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49편 (49/109)



〈 49화 〉49편


앞구르기로 회피하며 두 팔로 바닥을 힘껏 밀어 튀어오른다. 동시에 축격.



발로 힘껏 걷어찬 살집이 밀려나는 사이, 회전의 관성으로 참격. 하나  걷어낸다.

전면부의 기관차와 직접 연결된 첫번째 객차까지 정리. 허나 곧 재생성될 것이다. 경계한다. 전후, 좌우, 상하, 전 방향을.

"히노카미 카구라"

 때 등지고 있던 최전면 기관차량 문 너머로 탄지로의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벽라천!"

까앙


묵직한 충돌음. 끊어졌다. 탄지로의 칼날이 무언가 잘라냈다.

꾸우우웅

"으윽!"

하마터면 손에 든 칼날을 놓칠 뻔했다. 터무니없는 굉음. 마치 거대한 짐승의 숨통이 끊어질 때의 단말마, 진동. 잠깐 귀를 막았다 뗀다.


기운다.

상황이 급변한다. 바닥이 들리고 창밖으로 하늘이 비쳤다가 지상이 가까워진다.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수평을 이루던 다음 차량의 객실이 꺾여보인다. 정상적으로 달리는 열차라면 있을 수 없는 현상. 탈선.


사람, 사람들을 구해야한다.

대부분 의식없이 잠든 이들. 폭력적으로 뒤틀리는 이 커다란 짐승의 골격 안에서 튕기다 피범벅이 되고  거다.


상시 운용하고 있던 호흡의 힘을 빌어 기울어진 바닥을 타고 오른다.



부서져 떨어져내리는 좌석의 잔해가 승객에게 직격하지 않도록 제거한다.


배후의 일행이 잘해주길 바라며 이 자리에서 움직인다. 순간순간 사람들을 덮쳐오는 사방의 사물들을 부수고 으깬다. 불시착하는 기차 안에서.




온 몸이 얼얼하다.

부러진 곳은 없다만, 격렬하게 부딪히다보니 전신이 울린다.

"어이!! 살아있냐아아!!"

멧돼지 녀석의 고함이다.

"이노스케! 탄지로, 탄지로는?!"

"그 자식은 누워있다! 옆구리를 찔려서 날 보냈다고. 사람들을 구하라던데?"

뭔가 문제가 있었나보다. 그래도 당장은 가지 못한다. 눈 앞의 현장. 뱀의 또아리 틀듯 뒤엉킨 차량 안의 승객들을 구조한다.

"카마도 소년에게는 내가 가보마!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손은 써두었으니, 끌어내기만 해도 될 게야!"


스쳐가듯 간단히 말을 남기고 염주는 탄지로 쪽으로 이동했다.

"으악! 이, 이,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야!"


잠꼬대하다 깨어난 사람처럼 사고 현장에 격하게 놀라는 젠이츠.


"앞과 뒤로 반씩 나누어서 진입하자! 꼼꼼하게 살피고, 한 사람이라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

"응응!"


"좋아, 가자고! 부하들아!"

붕괴되어 위험할지 모르니 서두른다. 발견하는 족족 밖으로 끌어낸다. 혈귀는 확실히 죽었다. 차체들을 흉물스럽게 감싼 살점들이 녹아내린다. 혈귀의 술수로 잠든 사람들이 깨어난다.

"아파..."

"도와주세요!"

"엄마! 아빠! 으아앙!"

아수라장.


크고 작은 부상을 호소하는 사람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모두의 의식이 돌아온 덕에 빠짐없이 소리를 듣고 몸짓을 보며 구해낼 수 있었다는 점. 놀랍게도 부상자는 있으나 사망자는 없었다.


이렇게나 큰 사고의 현장에서 기적과도 같았다.

"이건..."

승객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잠시 돌아본다. 그러다 발견한 흔적. 열차의 곳곳에, 그리고 철로까지 도흔이 남아있었다. 후방의 4량. 렌고쿠 쿄쥬로가 맡았던 구역이다.

아마도 불꽃의 호흡, 그 기술을 반복해 충돌의 충격을 최소화한 것이다.

뒤편  칸의 승객들의 용태가 전방 4량의 사람들보다 다소 양호한 것도 이해가 됐다.


젠이츠와 네즈코, 나까지 삼인이 도맡았어도 힘들었는데 이렇게까지.


구조 후 둘은 혼절했다. 부상당한 채로도 열심히 도와준 젠이츠. 사람을 먹지 않는 혈귀, 그래서 격하게 움직이면 잠든다는 네즈코.

어느새 이노스케는 사라지고 없다. 탄지로 쪽이 걱정됐던 건가.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결핵 청년과 혈귀의 사주로 움직였던 여성. 씁쓸하다. 결국 혈귀와 엮여 누구 하나 다치지 않은 사람이 없지 않은가.


날이 밝는다.


"으아아아아아아!!!!!"


비통한 외침.

