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31편 (31/109)



〈 31화 〉31편

번득임.

무너진다.


다량의 파문이 빠져나감과 거의 동시에, 혈귀의 발부터 위로 타올라간다. 잿빛으로 허물어진다.

"크아, 으아아악!"

하반신을 잃고 추락하는 혈귀의 상체를 비틀거리며 지켜본다.


지난 최종 선별에서의 일전은 싸운 뒤 무력화되었다. 지금은 아니다. 버티고 서있다. 아직 여분의 힘도 있다. 나아졌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는데에..."

상반신, 팔, 목, 전부 가루가 된다.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한 마디를 흘리며 끝까지도 미련은 버리지 못한 모습이었다.

반성하거나 뉘우치기는커녕 하나라도 더 사람을 집어삼키지 못한 집착만 짙게 보이는 최후였다.

 차례 심호흡을 한다. 아직 남자를 풀어주지 못했다.

"윽... 으으욱..."


그는 결박을 풀어주는 내내 말 한 마디 못하고 닭똥같은 눈물만 뚝뚝 떨군다. 종전의 몸부림은 더 이상 없다. 팔까지 자유로워지자, 남자는 묶인 자국이 선명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철없이 어린 아이가 아끼던 무언가를 처음 잃어버렸을 때처럼.

지친다.


경계를 풀지 않고 다시금 주위를 둘러본다. 안전함을 확인후에야 안심한다.

그가 감정을 토해내는 동안 아무렇게나 깔고 앉는다. 옷이 다시 더러워졌다. 괜히 등꽃 집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크흥"

코푸는 소리. 아직 울먹임은 남았지만 어느 정도 침착해진 모양이다.


"어떻게  거죠?"


"그, 그게.. 제가..아내...으윽..."


말을 하려다 말고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  순간의 기억이 되살아나 힘에 겨운 모습이다.

띄엄띄엄 늘어놓는 그의 증언.

여행을 간 줄로만 알았던 부부 중 한 사람이 도움을 청했다. 아내가 사라졌다고.


자신과 아내는 뒤따라나섰고 창고에 이른 순간 기습을 당했다.


정신을 차리니 자신은 묶인 상태. 도와달라던 그 남자는 온데간데없이 흉측한 괴물이 소중한 반려를 목덜미부터 물어뜨고 있었다.


벌어진 붉은 입술로 침이 흘러내리고. 눈물자국이 선명한 뺨. 크게 확장된 동공. 피투성이로 더럽혀진 외투.

기절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놀랍게도 참상은 사라지고 아내가 멀쩡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꿈이었구나. 가서 안아주려는데 여전히 묶여있었다.

"너는 미끼야."


사냥을 위한 미끼.


다정했어야 할 목소리로 당치도 않을 막말이 나오는 현실에 직감했다. 그녀는 이미 세상에 없다. 저건 그 사람의 탈을 쓴 악마다.

"전 비겁한 놈입니다. 그 사람을 참혹하게 보내버리고 살아있어서... 차라리 그 자리에서 혀깨물고 죽었어야하는데... 아니 죽어서 그 얼굴을  면목도 없네요..이제는..."


허탈하고 허망하며 공허한 웃음. 울다 못해 웃음이 난다. 지금이  그 꼴이었다. 그는 손과 어깨를 떨면서도, 눈물이 나는데도 웃는다.


혈귀술. 그것도 타인의 모습을 흉내내는 종류. 떨어져나간 겉을 보면 혈귀 자신의 피부가 아니다. 희생자의 거죽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것인가. 속은 파먹어버리고.

지면에 흩어져있는 유골들을 쳐다본다.

"사세요."

일어선다.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살아서 마음이 무겁다면, 그 무게만큼 떠난 사람을 생각해주세요. 그분도 당신이 뒤따라오길 바라지는 않겠죠."


남자의 고통에  울음이 울리는 창고를 뒤로 하고 나선다.


아직 날은 어둡다. 스산한 바람이 분다.

까아아아악

"다아음 목적지느은"

어김없이 까마귀가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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