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32편 (32/109)



〈 32화 〉32편

돈이 생겼다.

귀살대에는 급여라는  있었다. 돈을 준다. 정기적으로 얼마씩 주는 모양이다.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 수록 조금씩 차이가 난다 들었다. 과연 최고위인 지주급이라면 얼마를 받는지 궁금하다.

'이틀간 휴식이다아'

날아올 때마다 동서남북 중 어디로 파견될지 점쳐보는 일도 소소한 재미였는데, 쉬란다.


모처럼 휴식. 수중에는 얼마쯤 돈도 있다. 나들이나 가보자.


해서 지금은 번화가에 와있다.

인파로 붐비는 거리.


"우왓"

정신놓고 두리번거리다 걸려넘어질 뻔했다. 길바닥에  철로가 깔려있다. 언젠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적 이용했던 기차라는 물건, 거기에도 깔려있던 건데. 그렇다면,

황급히 뒤로 몇 발짝 물러난다.


저만치 좌측에서 두 눈에 불을 켠 거대한 물체가 철로 위로 미끄러지듯 돌진해오고 있었다.


"후우우"


기차와는 다르게 생겼지만 비슷한 물건인가 보다. 아니 사람들 다니는 길 한복판에 왜 저런 게 다니는지.

한숨 돌린다. 가지각색의 복식을 갖춘 사람들. 전통복을 걸친 사람. 오래 전 만났던 이국인과 엇비슷한 옷을 입은 이도 눈에 띈다. 양복이라고 하던데. 누구를 봐도 나름대로의 맵시가 살아있다. 다들 외관에 어느 정도씩은 신경쓰는 듯하다.

나는 여전히 제복이다. 물론 티가 덜 나도록 위에 한 겹 더 걸쳐 입었다. 평소와 다르게 허전한 구석도 있는데, 검. 일륜도는 잘 감춘 상태다.

타 대원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귀살대는 이 땅의 정부가 인증한 공식 기관이나 조직이 아니라는 것. 이야기를 빨리 들었더라면 경관에게 진검 소지 명목으로 쫓기는 경험은  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정말 겉으로 눈치  채게 잘 감춰뒀다.

사실 당장 혈귀가 나타나도 쓸 일이 거의 없지만. 이거야말로 애물단지가 아닐까? 행여나 하는 마음에 어디 두고 다니지도 못하니.


이런 고민들은 잊을 만큼 거리는  구석이 많다.


혼자 혈귀인지를 막무가내로 뒤쫓을 때 마주친 도시는 다급한 심정에 볼 겨를이 없었다. 여유있게 감상하는 지금은 또 감회가 남다르다.

분명 밤인데 대낮처럼 환하다. 사람들의 거주지 위주인 다른  과 다르다. 노변은 그야말로 상점가. 투명하고 단단한 유리 너머 진열한 옷들. 맛난 냄새가 새나오는 가게. 모두가 사람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이 넘친다.

막상 그런 풍경을 눈 앞에 두고도 품속의 돈을 꺼내고픈 의욕은 들지 않았다.

삭막하게 보내온 시간에 짓눌린 것처럼, 정상적이어야할 이 경치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기분전환이나 하자.

살아숨쉬는 일상을 보며 어둡고 축축한 마음을 한 꺼풀씩 벗는다.




"아, 자,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부딪힌 행인에게 사과한다. 코끝을 스치는 묘한 향기.

바로 옆에 특이한 상점이 있다.


속이 비치는 유리병에 담긴 빛깔있는 액체. 크기가 다른  병들은 모양도 다르고 때론 불투명한 도자기같은 병도 있다.

향수, 화장품 종류를 취급하는 상점이다. 잡화점이라고 하던가? 정확히는 모르겠다.


향을 맡아보는 손님쪽에서 흘러온 향기였다. 상쾌하고 질리지 않을 느낌.


걸음이 절로 옮겨진다.

방금 손님이 떠나 빈 가게 안. 주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선반을 닦는다.

"아, 어서오세요."


상냥한 미소를 띄우며 능숙한 몸짓으로 다가든다.

"혹시... 동백 기름이 있을까요?"


"있다마다요. 이쪽으로."


반신반의했는데 다행이다. 몸을 꾸미거나 치장하는 부류의 물건은 갖춘 모양이다.

작고 매끄러운 유리병. 속은 보이지 않고 마개가 입구를 막고 있다.

"머리..에 쓰시나봐요?"


"아, 네.. 뭐."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다.

값을 치르고 손에  감촉을 만끽하며 가게를 등진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본다. 천천히 봉한 마개를 연다. 가까이 한다.

손에 발라 머릿결을 살며시 누르던 손길. 눈을 가리던 앞머리를 틔워준 손질. 탁 트인 시야에 가득차던 그녀의 웃음.

작디작은 병에 담겨있다.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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