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8편
다행히 근처에 있었다.
근처에 물흐르는 곳도 없고, 아직 급여를 받지 못해 돈을 내고 씻을 수도 없다.
그럴 때 찾는 이곳.
등꽃 문양을 내건 집.
등꽃 문양의 의미는 귀살대와의 연. 허름한 단칸방 집도, 저택이라 칭할 만한 부유층도 있어 생활 수준은 다양하다. 단 하나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한 번은 귀살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귀살대 소속원이면 도와준다. 무상으로.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정성을 다해 대해주니 미안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거북해서 없는 푼돈 털어서 사비로 처리하거나 대충 떼우거나 넘어갔다. 돈이 바닥나고부터는 마음대로 안 된다. 양심의 가책이 들어도 신세를 지게 되고 만다. 그만큼 지극정성이었다.
물론 빛에 그림자가 따라붙듯, 여기도 명암이 존재했다.
악용.
오남용이 정확한 표현인가? 대부분 귀살대원은 도덕적인 선을 지키며 필요사항만 충족하면 떠났다. 그러나 일부 대원은 도를 넘었다.
일종의 보상심리라고 해야하나. 사선을 넘나드며 최종 선발을 통과. 그 후에도 목숨을 건 사투의 나날이 이어진다. 그 와중 단비같은 등꽃 문양 집의 대접을 받으니.. 취한다.
원래라면 가지 않을 일인데 간다. 생채기일 뿐인데 며칠 요양하고 간다. 무리한 요구는 덤이다. 그걸 또 선한 등꽃 가문의 가솔들은 군말없이 받아준다.
들은 사람이 더 분통터질 일이다.
때문에 필사적으로 절제한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았으면 눕고 싶어한다. 편함을 추구하는 본능의 발로다. 일단 맛을 들이면 자꾸 찾는다.
파렴치한이 되기는 싫기에, 고민 끝에 한 차례 신세지기로 한다. 오늘은 돈이 한 푼도 없을 뿐더러 대체수단조차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딱 필요한 부분만 해소하고 갈 길 간다.
결심하고 문을 똑똑 두드린다.
"뉘신지... 어이쿠!"
집주인이 문을 연다. 제복을 보자 깜짝 놀라는 사람. 아까와 다르게 부리나케 움직이며 들어오길 권한다.
"실례지만 잠시 씻고만 가겠습니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일가족들. 곧 준비가 끝나고, 씻는다. 쌓인 먼지를 깔끔하게 털어낸다.
식사대접을 정중히 거절하고 문을 나선다. 그들의 존경심 가득한 눈망울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선의를 이용해먹는 기분이 든다.
다른 대원들은 어떤 기분일까? 물어볼 기회가 없다.
배당 사건이 많기도 하지만 몇 안되는 타 인원을 만났을 때도 다들 자신의 임무에만 매달렸다. 까마귀가 전달하는 행동의 범위가 있다면 그 안에 갇혀있다고 할까. 자신만의 세계에 매몰된 듯한 느낌이다.
꺽쇠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전 임무 하나는 마쳤다. 지금은 자유시간이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착석한다. 사람도 없고 볕은 잘들며 바람도 산뜻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한다.
기술의 체화.
복잡한 시전 과정을 무수히 반복해 기술명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상황의 유불리를 막론하고 펼쳐내는 각인.
현재 제 1형은 거의 완성 단계다. 파문의 양 문제만 있을 뿐, 파문의 흐름을 감지하고 일점집중해 터뜨리는 전 구간은 의식하지 않아도 실행한다.
다른 기술이 문제다.
어렴풋이 형상은 떠올려봤지만 구체화하고 체득까지가 지지부진하다.
머리 속에 남아있는 이론상의 파문 기술들. 실체가 손에 잡힐듯 말듯 하다.
이미 이국인으로부터 전수받은 대목도 이런데, 전혀 알려진 바 없는 괴현상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인지의 둔화.
아주 가끔 의지와는 관계없이 불쑥 나타나는 그 현상. 혹여 신체 이상이 아닌가 걱정했지만 몸은 너무나 건강하다. 아무 이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경험해보지도 못했다. 언젠가 풀리길 바라며 의문으로 남겨둔다.
까아악
머리 위 허공을 뱅글뱅글 도는 까마귀. 왔다.
"다음 행선지느은! 동쪽으로 가거라아아! 대원 한 명 실조옹!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다아아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