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35편 (35/109)



〈 35화 〉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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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본다.

불과 조금 전까지의 상황을 떠올린다. 제삼자가 되어 주의깊게 관찰한다.

분명 별 이상 없이 올라가던 중에..

정말 없었나?


거슬리던 소리. 소리다. 그 괴이한 소리의 감지 직후에...

측면. 사람 둘.

돌아보며 경계한다.


궤짝같은 걸 등에 짊어진 소년과, 상의를 훌렁 벗어던진 채 씩씩거리는 멧돼지탈.

사람 맞나?

궤짝 소년은 그나마 겉옷 아래 대원복으로 귀살대원임이 분간 가능하다. 그런데 멧돼지..  녀석은 바지만 입었지, 칼은 두 자루, 인간이 탈을  건지 멧돼지에 사람 팔다리가 돋아난 건지 모를 생김새까지 범상치 않다.


저쪽도 눈치를  모양. 이마 한 편에 넓게 흉이 진 궤짝 소년이 입을 연다. 밝은 목소리로 미소지으면서.

"지원하러왔습니다. 계급 계, 카마도 탄지로 입니다."


"계...? 계라고!?"

계. 귀살대에 처음 발을 들이자마자 부여받는 최하위 계급. 초짜. 나타구모 산 임무로 이미 눈 앞에서 보다 상위 계급이던 대원도 당해버린 마당에.. 이런 처사는...


"왜 지주를  보낸 거야! 계 따위는 몇 명이 온들 소용 없어! 쓸모가 없다고!"

무의미하다. 희생만 늘어날 뿐이다. 동행했던 아홉 외에도 이미 사상자 발생은 보고되었을 터. 최고위 전력의 긴급 투입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느닷없는 멧돼지탈의 주먹질.


"이노스케에에!"


"시꺼! 쓸모가 있냐 없냐를 따지면 네놈의 존재 자체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겁쟁이처럼 숨어나 있던 자식이.. 으헉?!"


꾸구국


말리는 카마도 탄지로. 멧돼지탈, 이노스케의 주먹을 받아낸 손아귀에 힘을 준다.

"으으아아 놔, 놓으라고!"

"내가 더 선배다, 이 자식아! 대원 사이의 분쟁은 대율 위반인 건 알고 덤비는 거냐? 쓸데없는 짓 할 시간에 상황설명이나 들어!"


밀쳐내듯 놔준다. 이노스케는 푸드득 손을 흔든다. 금방이라도 멧돼지탈에서 김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다.

까마귀의 지령. 도합 열 명의 집합. 입산. 원인불명의 내부분열. 그리고 지금.

"헹. 도망쳐서 오줌이나 지리고 있었다는 거구만! 쫄보같으니."

주먹질했던 손을 주무르며 투덜거리는 이노스케.


"뭐, 이 자식이 진짜!"


"이노스케! 제발, 그럴 때가 아니라니까!"


멧돼지탈의 말을 듣다보니 열이 뻗친다. 난감해하는 궤짝남때문에 가라앉힌다.

끼르륵

그 소리다.


"이 소리... 대체 뭐지?"


카마도 탄지로도 낌새를 챈 듯했다.

"이 소리야!  소리가 들려오고 난 뒤에 대원들끼리 칼부림을 벌이기 시작했다고!"


숲의 어둠을 헤치고 하나  늘어서는 인영. 피를 흘리며 생사가 불분명한 귀살대원들. 예의 홀린 듯한 걸음과 몸짓으로 덤벼든다.


"핫하! 이놈들 죄다 멍청이구만! 대원들끼리 죽이려드는 건 규율에 어긋난다는 걸 모르는거야!!"

이노스케는 종전의 분풀이라도 하듯 신이 나서 뛰어든다.

"아니, 그게 아냐! 움직임이 이상해! 무언가에 조종당하고 있어!"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카마도 탄지로의 지적.

조종당하고 있다. 그럴 수 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어떻게? 대체 무슨 방법으로?

그러는 사이 다른 하나가 들러붙어온다. 냅다 칼을 들이밀어오는 상대. 상당히 허술한 칼놀림에 어렵지 않게 막아낸다.

궤짝과 멧돼지는 그 사이 말다툼 중이다.


다 썰어버리겠다는 이노스케. 생사불문 동료를 상처입힐 순 없다는 탄지로.


멧돼지는 분통을 터뜨리며 탄지로에게 박치기까지 해버린다.

"대체 전장에서 뭣들 하는 거야.."


후방에서  명이 가세한다. 몸을 틀며 대응하려는데




탄지로가 팔뚝을 붙잡고 이노스케가 목덜미를 감아 넘어뜨린다. 넘어진 대원의 등 위 허공을 칼날이 스친다.

사각

뭔가에 붙잡힌듯 다시 일어서려던 대원이 풀썩 엎어져버린다.


"실이야! 실로 조종당하고 있어! 실을 베어버려!"


탄지로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이노스케가 그 소리에 돌진해 세 명 사이를 가로지르며 양쪽에 수 차례 칼날의 궤적을 남긴다. 우수수 쓰러지는 대원들.


"너보다 내가 먼저 눈치 챘걸랑! 에헹!"

이 녀석들의 행동, 말은 분명 신입 티가 물씬 난다. 그럼에도 강하다.

조종당하는 대원의 무성의한 검을 받아낸다.

두리번거리다 코를 움켜쥐는 카마도 탄지로. 후각이 예민한 건가? 뜬금없이 왼팔을 드는 그. 당황하며 그 위를 세차게 베어낸다. 왜?

