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44편
지난 몇 년은 헛되지 않았다.
하루 중 최대치의 시간을 수련에 할애했다. 그 시간만큼은 진심을 다해 갈고 닦았다.
비록 길지 않았던 기간임에도 공백의 시간에 파문의 호흡을 새겨넣을 수 있었던 기반은 이미 과거에 다져져 있었던 거다.
"갸아아악! 하가네즈카 씨이! 죄송해요오오!!!"
탄지로가 못난이 가면을 덮어쓴 사내에게 한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쫓기고 있다.
칼을 부러뜨렸다는 이유다. 과거 일륜도를 내게 건네준 사내. 그가 칼에 보인 무한한 애정. 나타구모 산에서 도를 잃어버렸다면 진득하게 쫓겼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귀살대 복면대원이 가져와준 칼의 손잡이를 쥐어본다.
"좋아! 이 몸의 칼은 이래야지!"
"쳐죽여주마, 이 망할 놈의 꼬맹이!"
"죄송해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테니!"
멀쩡한 쌍칼을 돌덩이로 내리쳐 이가 아작나게 만든 이노스케. 카나모리란 담당 대장장이가 분노해 날뛰려는 걸 탄지로가 뜯어말렸다.
대장장이들의 난동 정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회복만을 신경쓰면 됐던 시간의 마지막 날이.
밤이다.
젠이츠와 이노스케는 곯아떨어졌다.
"탄지로. 자냐?"
"왜요, 무라타 씨."
"다행이다. 물어보고 싶어서."
탄지로가 부슥거리며 돌아눕는 소리가 들린다.
"전에 해줬던 임무 이야기. 그게 큰 도움이 돼서 우선 고맙고.. 그 교육해주셨다는 분 성함이..."
"우로코다키 씨예요. 그건 왜.."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 최종선별에서의 기억.
'역시 네 녀석도 그 가증스런 우로코다키의 제자구나'
귓전을 울리는 혈귀의 울음소리. 싸우고 죽어간 소년.
"사비토."
"사비토를 어떻게 아시는"
"날 구하고 죽어버린 소년의 이름이다."
무력하고 참혹하게 끝나버린 최종선별의 마지막.
"그가 맞섰던 이형의 혈귀. 덩치가 매우 크고 팔다리가 마구 돋아난 놈. 그놈과 싸우다 죽었어."
그저 살아남겨졌다. 운이 좋았다 여기고 싶어도 마음이 무겁게 짓눌린다.
"그 혈귀라면... 죽었어요. 제가 목을 베었으니까."
우로코다키를 말하고, 여우탈을 언급했으며, 팔을 증식해 공격한 혈귀. 틀림없다. 탄지로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죽은 거다.
"드디어.. 이제야.."
갖은 이유로 어찌하지 못했던 그놈을 탄지로가 잡았다.
"사실 사비토를 직접 만났다고 해야할지 아닌지 애매하네요."
사기리야마 산에서의 수행 중 사비토와 마코모와의 만남.
"바위를 베고 그 애들은 사라졌어요. 나중에 우로코다키 씨로부터 오래 전에 죽은 제자들이란 말씀을 듣고서야 확신했지만요. 죽어서도 도와주려했던, 착한 사람들이구나하고."
사비토 이야기를 더 해줄 수 있냐는 요청에 기억을 더듬는다.
"그 때 최종선별이 끝나고 사비토의 친구도 만났거든 토미오카 기유라고.. 현 귀살대 수주시지."
"엑. 그 분이 동기였나요?"
"그래. 절친한 사이였는지 난리도 아니었는데. 뭐, 넘어가고.. 사비토란 그 소년은 갑자기 나타나서는..."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이는 탄지로.
용감했던 그의 행적, 혈귀와 전투를 벌이며 선보인 기술들.
"역시 사비토는 대단했구나. 내가 한참 못 이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네."
탄지로는 웃었다. 속이 후련했다. 혼자 끌어안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은 기분. 안심이 된다. 마음 한 편에 뻥 뚫린 자리가 조금은 메워졌다.
"우세요?"
"아니 갑자기 눈물이 나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몇 살이신데요?"
"넌 몇 살인데"
"올해 열다섯인데요."
"너보다 세 살 많던가.."
"엑. 그럼 늙은 것도 아니신데 무슨 나이타령을 하시는..."
"잠이나 자자."
뭐가 웃긴지 쿡쿡 웃는 탄지로. 따뜻한 마음씨, 곧은 성품. 좋은 녀석이다.
"아, 맞다."
정적을 깨고 잠들기 직전에 물었다.
"탄지로, 네 등에 지고 있던 궤짝. 거기엔 뭐가 들어있는 거야?"
소년은 티없이 순수한 미소를 가득 지었다.
"여동생요."
"아, 여동.. 여.. 뭐라고?!"
이상한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