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29편 (29/109)



〈 29화 〉29편

평화 그 자체.


동네 첫 인상이다.

귀살대원 한 명이 실종되고 피해자가 연달아 발생했다기에는 평온하다.

대원은 외지인이라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마을 구성원은?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건가?


과거 살았던 곳보다는 꽤 큰, 그러나 대도시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규모의 마을. 곳곳에  깎아 세운 목재 기둥이 서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까만  몇 가닥이 잇는다. 듣자하니 전깃줄이란다. 딸깍 건드리기만 하면 전선을 통해 흘러오는 전기란 놈이 불도 켜준다. 신기한 물건이다.


크고 작은 주택. 깨끗한 길거리.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활기가 넘친다. 그들의 눈빛에 불안함은 없다.

까마귀의 전언만 아니라면 누가 봐도 수상한 구석은 없었다.


'대원이 사라졌다'

이것만은 명백한 사실. 찾아보자.

마주치는 사람을 붙잡고 무작정 물어보기 시작한다.

"여기 사람 하나가 없어졌다던데.."


"금시초문인데요." "그런 일 없습니다." "이상한 사람이네. 저리 가쇼!"

하나같이 모른다. 부정적인 반응도 많다. 괴소문을 퍼뜨리냐며 매몰차게 대하는 이도 있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소득 없음.

체력은 멀쩡한데 정신적으로 지친다.


"에휴..."

서서히 그림자가 길어지고 하늘이 붉게 물들어간다.

옆을 스쳐가는 누군가.

"저기 혹.."

'으엑'


말을 걸려다 훅하고 덮쳐오는 술냄새에 외면한다.

주정뱅이.

"으응..? 나를 불렀나?"

한 박자 느리게 돌아보는 그. 말 붙이기가 싫다.


어릴 적부터 만취한 이들과는 좋은 기억이 없다. 술마시고 난폭해지는 사람도 있지만 얌전하더라도 문제다.

했던 이야기를  한다. 지겹도록 한다. 떠날라치면 울거나 소리지르는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며 붙잡는다. 토하기도 한다. 곤욕스럽다.

"아, 아아.. 저기 실례지만.. 요즘 마을에서 사람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어엉? 없어져어?!"

버럭 소리치며 얼굴을 들이미는 중년의 남성. 한 눈을 치켜뜬 채 노려본다. 볼이 빨갛다. 코끝도 새빨갛다. 벌린 입 안에 누런 치아가 보인다.


"아니 지, 진정하시고요. 제 말씀은.."


"없어..없어져? 그래. 그렇구만. 흠흠!"


급작스럽게 거리를 두더니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남자. 난처하다.

"내가 말야!  마을을 어엄청 사랑한다고. 사람도 좋고, 누구 하나 무슨 일 생기면 도와도 주고, 부부 금슬도 좋고! 인심이 아주 그만이야!"

끊일 줄 모르고 쏟아져나오는 잡담. 이쯤되면 타령이다.


"예의도 아아아주 발라요. 요 앞전에 젊은 아낙 하나도 부부가 여행을 간다고 인사를 하지 뭐야? 오래 다녀온다나? 그러고보니 요새 여행간다는 부부가 많긴 하네..."


여행을 간다. 집을 비웠다. 사라졌다?


"여기 사는 분들은 여행을 자주 다니시는 편인가요?"

"아아니? 아니, 아니지. 드문 일이야. 드물지 그럼. 모두가 마을을 사랑한다니까? 나처럼!"

마을을 떠날 일이 적은 곳에서 여행자가 갑자기 늘었다. 평범하지 않다.


"그 여행가셨다는 분들의 댁을 알고 계시나요?"

"고럼 고럼. 저어기 저 편. 사토 네. 저기 엔도 씨 집. 저기 뒤로 돌아서 카미야 씨네도"


줄줄이 나온다.


"동네도 구경할 겸 어르신이 안내 좀 해주시죠!"


"에헤이 기분이다! 나만 따라와! 흐흐흐흐."


"산책 좋죠! 하하하하하하!"

출처 미상의 곡조를 흥얼거리며 팔자걸음으로 앞서가는 주정뱅이 아저씨.


억지로 비위를 맞춰준다. 곡소리난다.

느릿느릿한 아저씨의 뒤를 한발짝 뒤에서 따라 걷는다.


어느새 시간은 저녁. 해가 넘어가고 짙은 쪽빛이 하늘을 물들일 무렵에 접어든다.

집집마다 불이 하나둘 켜지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간.


"우선  집인데"


비틀대며 그가 지목한 가택. 연기가 나지 않는다.


주의깊게 담장을 따라 둘러보고 문에 대고 바짝 귀기울여도 본다. 밖에서 안이 비치는 창이 있어 내부도 관찰한다.

깔끔하다.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다. 금방이라도 사람이 돌아올 것처럼, 잠시 외출했다해도 누구 하나 의심할 구석이 없다. 다만 청소의 손길이 닿을 만한 자리마다 쌓인 먼지만이 시간의 흐름을 말해줬다.

"엔도네 집이야. 친절한 사람이지. 부부 모두."


마찬가지.


"카미야 씨 댁. 당최 무슨 생각인지 속을 모를 사람들이라니까."

또다.


셋 다 위치, 주택의 외관, 떠난 시점, 아저씨의 평가는 달라도 공통점이 있었다.


젊은 부부.
장기간 출타.


"어이 친구.  둘러볼 텐가?"


"죄송하지만 말씀 하나만 더 여쭐게요. 혹시나 저같은 복장의 사람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만취 아저씨는 흐음 하더니 손으로 턱을 쓸기도, 팔짱을 끼다가, 바닥에 쭈그려앉기도 하며 한참 고민했다.

"아, 아아아! 아 맞다!"


떠올랐다는 듯 무릎을 탁 치는 아저씨.


"저어기 보이나? 저기."

언덕에 맞닿아 지면이 가팔라지기 시작하는 지점. 빼곡하던 집이 듬성하고 창고같은 건물이  있다.

"보입니다만... 그게 왜..."


"얼마 전인가. 스즈키란 친구놈이 봤다는구만. 아래위로 시꺼먼 옷을 둘러쓴 수상한 놈이 저쪽 어디로 가는 걸 봤다고. 근디 그 뒤로 못 봤다네? 허허."

얼굴 빨간  분에게 감사를 표하고 좋게 헤어진다. 가능한 예의바르게 대한 태도가 맘에 들었는지, 내 등짝을 팡팡 때리며 호탕한 웃음을 토하며 주정꾼은 떠나갔다.



어둠이 내리는 저 너머에서 대원은 실종됐다. 그런 추측을 해본다.


긴장감. 서늘함.

심호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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