투둑


바닥에 떨어져내리는 거미 두 마리. 잽싸게 줄행랑치는 벌레들.


거미, 실.

놓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진즉 거미는 파문 탐지의 범위 내에 있었다. 거미줄도 조금  주의를 기울였다면 파악했을 거다. 근데 놓쳤다. 그럴 거란 가능성의 발상을 차단해놓고 있었던  아닌가? 정보는 들어오고 있었는데도 일말의 변수를 놓쳐서 이렇게 됐다.

미지의 상대. 열린 사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려해야한다.

고민할 틈도 없이 부스스 일어서는 대원들. 끝이 없다.

탄지로와 이노스케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

실베기만으론 끝이 없다.

"실붙이는 거밀 죄다 죽이면 되잖아!"

쌍칼로 번갈아 바닥을 쿡쿡 내리찍는 이노스케.

"무리야! 거미 수도 제법 많아! 거미를 부리는 혈귀를 찾아야한다구!"


다시금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는 탄지로. 남는 손의 검으로 적을 견제한다.


"카마도 탄지로.. 였나? 너 후각이 좋은 편인가!"

"네, 냄새를 잘 맡습니다! 저기..."

"무라타! 무라타다!"


"무라타 씨! 전 이상한 다른 냄새때문에 코가 힘을 못 써요! 어떤 방법이 있으신가요?!"


"나도 비슷해! 내 탐지 범위 안에는 여기 있는 인원 외에는...어?"


고개를 든다. 공중에서 위압감이 느껴진다.



탄지로도 자신에게 드리우는 그림자에 위를 본다.


창백한 얼굴과 옷.


허공에, 정확히는 가느다란 거미줄  가닥만을 밟고 떠있었다.

"우리 가족의 조용한 생활을 방해하지 마라."


조용히 읊조리는 그. 강력한 혈귀임이 틀림없다. 가족. 혈귀가 다수 있다는 말인가?

식은 땀이 흐른다.


"너희 따위는 금방 '엄마'가 죽여버릴 거거든."

나지막히 선고한 혈귀는 유유히 사라진다. 거미줄 위로 걸어가는 그녀석은 마치 보름달 속으로 걸어가는  보였다.

"제기랄! 어딜 내빼는 거냐!"

그새 수직으로 뛰어올라 칼질 해보려던 이노스케는 너무나 높았던 상대에 닿지 못한 채 추락. 부들거리며 일어선다.

"이노..스케인가? 나도 카마도 탄지로도 적.. 아마 그 엄마란 녀석을 찾아낼 수단이 지금은 없어. 너는 갖고 있나?"

"그래, 이노스케! 만일 네가 오니의 위치를 정확히 탐지하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협력해줘!"

"아, 아아, 알았다고! 귀찮게들 하는구만, 젠장. 시끄럽다고!"


재차 공격을 받아친 이노스케는  자루 칼을 지면에 꽂아넣었다. 무릎을 꿇고  팔을 좌우로  뻗는다.

"짐승의 호흡, 제 7의 형, 공간식각"

그답지 않게 차분한 음성. 무언가 잡아내려는 듯한 집중력. 잠시 후,


"찾았다!"

"찾아냈어!?"


"오냐! 저쪽이다!"


반색하는 탄지로와 자신있게 몸을 틀어 칼로 그 방향을 쿡 찔러보이는 이노스케.

자신만만하며 거짓없는 행동거지를 보아 분명 탐지 수단은 확실해보인다. 잠시 무방비해지는 대신 광범위 탐색이 가능한 기술인가?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만!"

"정말 대단하다, 이노스케! 잘 했어!"

잠시 멍해지는 이노스케. 감상에 빠질 틈이 없다.


"염병! 끝이 없잖아!"


소모전. 실을 끊고 거미를 베어도 끊임없이 일어서는 대원들. 이대로는 본체를 만나보기도 전에 지치고 말 거다.

두 명을 본체에 보내고 뒤는 내가 맡으면 효율적이겠지. 가는 길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최소  명은 가야한다.

"무라타 씨랑 내가!"

"카마도 탄지로였지? 그냥 여기는 나한테 맡겨라! 뒤는 신경쓰지 말고 어서 가! 본체를 잡는 거다!"

잠깐이지만 지켜본 두 사람의 호흡이라면 처음 본 나보다는 잘 맞을 거다.


"오줌싸개가 뭐래는거냐!"


"누가 오줌지렸다는 거야, 이 망할 멧돼지야!"

"앙?!"


"너한테 말한  아니거든!  다물고 있어!"

저  안에선 이미 똥오줌 못가라는 놈 취급인가? 화가 난다, 화가 나!

"혈귀의 근처에는 더욱 강력하게 조종당하는 녀석들이 있겠지. 그쪽은 너희 둘이 가줘!"

저 시끄러운 멧돼지도 빨리 데려가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자, 이노스케!"

"이거 놔, 이 자식아! 우선 저놈을 한방 때려주고 가야겠다! 누가 망할 멧돼지냐!"

분풀이할 기세로 날뛰는 이노스케를 잠자코 끌고가는 카마도 탄지로.



"시끄럽네! 잔말말고 어서가!"

둘은 곧 멀어진다.


"돌아오면 반드시 때려줄줄 알아라! 으갸갹!"

악에 받친 멧돼지탈의 고성이 작아진다.

남은 건.


부스럭

일어서며 다가오는  명인가의 조종당하는 대원들.

다 대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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