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34편
오밤중.
해가 일찌감찌 떨어졌다. 구름은 약간. 보름달만이 고고하게 빛나는 하늘.
대조적으로 깜깜한 어둠이 드리운 산. 나타구모.
입산 직전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총 아홉.
"오, 이제 다 모인 것 같군."
나까지 열. 개중 한 명이 사무적인 말투로 맞아준다.
"빨리 빨리 좀 다닙시다. 어휴."
"죄송합니다, 늦어서.."
턱을 괸 채 앉아있던 대원이 몸을 일으키며 한 마디 쏘아붙여온다. 얼굴 한가득 따분함 그 자체였다.
'도중에 혈귀와 만나지만 않았어도 늦을 일은 없었을 텐데..'
속으로 억울함을 삼키며 일행에 녹아든다.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우뚝 선 나무들이 즐비하다. 이미 어두운데 숲 속은 그림자까지 더해 암흑. 사이로 난 길은 아가리를 쩍 벌린 짐승같다.
조우한 일단의 무리와 나눈 대화로 대략의 정보는 들었다. 희생, 실종자는 다수. 적이 누구인지, 어떤 형식의 공격을 하는지도 불분명.
모른다. 미지.
두려움이 다소 느껴진다. 그간 많은 임무를 수행했고 혈귀와 맞상대해왔지만 여전하다. 무력했던 과거가 떠오른다. 기억이 어깨를 짓누른다.
크게 숨을 들이킨다.
아무것도 못하진 않겠다. 최선을 하자.
"아앗!"
"뭐야? 아, 더럽게 들러붙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이건"
산은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길을 찾지 못해 나무 사이로 걸어가야만 했다.
새어들어오는 달빛. 팔을 들어 비춰본다.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내는 가닥. 더없이 가늘고 끈끈하게 달라붙어 나풀거리는 거미줄.
찬찬히 둘러본다. 곳곳이 거미줄 천지였다. 기둥끼리는 물론, 이파리, 가지까지 가리지 않고 거미줄이 쳐져있다.
끼릭
끄르르
'무슨 소리지?'
예민한 감각에 걸려든 괴성. 풀벌레 울음소리라 넘어가기에는 소름이 돋는다. 다가온다.
"이봐, 무슨 소리 안 들리나?"
대원복 위로 겉옷을 걸친 이가 소리친다. 역시 감지한 건가?
"대체 어떤 소릴... 아악!"
피가 튄다.
귀살대원 한 명의 검이 동료를 베었다. 참담한 상황. 모두가 경악한다.
"이 자식!"
분노한 얼굴의 흉터를 실룩거리며 칼을 뽑아든 대원이 달려나가려는데,
챙
"넌 뭐하는 거냐!!"
다른 대원이 또다시 덤벼든다.
서로를 의지하며 조심스레 한 발짝씩 떼던 동료들. 죽고 죽이는 참극의 현장, 아비규환은 순식간이었다.
쒜엑
예외는 없다. 분명 처음에 베여 생사가 불확실해졌을 대원이 기괴한 몸놀림으로 검을 휘두른다. 막아야 한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울분을 토하며 검을 뽑는다. 황금빛 도신이 검격을 받아낸다.
검으로 받아내기만 한다. 지금 파문을 쓸 수는 없다.
눈알이 흰자위만 보이는 목전의 이 사람도 귀살대 동료. 영문이 어찌됐건 처단할 수는 없다. 설령 이미 죽었다 할지라도. 저마다의 이유로 혈귀와 싸워온 이들을 상처입히기는 싫다.
적의 공격이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단순히 겁에 질려 미쳐날뛴다 보기엔 이상한 구석이 많다. 방식은 판명된 바 없다.
우선 거리를 둔다. 지켜보자.
쇳소리를 내며 경합 중이던 상대의 검을 힘주어 쳐낸다.
삽시간에 걸음 몇 번으로 거리를 둔다. 풀숲으로 몸을 감추며 상황을 본다.
홀린 것처럼 방금의 상대는 다른 이들을 향해 덤벼든다.
원인이 뭔지, 대안은 없는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