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26편
하염없이 바라본다.
힘들지만 정든 장소. 반 년을 신세지며 훈련을 하고 잠들었던 그곳.
멍하게 앉아 한없이 본다.
며칠간은 뒷수습하는 인력들이 오가며 동태를 살펴주었다. 걱정되는지 간혹 먹을 것을 갖다주기도 했다.
그들마저 본대 일로 떠난 뒤엔 챙기는둥 마는둥.
뱃가죽이 등짝에 붙을 지경이 되었을 때나 끼니 간단하게 처리해버리고는 다시 앉는다.
황폐해진 집. 저 안에 시신은 없다. 귀살대에서 그 분을 모셔갔다.
집 앞에는 한 자루 칼을 꽂아놓았다. 선별 시험에서 몸을 지켜준 고마운 물건. 살아있던 스승과의 마지막 연결고리. 망가진 검을 표식삼아 놔두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너무나 쓸쓸하고 적막했다.
몇 시간째였을까. 오래도록 앉아만 있었다. 자리에서 몸을 떼고 집 가까이 간다.
무심히 내부를 둘러본다. 멀쩡한 구석이 없다. 격한 사투의 흔적. 늘 화롯불이 지펴져있던 자리에는 잿가루만 남았다. 냄비며 도구는 간데없다.
무수한 자취 중에서도 눈에 띄는 곳. 크게 움푹 파인 자국. 충격이 가해진 중심으로부터 거미줄처럼 빼곡하게 균열이 퍼져나간다. 터져나가듯 대량의 피가 뿌려진 흔적도 거뭇하게 변색된 채 남았다.
시신이 발견된 자리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약간 옆의 목재 바닥 표면에는 글씨가 한 자 쓰여있었다.
拳
선명하게 핏물로 쓰인 글자. 스승님이 마지막으로 전하려던 의미는 뭐였을까.
주먹을 가리키는 문자. 제자였던 내가 검을 잘 쓰지 않는 부분은 익히 알고 계셨던 분이다.
길게도, 짧게도 느껴졌던 그 훈련 기간. 스승님이 보인 모습은 기묘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야말로 기행의 연속. 수련으로 신체능력이 꾸준히 상승했음에도, 부상을 안고 있던 스승은 언제나 앞서있었다.
강했다.
직접 과거의 활약이나 최근 전투를 본 적은 없어도 알만했다. 누구에게도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상대가 강했던 것이다. 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로.
내가 그 분의 배려를 끝까지 거절해 검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스승이 검을 들고 대적했다면 상황이 낫지 않았을까? 조금이라도 더 버텨서 어떻게든 좋은 흐름으로...
물끄러미 뒤편에 꽂힌 칼자루를 본다. 그 칼 덕분에 괴물같던 혈귀의 기습에서 목숨을 건졌다. 그러고도 지나치게 많은 걸 바란다. 욕심이다. 불가능하다.
대체 죽어가며 전하시려던 것은 뭘까. 귀살대에, 그리고 내게.
조사하고 돌아가려던 사람은 넌지시 귀띔했다. 혈귀의 소행이 거의 확실시된다고.
흉수에 대한 암시. 혹은 그 정보.
가만히 고민 중이던 그 때, 인기척이 난다.
집 너머 저만치서 사람이 걸어온다.
전통복장을 갖춰입고는 한 보따리 짐을 동여맨 사람. 입이 한 쪽으로 비뚜름한 가면을 덮어쓴 그는 이내 다가왔다.
"혹시 무라타 님이신지?"
"맞긴 한데 무슨.."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그는 굉장히 빠르게 짐을 풀고는 한 자루의 도신을 꺼내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보여주고 싶어 안달난 듯한 속도의 동작이었다.
"자, 자. 어서 잡아보시죠."
떠맡겨지듯 건네받은 칼. 매끄럽고 단단한 검집에 싸인 그 칼. 보채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칼자루를 잡는다.
"아, 잠깐. 설명을 먼저."
일륜도. 귀살대의 검사들에게 빠짐없이 지급하는 칼. 요코 산 위에서 햇볕을 받아 그 기운을 머금은 특수 철광석으로 제련해 만들어진다는데, 혈귀는 이 칼을 써야 베어죽일 수 있다고 한다.
새삼 파문이 새롭게 와닿는다.
그 귀한 재료로, 열닷새 가까운 시간을, 눈 앞의 이 자가 직접 두드려 만들었다. 설명을 마친 그는 상당한 자부심에 젖어있다.
"이제 뽑아보시죠. 참고로 일륜도의 날은 소유자의 호흡에 따라 날의 색이 달라진다는군요. 불꽃이면 붉게, 물의 호흡은 푸르게 바뀐다고들."
검집 위 코등이. 그로부터 쭉 뻗은 칼자루. 손잡이를 처음은 조심스레, 곧 꾹 쥐어잡고 힘주어 뽑아낸다.
스릉
맑은 울림의 그 도신은 깨끗하게 딸려왔다.
수직으로 세워잡은 채 깊게 심호흡한다. 파문의 흐름을 감지한다.
"오..오오오!"
감탄사를 터뜨리는 사내.
도의 날 부위가 하단부터 서서히 빛깔을 바꿔간다. 도신을 타고 오르는 변화는 끝나고 그 모습이 드러났다.
금. 노란 빛을 띄지만 잘 연마된 귀금속같은 색은 분명 황금. 찬연하게 광택이 감도는 황금색이다.
"처음..이네요. 이런, 이런 빛이라니. 기대는 어긋났지만 좋은 징조겠죠."
갈 길이 바쁜지 신속하게 여장을 꾸려 떠나간다. 정말로 행동을 서두르는 인물이었다.
여전히 검집에 넣지 않았다. 일륜도를 주시한다. 찬란한 황금의 빛깔.
한때는 빛나던 시기가 있었다. 일상 속에서 작은 기쁨을 소중히 했던 그런 시절. 이제는 모두 핏빛으로 물들어버린 추억이다.
좋아, 하자.
혈귀를 잡자.
칼을 검집에 밀어넣으며 조용히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