한참이나 떨어진 전방. 들려오는 소리. 기관차량이 떨어진 인근, 아마도 탄지로가 있었을 그곳. 염주와 이노스케 또한 함께 했을 텐데.

쥐어짜는 듯한  소리가 너무나 격해서 불길하다.

뛴다.


무릎을 꿇은 염주 렌고쿠 쿄쥬로. 불꽃처럼 나풀거리던 그의 망토 끝자락이 지면에 드리웠다. 당당했던 등에는 기운이 없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손에 이빠진 일륜도를 쥐고 덜덜 떠는 이노스케. 염주 앞에서 끅끅거리며 방울진 눈물을 떨어뜨리는 탄지로.


"얘들아, 대체 무슨"


앞으로 돌아가다 멈춰선다.

피.

감겨진 왼쪽 눈과 이마, 관자놀이가 피로 물들었다.


입에서는 붉은 액체가 흐른다.


복부 한가운데 꽂힌 팔뚝. 인간과 확연히 다른 살갗의 핏줄 돋은 그 덩이가 복부를 관통한 채 새벽의 햇볕에 가루로 변해간다.


울컥


팔뚝이 틀어막던 상처가 고깃덩이의 소실에 따라 조금씩 피를 토해낸다.

그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눈빛이 흐려진다.

염주 렌고쿠 쿄쥬로는 죽어가고 있다.

"주, 죽어? 렌고쿠 씨가... 죽는 거야?"

궤짝을 짊어진 젠이츠가 울음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분해.. 분하다고...아무 것도..."


울먹이는 탄지로.

"울지 말라고오!!!"

뒤집어쓴 멧돼지탈에서마저 넘치도록 눈물을 쏟는 이노스케.

"뭣들 하는 거야!"


"무라타 씨..."


시선이 집중된다.


무슨 일인지 모른다. 늦었다. 염주는 당했고 죽어간다.


"이대로 가만있을 거냐고! 무력하게! 그저 보기만 하면서!"

"하지..만..끅...바...방법이..."

방법. 생각한다.  이상 잃고 싶지 않다. 무언가 실마리가..



있다.

파문은 생명의 힘. 회복이 빨랐던 것도 파문이 재생력을 강화, 회복 속도를 가속했기 때문이다.  성질을 극도로 활용한다.


치명상으로 목숨이 다해가던 선대 파문 수련자가 자신의 동료에게 전력을 다한 생명 파문을 넘겨주기 위해 발현한 최후의 파문 기술이라면.

사용 후 시전자는 죽었다고 들었다. 전해받은 동료는 폭발적인 강화, 흡혈귀란 존재를 무너뜨렸다.  기술은 그만큼의 효용이 있다.

문제는 둘.

하나는 이론 뿐이라는 점. 최후의 기술이며 위험성을 동반하니 실제로 시험해보기 어렵다. 다만 그 경로는 익히 알고 있으며 파문 전수의 강도를 조절만 한다면 시전자도 죽지 않고 살 수가 있다.

다른 하나는 호흡의 계통. 이러한 고도의 파문 전수는 동일한 파문 사용자 내에서만 이뤄졌다. 파문과 불꽃. 서로 다른 계통의 호흡 간 파문 이동.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제대로 듣기는 할지 미지수다.


시시각각 식어간다.

손을 쓴다. 렌고쿠 쿄쥬로의 앞에 꿇어앉는다. 사경을 헤매는 그. 들릴락 말락한 미약한 소리가 이따금 들려온다. 곧 숨이 멎을 터였다.

관통상 부위 옆의 대원복 아래로 손을 밀어넣는다. 축축하고 끈적이는 혈액. 차갑다.

"파문의 호흡. 제 10형."


길을 연상한다. 부디 작용하기를. 그 누구라도 이렇게 죽어선 안 된다. 내가 앞에 있다.  방법이 있다.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연다.


나의 생명을 당신에게.

"궁극 심선맥질주"

우웅


기묘한 공명음. 머리가 울린다. 이 때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방대한 양의 파문을 손바닥을 통해 고스란히 전한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거센 풍랑에 휘말린 한 장의 낙엽. 놓으면  된다. 붙잡자. 단시간에 불어넣고 마지막에 끊어야한다.

빛이다.

접촉한 부분에 고요한 빛이 감돈다.

모두는 말없이 지켜본다.

"커륵"


"무라타 씨!"

"어이!"


목구멍으로 핏물이 올라온다. 오장육부가 쥐어짜이는 감각. 시야가 흔들린다.


최대치를 밀어넣는다.

저 안. 신체와 정신의 가장 깊은 곳. 그 너머 어딘가 있는 근원. 살아있음의 뿌리가 일부 깎여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꾸르륵

피거품을 질질 흘린다.


"이러다 죽겠어! 귀살대에선 언제쯤 오는 거야!"


"무라타 씨! 눈 떠요! 무라타 씨!"

"야이 자식아! 때려주기 전에 죽지 말라고!"

소리가 메아리친다.

모든 감각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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