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46편
"무라타"
어두운 밤. 길을 비추는 가로등의 불빛. 그 아래 가만히 서있는 한 사람.
"무라타! 자꾸 기다리게 할 거야?"
"어, 어! 미, 미안.."
다그치는 소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멍하게 있다가 그만 기다리게 만들고 말았다.
오늘은 근처 마을과 연계해서 치르는 합동 축제의 날. 규모가 꽤 있어 불꽃놀이도 화려하다고.
서둘러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다. 샐쭉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소녀는 이내 배시시 웃는다.
"손."
"어?"
엉겁결에 손을 내민다. 먼저 얘기를 꺼낸 그 아이는 잠시 멈칫하다 살포시 손을 겹친다. 평소와 달리 꾸며입은 옷차림, 옅은 화장, 붉은 입술. 그녀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린다. 열 손가락이 서로 엇갈리며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은 깍지걸이가 됐다.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혹시 열이 있는..."
뺨이 발갛게 상기된 그녀에게 물어본다.
"아냐! 그런 거... 어쨌든 오늘은 신나게 놀 거니까!"
가슴이 떨린다. 맥박이 빠르고 심장이 뛴다. 이상하다. 긴장은 되는데 기분이 좋다.
이 아이와 같이 있는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랄 만큼 즐겁다.
엔무. 하현의 1. 키부츠지 무잔이 지정한 십이귀월의 하현 여섯 중 생존자.
이 혈귀의 술수는 꿈을 이용하는 것. 꿈을 꾸게 한 뒤 대상의 정신의 핵을 파괴해 죽인다. 인간의 원동력은 마음이고 정신. 부수기만 한다면 상대는 살아있는 시체로 전락,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감사합니다.."
"좋은 꿈을 꾸길."
검표 과정에 주술을 걸어 귀신 사냥꾼들을 잠재우는 데 공헌한 차장에게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선사한다. 꿈 속에서.
"그, 그럼 저희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남녀 다섯. 그들에게 엔무의 분신이 지시한다. 인간의 손을 잘라놓은 그 형상, 손등에 돋아난 입이 우물거린다.
"귀신 사냥꾼들이 깰 수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 잠이 깊어질 때까지. 감좋은 녀석들이니 주의, 또 주의하고."
분신이 꿈틀거리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지급한 밧줄로 그들을 묶을 때, 특히 몸에 닿지 않게 조심하도록."
일동이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분신은 바닥에 녹아든다.
"인간으로 인간을 잡는다. 재밌잖아."
기관 차량의 위에 서서 바람을 맞는 엔무는 중얼거린다.
지시대로 그들은 귀살대원이 깊이 잠에 빠지길 기다려 접근했다.
저마다 담당키로 한 인물에게 다가가 자신과 대원의 손목을 밧줄로 엮는다. 특수한 혈귀술이 부여된 이 줄로 상대의 꿈에 칩입한다.
"무라타! 저기! 저거!"
이리로 저리로. 들뜬 그녀에 휘둘리다시피 끌려다니며 구경거리들을 오간다.
"아깝다아아"
"괜찮아?"
"딱 한 번만! 아저씨, 그거 하나 더 주세요!"
쪼그려앉아 집중하는 소녀. 예리하게 노렸다 싶었는데 여지없이 찢어지는 뜰채. 금붕어 낚시의 마지막도 실패.
"아, 진짜!"
"꼬마 아가씨, 다음 기회에 또 해보쇼!"
걸걸한 음성. 장사꾼 아저씨의 안면엔 득의만만한 함박웃음이, 소녀의 부풀린 볼에는 불만이 가득하다.
"이거 어때?"
"귀엽다!"
눈에 띈 가게의 내걸린 탈을 가리키니 그녀가 반색한다. 주둥이가 삐쭉한 여우 가면.
가슴이 뜨끔했다.
"무라타?"
"아, 아냐. 먹을 거 사러 갈까?"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그 아이에게 말한다. 곧 불꽃놀이가 시작한다.
짝
"맞다! 간식 사서 언덕으로 가자. 거긴 잘 보일 거야!"
손뼉치며 즐거워하는 그녀.
설탕물을 발라 반짝이는 사과사탕, 맛나게 그을린 꼬치도 산다. 어린 아이 둘이 먹기엔 조금 많다 싶다가도 아무렴 어때 하는 마음.
웅성이는 인파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이미 돗자리를 깔고 자리잡은 사람들도 앉았다. 풀숲에 엉덩이를 붙인다.
퍼엉
첫 불꽃이 화려하게 밤하늘을 수놓는다.
"타마야아!"
그녀가 두 손 가득 외친다. 그리고 싱그럽게 미소지었다.
축제로 떠들썩한 거리. 어울리지 않게 손아귀에 날카로운 송곳을 쥔 여성. 인파로부터 멀어진다. 걷는다. 멈춘다.
"여기야."
벽을 더듬는다. 꿈 안에서의 의식이 축제 어딘가에 있다면, 막혀있는 이 벽의 너머는 무의식의 세계. 그곳에 정신의 핵이 있다.
찍 찌직
찔러넣고 찢는다.
세로로 길게 내리긋자 가림막의 건너편이다.
춥다.
어둡다.
한겨울의 찬 바람이 할퀸다. 침입자는 팔을 부둥켜안고 냉기를 막으려 안간힘을 쓴다. 드넓은 공간. 그 어디쯤.
소년이 보인다.
얇은 옷 한 겹만을 걸치고 바닥에 웅크리고 있다. 무언가를 가리려는 몸짓. 덜덜 떨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꼬마야."
아이가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보여주겠니?"
끄덕인 소년은 두 손 모아 쥐고 있던 것을 살짝 틈을 연다.
정신의 핵이 틀림없다..
보자마자 찔러 파괴하려했다. 마음먹고 송곳을 세게 움켜쥐었다.
"하아"
힘이 탁 풀린다. 찬 바람에 새어나온 입김이 하얗게 풀어진다.
소년의 손 안에는 작은, 아주 작은 불씨가 빛났다. 금색의 불빛은 꺼질듯 위태롭게 흔들린다. 금방이라도 다할 것만 같은 그 불빛은 그러나, 맑고 투명하며 따듯하다.
소년은 다시 그것을 소중히 끌어안는다. 끝나지 않을 추위와 어둠 속에서. 꺼지지 않게 언제까지나.
툭
송곳을 떨군다.
투둑
방울진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유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