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27편
"안 돼."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불허의 답변.
조직에 들어온 초기, 신규 대원을 데리고 알려주는 절차. 귀살대 안의 시설이나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던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부분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며 귀살대 상위 계급 대원이 말을 했다. 그래서 꺼냈다.
최종 선별 시험에서의 참사. 일반 수험자로서는 당해내기 불가능에 가까운 혈귀가 있다. 조치가 필요하다.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
그의 충고.
그토록 문제가 될 만한 일이 생겼다면, 귀살대에서 이미 대응을 했을 것이다. 애당초 선별 시험은 사망자가 수두룩하게 나오는 과정 아니냐. 이어 네 일에나 충실하라며 핀잔까지 들었다.
뭐라 한 마디 하려다 그만뒀다. 말이 안 통하는 벽과 이야기하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곧 반쯤은 그의 말을 체감하게 됐다. 정말로 본인 일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바빴다.
귀살대원이 혈귀 하나를 처리하면 새로 셋 넷이 솟아나는 형국이다. 다른 대원들과 만날 일은 좀처럼 없었다.
까아아악
"다음 목적지느은"
저 울부짖는 까마귀가 이끄는대로 달려가는 게 일이다. 까마귀에도 계급이 박혀있지 않나 착각까지 든다.
혼자 다니는 이득도 있다.
서로에게 간섭할 여유가 없다는 건 반대로 간섭받지 않는다는 것. 자유다.
혈귀의 출몰 지점으로 이동하며 수련을 한다. 걷고 달리며 호흡법 유지. 잠시 서서는 다른 훈련이다. 이를테면 이런,
"읏차"
나무를 타고 오른다.
밑둥부터 두 손, 두 발로 타는 통상의 방법과 다르다. 거칠고 단단한 표피에 손가락만을 눌러 박아넣는다. 박힌 쪽 손가락으로 몸을 끌어올려 다른 손을 좀 더 위에 꽂는다.
손가락 끝에 파문을 집중해야 가능한 훈련이다. 그렇다고 손끝만 신경써서도 안 된다. 전신의 체중을 감안하면 손가락에서 손 전체, 손목에서 어깨까지, 연결하는 전 구간을 강화해야한다. 어디 하나 힘의 배분을 소홀히 하면 바로 부상이다.
그래도 득이 있으니 한다. 힘의 집중과 분포의 순간적인 균형, 그 세밀함을 높이는 과정이다.
오가며 길고 곧게 뻗은 나무가 눈에 띄면 좋은 대상이 되었다.
달리기를 비롯해 기초적인 체력단련도 빼먹지 않는다.
최종 선별에서의 일전 후 탈진한 경험을 돌이켜본다. 감상에 빠져 방심했던 탓도 있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짧은 수련 기간으로 파문의 총량, 힘의 양이 부족했던 거다.
해결책은 꾸준한 호흡.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지는 모르니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퍽
노력이 헛되지 않음은 금방 체감했다.
갓 조우한 혈귀를 파문의 호흡 첫 형태로 쓰러뜨리고도 무사히 서있다. 발전했다.
이능은 없는 잡졸급의 혈귀. 그나마 일찍 파견되어 피해자는 두어명 수준이다. 방금도 한 사람의 시신을 물어뜯던 그 놈과 싸웠다. 집착이 심한지 아가리에 가득 문 채 난리치는 혈귀를 잡느라 온통 피가 튀었다.
혈귀는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데 피 흘린 희생자는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찢겨있다.
본능적으로 역한 심정을 눌러참고 고이 모아 수습한다. 그리고 묵념한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다.
퍼어엉
커다란 폭음. 하늘 언저리를 수놓는 불꽃.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폭죽들.
야트막한 이 산 아래 보이는 저 번잡한 도시에서 축제라도 열리나보다.
앉아본다.
뺨을 간질이는 감촉에 손등으로 훔쳐낸다. 거무스름한 혈액이 묻어난다. 사망자의 것인가. 근방에서 씻을 곳을 찾아야 하나.
슈우웅
피리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폭죽. 터지며 한 송이 꽃 같은 무늬를 수놓는다.
그 날.
그 아이와 나는 마을 축제에 가기로 약속했었다.
분명 화려했겠지. 군것질도 하고 못보던 구경도 하고. 옆에서 같이.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파묻는다.
그녀와 같이 보고 싶었다. 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