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53편 (53/109)



〈 53화 〉53편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잠시 고개를 떨군 겐야는 이내 웃어보였다.

"될 리가 없잖습니까. 저도 많이 해봤고 압니다. 호흡은 재능과 적성이 중요한 걸."

그는  손을 맞잡은  꾹 쥐었다.


"전 체질인지 뭔지 혈귀를 먹으면 변합니다. 곧 돌아오지만. 그 체질 탓인지 저주인지 호흡은 꽝이더라구요. 여러 가지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암주의 거처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지주신 히메지마 씨가 제 사정을 알고 도와주셔서 이렇게 지내고는 있지만... 사실 여기있는 것도 계승자라는 명분입니다. 바위의 호흡을 쓰지 못하는데 히메지마 씨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꼴사납지 않나요?"

겐야의 입가가 떨린다.


"어떻게든 호흡없이도 이것저것 해보고는 있지만... 단순한 체력 증강만으로는 벽에 부딪혀서..."


"난 네가 대단하다 생각해."

"놀리시는 겁니까?"

그가 성을 낸다.

"진심이다. 내가 만약 호흡을 익히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이 자리에 있었을까. 답이 안 나오더라."


검지로 그를 지목한다.

"그래서 너에게 호흡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거야. 물론 실패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보는데."


부정적인 그에게 호흡을 익힌 경위를 이야기한다.


"그런.. 일이..."


"다 죽어가던 내게 낯선 사람이 다가왔고, 호흡을 익혔다. 엄밀히 말하면 배워졌다."

강제로 일깨워진 파문.

"예? 혈귀를 맨주먹으로?!"

겐야는 반신반의하는 태도였다.

"혈귀를 죽이려면 햇볕에 쪼이거나, 귀살대의 대장장이 손을 거쳐 특수한 강철로 제작된 일륜도로 목을 베어야만 한다고..."

"된다니까."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파문의 호흡. 겐야, 네가 접해온 호흡들과 명백히 다른 특징이 몇 있지. 지금까지의 호흡으로  됐다면.. 뭔가 다른 이걸 해보는 것도 괜찮잖아?"

그는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심대한 고민에 빠졌다. 음 소리를 내고 하늘로, 땅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고심한다.

"저야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이니까요. 근데 이름 뿐이라도 히메지마 씨의 계승자. 그분의 허가를 받아야겠죠. 뭐... 안 될지도 모르지만..."

그 길로 겐야와 동행해 암주를 찾아갔다. 다행히 거처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하거라."

"예에?"

너무나도 흔쾌히 허락하는 암주. 겐야는 얼이 빠져버렸다.


"귀살대에 들어온 목표가 무엇이냐, 겐야."

"강해져서... 혈귀를 쓰러뜨리고 싶다, 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망설이는 겐야.

"...형님께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귀살대원으로 새로이 거듭날 방법이 있다면 해보는 편이 좋다. 나로서는 지금의 수행 외에는 달리 해줄 것이 없구나... 안타까운 일이지..."

"가..감사..합니다..."

눈가를 훔치며 돌아서는 겐야.

"무라타였나.  아이를 잘 부탁하네.. 나무아미타불..."

뒤돌아 나오는 그 뒤로 히메지마 교메이의 말이 따라붙었다.

겐야 본인이 명분이니 이름 뿐이니 하며 계승자로서의 자신을 깎아내렸지만, 암주의 결정은 그런 가벼운 것이 아니다. 지주의 한 구성원으로 내린 결단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다. 그걸 무르고 허락을 한다. 무겁게 다가온다.


수행을 일삼던 공터. 겐야와 마주보고 섰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파문의 호흡을 익힐 적에 시작은 자의가 아닌 타의였다."


파문의 전수. 선천적으로 파문을 다루도록 타고나는 사람도 있다. 이들 말고는 수련으로 익히거나, 익혀지거나.

"그 수단을 네게 시행하려 한다. 일순간 전신의 공기가 말라붙는 고통이 뒤따른다. 그걸 넘어서고 필사적으로 호흡을 해라. 감각을 잊지 마라."

오른손의 손가락을 동글게 모아 뾰족하게 세운다. 파문을 집중. 타격을 입혀선 안 되고, 모자라서도  된다. 파문을 일깨우지 못한 이에게 눈을 뜨게 할 자극. 아마도 타 호흡과는 다를 새로운 눈.


전수 당시의 경험을 역추적, 동시에 파문의 역사에서 이뤄진 전수 이론도 결합. 한 점에 집중.

"하아압!"

처음 해보는 전수. 검토에 검토를 반복한 끝에 시도. 그럼에도 긴장감 탓인지 기합소리가 나와버렸다.

정확한 부위에, 적당한 파문을. 시나즈가와 겐야의 명치의 한 지점을 푹 찌른다. 순간  전체가 들어갔다 나오는 것처럼도 보였다.


"허어억!"

주먹을 꾹 쥔 채 두 눈을 감고 있던 그는, 타격 직후 눈을 부릅뜨며 신음성을 토했다.

"끅...꺽...."


짧은 신음을 더 뱉으며 명치를 감싸쥐고 데굴데굴 바닥에 구른다. 더는 내보낼 공기가 없어 입만 벌린 채로 고통을 호소하는 그. 점점 핏기가 사라지고 입술과 안색이 파랗게 변해간다.


"호흡, 호흡이야! 파문의 호흡을 해라, 겐야!"

그가 안간힘을 다해 배를 꿀럭거리며 숨을 들이키려 노력한다. 얼굴이 창백해졌을 무렵.

스으으

공기가 새는 소리와 함께 겐야의 혈색이 돌아온다. 고통의 몸부림도 가라앉는다.  차례 숨쉬길 거듭한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입가에는 흘러내린 침이 묻었고, 굴렀던 흔적으로 위아래 옷은 온통 흙투성이다.

"달라요.. 공기가 다릅니다."

첫 감상. 겐야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고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며 혼란스러워한다.


"정말 제가 호흡을..."

반신반의하는 그. 지금 이 자리에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판단을 해줄  하나의 존재.

"검을 들어라, 겐야. 못 믿겠다면."

일륜도. 떨리는 두 손으로 그는 자신의 칼을 꺼내들고 치켜들었다.

"호흡의 그 감각을 잊지 말고 유지해라. 그리고 잡아."


수직으로 꼿꼿이 세워든 그 칼날. 최종 선별 이후 지급받고 갖은 노력을 거듭했음에도 변하지 않았던 그 칼. 대장장이의 손길에서 벗어나던 그 순간에 멈춰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색이.


"어"


도신의 하단부터 타고 오르는 새 빛. 겐야의 눈동자에 비치는 그 칼날은 금세 물들었다. 황금의 빛깔로.

"..아..."


저절로 벌어진 입에서 감탄성을 내는 겐야. 그의 뺨을 타고  줄기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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