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25편 (25/109)



〈 25화 〉25편

시험이 끝났다.

응당 후련할 법도 하건만 속내는 달랐다. 다행스러움도 잠시, 착잡한 심정이다.

후회가 깊다.

조금만 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다른 결말이 있었을까.

상념에 휩싸인 여로.

며칠이 지났다.


익숙한 풍경. 돌아왔다. 한데 낯선 이들이 보인다. 부산스럽게 오가는 사람들.

불안하다.


원체 사람 코빼기도 보기 어려운 오지에 사람이 북적이는 상황도 그렇거니와, 그들이 귀살대의 제복을 입은 대원들이어서 더욱.


걸음이 빨라진다.


망가진 문짝, 부서진 벽.


"죄송하지만 여기는 들어오시면.."


막아서려는 복면 사내. 지급받은 대원복과 심어진 계급을 보이고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이곳 육성자의 제자이며 지금 막 돌아왔다고. 그의 표정이 무겁다.

"일단 따라오시고.. 놀라시면 안 됩니다."


낮은 목소리. 자못 심각한 분위기에 이미 결말은 손에 잡힐듯하다. 애써 뿌리치며 한 걸음, 두 걸음 뗀다.

낡았어도 정갈하기 그지없던 거처. 무언의 대화 속에 따뜻함이 가득했던 장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가운데 하얀 천이 불룩하게 솟아있다. 무언가를 덮어놓은 것처럼. 더없이 새하얀 바탕에 불긋한 꽃이 피었다. 어딘가는 갈빛으로 변색되기도.


손끝부터 떨려온다. 조심스럽게 천자락의 끄트머리를 잡고 걷어내린다. 천천히. 시간이 멈춘 것보다도 느리게.


하얀 머리카락. 가려진 얼굴. 지그시 어루만지던 스승의 수염에는 검붉은 피딱지들이 흩뿌려져있다.


숨결이 거칠어진다. 억지로 눌러참으며 아래를 들춘다.

숨이 턱 막힌다.

작은 체구의 그 가슴팍에 구멍이 뚫려있다. 주저앉았다. 얼떨결에 전부를 걷어버리고 말았다.

존재하지 않았다.

그 분의 성치 않았던 하반신마저도 지금은 없다.

작았던 사람이 너무나도 작고 차갑게 누워있다.




"아"

내려친다.


"으아"


주먹으로 바닥을 친다.


"으아아아아!!!!!"

두 주먹으로 피가 나도록, 찢어지게 소리지르며 내리찍는다.


엎어지다시피해서는 계속, 계속 두들긴다. 머리를 쥐어뜯고 팔이 끊어지라고 때린다.

머리가 아프다. 세상이 뿌옇게 비친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이빨이 부서지리만치 악문다.


마루가 비맞은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들 때까지도 세상모르게 그러고만 있었다.



모처에 위치한 저택.

정원, 저택, 방 사이의 대청마루.

달빛만 환하게 내리비치는 밤, 기품있는 정자세를 취한 단발의 남성은  손으로 서찰 하나를 들고 있다.


 차례 읽어내리는 그 눈빛은 침중하다. 이마  편에 흉터처럼 자리잡은 병증.

귀살대의 수장이자, 가문의 당주인 우부야시키 카가야. 내려놓은 서신의 내용은 사건이었다.

귀살대의 육성자가 살해당했다.




"이 건으로 세 번째."

한없이 다정할 듯한  목소리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키부츠지 무잔. 너는 귀살의 아이들이 자라날 터전까지도 짓밟으려는 것인가."

고양이 눈알처럼 박힌 달빛을 응시하며, 그는 가만히 서간을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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