가...그동안 겐야 군때문에 고생했던...어휴. 평범이 없네요, 무라타 씨."
겐야는 터무니없이 건강한 상태라 별다른 지시 없이 나왔다. 난처한 미소로 손을 흔드는 그녀.
"맞다, 겐야. 너."
"왜 그러십니까?"
"혈귀 먹지 마라."
뜬금없는 소리. 다른 대원들이 들으면 뜨악한 얼굴로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냐 하겠지.
"왜 전에 혈귀 먹으면 변한다며. 파문은 생명의 파동.. 혈귀와는 상극이거든. 파문 습득으로 네 그 체질에 변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혈귀화한다면 스스로의 호흡으로 자신을 공격하게 된다고."
주먹으로 반대편 손바닥을 탁 쳐보인다.
"무슨 소린지 알지?"
"헉. 아, 네, 생각도 안 하겠습니다."
순간 겐야의 표정에 공포가 스쳐갔다.
나비저택의 담장에 뚫린 출구로 나서려는데 뭔가 시야의 끄트머리에 걸린다. 무심코 돌아본다.
울긋불긋. 불꽃을 휘감은 듯한 그 머리칼. 작은 염주가 담장에 기대앉아 훌쩍이고 있다.
염주 렌고쿠 쿄쥬로는 여전히 병동 깊은 곳에 누워있을 텐데.
"누구냐,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