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30편
어둡지만은 않다.
길가에도 일정 거리마다 거리를 비추는 등불이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만큼은 아니지만.
저녁을 준비하는 집 앞을 스쳐갈 때면 음식 내음이 공기와 함께 들어온다.
사람이 사는 주택가를 지나 외곽으로 접어든다. 길의 경사는 급해지고 건물도 드물다.
마지막 등불이 비추는 길. 불빛의 끄트머리 너머에 창고 같은 건물이 둘 보인다. 어스름해 희미한 윤곽만이 드러난다.
집중한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까맣게 가려져 안 보이던 물체의 형상이 눈에 잡힌다.
이상한 부분은 없다. 창고 건물이 상당히 낡아있다. 조용하다.
"도와주세요!"
그래서 더 크게 울리는 소리. 돌아본다.
발소리가 급히 가까워진다. 젊은 여성. 단정하고 깨끗한 옷차림.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급하게 묻느라 살짝 말을 더듬었다.
"제 남편이 안에 있습니다. 저만 도망은 쳤지만 어찌할줄 몰라서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여성은 안정된 호흡으로 차분하게 설명했다. 듣기로는 남편이란 분은 의문의 존재에 당해 남겨졌고, 이 여성, 아내되시는 분은 겁에 질려 발만 동동 구르던 것. 마침 다가온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얘기다.
"따라오세요. 안내하겠습니다."
총총거리며 앞서는 그녀의 뒤를 따른다. 예절이 몸에 밴듯 곧고 흔들림없는 걸음걸이다.
뒤따르며 주위를 둘러본다.
벽면과 천장에 작은 틈과 구멍이 생겨있다. 바닥에는 물이 고여 웅덩이를 이룬 몇 군데. 젖은 채 방치된 밧줄이니 장식품 부류가 너저분하다. 서늘한 공기에 곰팡내가 섞였다.
읍! 음!
메아리치듯 울리는 소리. 거리가 있어 작지만 들린다. 그것도 사람의 소리같은 것이.
찰박
물이 튄다. 웅덩이를 짓밟으며 뛴다. 종종걸음의 여성보다 앞서 달린다.
이미 열린 문.
넓은 공간에 흩어진 잡동사니들. 천장에선 모로 달빛이 새들어온다. 갖은 크기로 고인 물. 사람.
팔다리와 입가를 단단히 묶인 남자 하나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달그락
발에 채인다. 뼈. 거뭇한 얼룩이 남은 뼈들이 굴러다닌다. 옷가지도 없어 누구 것인지 모를 인골. 내동댕이쳐진 칼 한 자루.
여기구나.
결박을 풀어주고자 접근한다.
자박자박
뒤편에서 따라들어온 여성의 걸음에서 물밟는 소리가 튄다.
몇 걸음 전.
"으읍! 읍읍으푸!"
묶인 그 사람의 발버둥이 심해지고 거칠어진다.
접근을 멈추고 앉는다. 한 쪽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의 작은 웅덩이를 응시한다. 희미한 빛에 내 얼굴이 어둡게 비친다. 검지를 가만히 가져다댄다. 잠들어있는 수면 위에. 바람 한 점 없는 공간.
물의 표면이 후방으로 진동한다.
치지직
"크아아악!"
낚아챈 팔을 움켜진 손에 힘을 준다.
타들어가는 소리, 뿌득거리는 파열음. 몸을 뒤트는 상대.
뿌직
거센 절단과 동시에 손을 놓는다.
"어, 어떻게!"
상대는 떨어져나간 팔이 타들어가는 모습과 이쪽을 번갈아보며 당황한 기색이다.
어깻죽지만 남은 왼팔을 부여잡은 그는 바로, 종전의 여성.
"어떻게 알았냔 말이다! 먼저 왔던 귀살의 족속도 알아채지 못했거늘!"
그 목소리가 높고 가늘던 여성에서 낮고 목을 긁는 울음으로 바뀌어간다.
끊어진 신체의 말단부터 타고 올라가며 그 피부가 조각조각 갈라져 떨어진다. 드러나는 본 표피. 시꺼멓고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 고기같은 질감. 정갈하던 여인의 거죽을 탈피한 그것은 혈귀였다.
"알 거 없다."
파문 탐지기.
선대 파문 수련자가 사용했다는 기술. 본래 작은 잔에 담긴 술에 파문을 불어넣는 감각으로 공명시키면 생명체의 위치를 알려준다고 한다.
응용해서 작게 고인 물에 시전했다. 수면에는 전방 남성 쪽의 일정하며 작은 진동, 그리고 후방에서 격렬하게 커지는 진동이 감지된 것.
혈귀의 위장은 통상의 예민한 감각 정도로는 알아채지 못할 교묘한 술법이었다.
지금 체내의 미진한 파문으로도 고도의 탐색을 가능케 하는 기술을 사용해 대응한다. 세밀한 움직임까지 잡아낸 파문 탐지는 유용했다.
타들어가는 부위로 괴로워하는 혈귀. 주입량이 적었는지 느리다. 도주할지도, 재생할 수도 있다.
발은 푹 젖어있다. 지면은 물투성이. 지금 없앤다. 원거리, 돌진하는 파문으로.
"파문의 호흡, 제 2형"
수련 시 손가락에 파문을 집중했던 그 감각. 발에 집중해 힘을 모은다.
"파문질주"
압축한 파문을 지면으로 일거에 터뜨린다.
"청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