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52편
산 위로 펼쳐진 숲 속. 귀살대의 구역 안에 이런 장소도 있었구나,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암주 히메지마 교메이의 거처는 이곳에 있다.
"계, 계십니까."
너무나 간소한 외양. 언뜻 봐서는 자연지물과 흡사한 겉모습에 혼란스럽다. 쪽지를 다시 훑어본다. 묘사와 일치했다.
잠시 기다리니 부스럭하고 기척이 난다.
"나무아미타불.. 들어오시게..."
묵직한 음성. 허리를 슬쩍 숙여 들어간다.
옛적에 나비저택이 생기기 이전의 병동에서 잠시 마주쳤던 그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나무아미타불"
거한. 손에 건 염주, 합장한 손길, 흘리는 눈물, 이마를 가르는 흉터, 우락부락한 그 덩치까지.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암주님이시죠? 저는 충주 코쵸우 시노부님의 소개로..."
"아, 그 사람이로군. 무라타라고 했나."
역시나 연락은 당도해있었다. 세세한 일까지 꼼꼼이 챙기는 시노부의 솜씨.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부상을 당해서 재활 과정에 있습니다. 나비저택에서의 훈련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이렇게 오게 됐고요.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드립니다."
꾸벅 깊이 머리를 숙인다. 대답없는 암주. 거절인가. 무언의 승낙인가.
히메지마는 거체를 일으키며 거처의 출입구를 나섰다.
"따라오거라."
그의 어깨 너머로 들려오는 말에 부리나케 따라나선다.
걸음을 재촉하느라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많은 사물이 눈에 띈다. 풀, 나무, 개미, 새, 개울, 돌, 많은 것들.
그는 세차게 내리꽂히는 폭포와 밧줄로 한 몸처럼 묶인 통나무, 어지간한 성인의 키보다도 높은 바위 하나를 차례로 보여주었다.
"보았는가."
"네. 보긴 했습니다만..."
"저것들로 수행을 하면 되네."
잠시 멍해진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인지.
맹한 표정을 봤는지, 염불을 한 마디 왼 암주는 몸소 움직였다.
쏴아아
폭포 아래 정좌를 한 채 머리 한 가득 물을 맞는다.
신음 하나 내지 않고 굵은 통나무 셋을 엮어 삼각으로 쌓은 그 기구를 등허리에 짊어지고 들어올린다.
"나무아미타불..."
커다란 바위 정중앙에 두 손을 붙이고 바닥에 걸음을 내딛자 바위가 부드럽게 밀리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
방법은 알았으나 엄두가 안 나는 수행. 고강도의 훈련 방식을 방금 선보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게 암주는 염불을 한다.
"전투에서 발과 허리는 중요하다. 강인한 하체로 중심의 안정을 꾀해야 정확한 공격과 튼튼한 방어로 이어진다."
동감이었다. 하체와 무게 중심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실제로 싸워오며 느낀 점도 있고. 기초부터 다시금 체력을 쌓아가는 입장에서 하체 단련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간 해왔던 맨몸 운동에 암주의 훈련을 추가한다.
히메지마 교메이의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폭포 아래에서 일각의 시간 견디기, 통나무를 짊어지고 들어올리기, 바위를 밀어 움직이기.
각각을 성공만 해도 통과라는 것이다.
"불을 견디는 건 위험하니... 없는 것으로."
불길 위에서 염주알을 돌리며 암주가 한 말이다. 본래 그의 수행은 총 네 가지라는 모양인데, 초심자에게는 터무니없이 위험해보이기는 했다.
모든 수행은 강제하지 않는다. 버겁다면 언제든 내려가도 좋다. 암주의 방침이었다. 어쨌든 수행을 해보기로 한다.
얼음. 폭포 수행을 위해 물에 들어가고 첫 감상이다. 주변의 기온과는 천지 차이로 얼얼하다. 여기에 더해 저 세찬 물을 맞아야한다.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염불 외우기는 멈추지 마십쇼."
폭포 앞 나무 그루터기에 앉은 대원. 콧등 위를 지나는 긴 흉터. 쳐올려 바싹 깎은 양 옆머리. 거친 인상. 시나즈가와 겐야.
암주 밑에서 수행하는 대원이라고 했다. 폭포 수행은 지켜볼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므로 그와 교대로 하라는 것이다. 암주는 개인 수행과 임무로 바쁘다.
"여시아문일시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뜻도 모르고 외며 견딘다. 뼈까지 시리다. 목이 꺾일 것만 같다. 정수리부터 매몰차게 두들기는 폭포수탓에 냉기가 온 몸에 스며든다. 파문의 호흡으로 활발해진 몸이 열을 만들어낸다. 부들부들 떨며 버틴다.
큰 소리로 염불을 외는 이유는 의식이 있음을 알리는 데 있다. 차가운 폭포수에 의식을 잃어도 자세가 그대로면 겉으로 알아채지 못한 채 방치당한다.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염불 소리의 중단이 곧 구조 신호가 된다.
