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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화 〉47편 (47/109)



〈 47화 〉4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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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늦어지네."


엔무의 예상이라면 벌써 귀살대원들은 핵을 파괴당한 채 폐인이 되었어야했다.

늦다.


"상관없지. 시간만 끌어도 충분한 걸."

열차와 융합에는 성공했다. 총 여덟의 차량에는 이백에 달하는 인명이 탑승했다. 그들은 독 안에  쥐. 모두 집어삼켜 보다 상위의 혈귀로 올라선다.






"안 돼. 밧줄을 자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너무 위험해."


꿈에서 벗어난 카마도 탄지로는 고심한다. 카마도 네즈코가 움직인다. 차례차례 옮겨다니며 아가츠마 젠이츠와 하시비라 이노스케, 렌고쿠 쿄쥬로의 밧줄을 특수한 불길로 태운다. 잠든 무라타와 여성의 손목을 연결한 밧줄에 가만히 이마를 가져다대는 네즈코.

불이 붙는다. 탄지로가 꿈 속에서 자아를 되찾고 깨어날 수 있게 도왔던 그 불꽃이었다.

밧줄을 검게 물들이며 재로 만드는 불은 번진다. 주위 사물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오로지 사람에게만 옮겨붙는다. 곧 무라타도 몸이 불길에 감싸인다.




"무라타! 불이야! 불이!"

돌연 나타난 불길이 전신을 휘감았다. 즐겁게 불꽃놀이를 지켜보던 소녀는 사색이 되어 발을 동동 구른다.


뜨겁다. 그런데 따스하다.

불꽃은 걷혀간다. 사그라드는 자리마다 변해간다. 어린 아이에서 성장한 신체로, 허름한 복장이 검은 빛의 제복으로, 허리춤에는 일륜도가.


나는 귀살대원이다.

머리 속의 안개가 걷힌다. 의식이 분명하다. 내가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지 명확해진다.

분명 귀살대 일행 넷과 함께 열차 내부에 있었다. 차장의 검표 직후 의식이 끊겼다. 단체로 어딘가 옮겨진  아니라면.. 아직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손을 쥐었다 펴본다. 감각은 있다. 그러나 호흡이, 파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어갔던 그 호흡이 없다. 죽지만 않는다면 자동으로 실행되어야할 그것이 없다.


"괜..찮아?"


가장 확실한 증표. 지금도 떠올리면 선명한데.  손을 적시던 뜨끈한 피가 식어가던 그 순간이 생생한데. 참살당한 그녀가 버젓이 살아있다. 죽기 이전의 모습으로, 가지 못했던 축제의 장소에서.

꿈이다.

바랐었다. 그 아이와 함께 불꽃 구경하기를 바라고  바랐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다.

 속에서 자신이 거짓인줄도 모르고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봐주는 그녀가 허상이라는 것이 너무나 착잡하다. 눈 앞의 모든 풍경이 누군가 농락한 결과라 참담하다.


소녀의 머리칼 위로 비스듬히 씌워진 여우탈. 머리를 쓰다듬는다.

"뭐, 뭐야. 간지러워."

"...미안하다."


여우가면의 사비토, 아무 것도 모르고 보내야했던 그녀.

칼집을 쥐고 잠시 망설인다. 이내 결심한다.

스릉


그녀의 눈망울에 비친 나는 일륜도의 날을 목으로 가져간다. 그 눈이  커져간다.


"뭐..하는..."

"미안했다."

무섭다. 떨린다. 피부 가까이 와닿은 칼날이 선득하다. 진짜 꿈인가. 이대로 죽으면 끝나버리진 않을까.

망설일 시간이 없다. 그만두면 누군가 또 잃게 된다. 무력하고 무모했고 방심했던 과거를 끊어낸다. 가식을 부수고 피에 젖은 진실을 취한다. 고통스러운 현실, 그러나 소중했던 사람들의 마지막만은 절대 잊지 않는 현실로 돌아간다.

떨리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붙잡는다. 바로 지금,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한 때.

"으아아아악!!!"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며 찍어누른다. 파고드는 칼날에 피가 튄다.





"아아악!!"


식은땀이 흐른다. 목을 만진다. 아무런 생채기 하나 없다.


"음! 깨어났군!"

염주 렌고쿠 쿄쥬로의 음성에 안심한다. 호흡이 돌아왔다. 주위 감각이 선명하다.

탄지로와 이노스케가 없다. 탄지로의 동생 네즈코와 여전히 잠든 젠이츠. 바닥에 쓰러진 남녀가 넷. 눈물을 흘리며 앉은 청년 하나.

"이들이 혈귀의 협력자였어.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지. 카마도 소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찔했을 게야!"

결핵을 앓고 있는 청년의 실토로 저간의 사정을 파악한다. 혈귀의 주술로 모두 잠든 것, 사주당한 남녀 다섯이 꿈 속에 침입했던 것, 깨어나 탄지로에게 넷이 제압당한 것, 알고 있는 전부를 이야기했다.


손목에 남아있는 밧줄의 잔재를 뜯어낸다. 불에 탄 흔적이 있다.

"지주로써 부끄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만, 시간이 없다!"


적색의 도신을 꺼내드는 염주. 같은 객실 안의 사람들을 집어삼킬 기세로 돋아나 번져가는 혈귀의 살덩어리들.


"카마도 소년과 멧돼지 소년은 기관 차량으로 보냈네! 그러니"

염주는 네 개의 손가락을 펼쳐보였다.

"8량 편성이  차량, 뒤쪽 4량은 내가 지키겠다! 노란 색 소년과 카마도의 여동생, 무라타 대원은 앞의 4량을 부탁하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쇄도하며 승객들의 사이 사이를 베고 찢는 검격. 염주는 뒤쪽의 차량으로 사라졌다.

"이 녀석은 자고 있는데... 네즈코 양! 일단  수 있는 걸 해보자!"

"웅!"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손의 손톱을 길게 세우더니 덮쳐오는 살덩이를 할퀸다.

전보다 뚜렷히 강해진 혈귀의 생명력. 차체의 전면에서 강하게 감지된다. 본색을 드러냈다.

네즈코가 객실 중간을 맡는 동안

"황매화!"




다음 객실로 넘어가기 전에 가로막는 고깃덩이에 일격.


"웅, 응!"

거리가 떨어진 상황. 네즈코의 사방을 감싸며 혈귀의 육편이 덮친다. 건너 객실 또한 점거당해간다. 한시라도 늦으면 저 잠든 승객들의 신체가 흡수당한다. 전진이냐, 후퇴냐.

"번개의 호흡, 제 1형"

콰앙

"벽력일섬, 육연"

연달아 폭음이 터진다.


노란 섬광이 객실 내를 직선으로 메우며 갈랐다.

후두둑

네즈코를 붙들었던 덩어리들이 피섞인 조각들로 분해된다.


착지한 그는 젠이츠. 발도 자세를 잠시 유지하다 바로 선다.

"네즈코 쨩은 내가 지키겠어."


줄곧 네즈코에 대한 호감을 표해왔던 젠이츠. 그의 마음이 잠에서 깨웠다. 위기에 처한 그녀를 위해 일어난 것이다.

"지킴...키..음... 드르렁.."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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