일각이 길게도 느껴진다.
"나오십쇼."
겐야의 알림. 간신히 넘었다. 나오자마자 맞는 공기가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식은 몸을 데우려 심장이 뛴다. 혈관을 타고 뜨거운 피가 더 빠르게 흐른다.
귀살대의 호흡은 폐와 혈액이 힘의 원천이다. 방대한 공기를 튼튼한 폐로 들이쉬고 혈액이 세포에 전달한다. 순환을 가속해 열이 오르고 흐름이 빨라지면 인간의 몸으로 혈귀를 상대할 수 있게 된다.
차디찬 폭포 밑 수행은 혈액의 흐름, 열 생성에 비중을 둔 듯했다. 신진대사가 활발해짐은 체력의 강화와도 이어지니, 이쪽에서도 손해볼 일은 없다.
"으아아, 춥다 추워!"
겐야는 일각에 훨씬 못 미친 시간에 뛰쳐나왔다. 덜덜 떨면서도 본인이 제일 아쉬운 기색이다.
다음은 통나무 들기. 암주의 시범을 관찰했을 때, 그는 주로 허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끄응"
통나무 뭉치 아래 앉다시피 허리를 붙이고 양손으로 단단히 붙든다. 다리에 힘주어 일어선다. 특히 허리. 허리에 꾹 힘을 주지 않고선 버틸 수도 없었다. 까딱 잘못하면 부상이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마쯤 서있다 내려놓는다.
"후우우"
다음은 바위 밀기.
"히메지마 씨는 이거보다 큰 바위를 옆 마을까지 미시더라고요. 저는 아직 밀지도 못하지만."
이 수행의 요점은 다리와 발. 발을 단단히 박아넣고 버티는 힘이 부족하다면 밀기는 고사하고 밀려나버린다.
첫 날은 살짝 흔드는 데까진 성공했다. 몸 상태가 온전했다면 혹시 모른다. 내상의 여파가 아직 남은 듯하다. 손을 툭툭 털며 비켜서는데 겐야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반복 동작입니다."
며칠 간 수행을 함께 하며 끼니도 같이 하게 됐다. 이런 산중까지 어디서 날라오는지 식사 때마다 번번이 주먹밥이니 뭐니 먹을 것을 그는 구해왔다.
"히메지마 씨가 실력은 제일이지만, 가르치시는 건 영 좋지 못해서요. 잘 보고 훔쳐..아니 연구 중인데요."
비밀을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춘다.
"집중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미리 정해둔 동작을 하는 겁니다. 전 뭐로 해야 좋을지 고민 중이고."
일종의 암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몸을 예열, 그것으로 근육의 힘을 최대한 끌어낸다는 것이다.
"겐야, 너 말인데. 풍주인 시나즈가와 사네미 님과 형제냐?"
순간 그의 팔이 멈추고 안색이 어둡다.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연다.
"...맞습니다. 정확히는 동생이고."
흔치 않은 성씨, 엇비슷한 연령대, 동일한 조직.
"차고 있는 그 일륜도. 그럼 최종 선별도 통과한 셈인데. 왜 임무 까마귀가 날아오지 않는 거지?"
이쪽이야 시노부의 지시로 임무 중단이라지만, 겐야는 달라보인다. 특별히 이상도 없고 암주의 수행도 묵묵히 하는 걸 보면 체력에도 큰 문제는 없다. 더군다나 이런 산중에도 몇 번인가 암주의 거처로 날아드는 꺽쇠까마귀를 봤는데.
스릉
"이거. 무슨 의민지 아시겠죠? 히메지마 씨께 듣기로는 무라타 씨는 사정이 있어 요양 겸 수행차 찾아온 귀살대 선배시라고 하던데."
치켜든 일륜도. 그 칼날에는 색이 없었다. 호흡의 빛깔이 덧입혀지기 전의 날것 그대로의 상태.
"호흡이"
"네.. 원인은 모르겠지만 익히지 못했습니다. 어찌 선별시험은 통과했지만 거기까지였죠."
무호흡의 임무 투입은 위험성이 높다. 상부의 결정을 알린 까마귀는 날아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형님께도 한 소리 들었죠. 호흡도 쓰지 못하는 반푼이는 귀살대에서 나가라, 쓸모가 없다고..."
말 끝을 흐리는 겐야. 마음고생이 어지간했던 모양이다. 쓸모가 없다. 무력하다. 그런 생각도 했던 적이 있다.
만일 자신이 이국인과 만나지 못해 파문을 전수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도 겐야처럼 어떻게든 발버둥이라도 쳤을까? 확신이 들지 않는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았거나, 좌절해 극단적 선택을 했을지도.
"쓸모있어지고 싶다면"
겐야가 이쪽을 쳐다본다.
"호흡, 가르쳐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