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24편 (24/109)



〈 24화 〉24편

피가 쏟아진다.


"목이 단단해서 살았네. 키시식."

붉은 혈액과 희멀건 잔해가 묻은 손으로 머리를 잃은 신체를 낙하 전 재빨리 낚아챈 혈귀는 입을  벌렸다.

거대하고 끈적한 그 구멍으로 게걸스럽게 집어삼켜버린다.


방심했던 순간이 원망스럽다. 무기력한 지금이 절망스럽다.

"흐으.. 흐으으.."

회복을 위해 신체가 무의식적으로 자동 호흡에 돌입한 상태.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가로막혀 나오지 않는다. 하릴없이 지켜볼 수밖에.


"아아, 잘 먹었다."


혈흔이 남은 손가락까지 빨아가며 먹어치운 혈귀가 주위를 휘휘 둘러본다.


입가를 쭉 벌린다.

"한 마리 더 있었구나! 히히힉!"

꾸웅 

다가온다.


당장이라도 뱃속에 넣고 싶어 안달난 티를 내면서.

치이이

"으익"

뜻밖에도 뚝 멈춰선 혈귀는 무언가를 가리는 행동을 취한다.


"으으으.. 운도 좋은 녀석."


물러간다.


어두운 숲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모양새가 마치 도망치는 모습같았다.

아.

해가 떠오른다.

비쳐드는 햇빛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흔적들. 어지러이 놓인 크고 작은 발자국. 짓밟힌 풀. 꺾여버린 나무. 흩뿌려진 핏방울.

살아남았다. 혼자서.


최종 선별의 마지막 날.

마비가 풀리길 기다리며, 지난 새벽의 참상을  눈에 오롯이 새기며, 복잡한 감정을 되새기면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터덜터덜 돌아왔을 때, 이미 수험자들이 모였던 장소는 사람이 가득했다.

"어이."

급히 뛰어온 수험자 하나.


거칠고 길게 자란 머리를 뒤에서 한 번 묶은 다소 멍한 인상의 소년.

"혹시 사비토란 친구 못 봤나?"

외관을 설명하는 소년. 붉은 머리, 흉터. 그리고 여우 가면.


토미오카 기유라 자신을 소개한  소년도 여우 가면을 걸치고 있었다. 무늬, 생김새는 다른.


"같은.. 아..."


"알고 있나?"

재차 묻는 그. 대답하기 망설여진다.

"그... 사비토인가. 주, 죽, 죽었어... 구해주고.. 싸우다..그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억지로 끄집어낸다.


토미오카 기유. 그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진다. 주먹을 쥐려다 만 그 손은 떨고 있었다.


"거짓.. 거짓이다... 그 녀석은 강했다고. 나보다 훨씬. 여기서 당할 놈이 아니란 말이다!"


성을 내며 멱살을 잡는 소년. 혼자 살아온 죄책감. 누적된 피로. 그의 거센 흔들기에 힘없이 휘둘리다 바닥에 밀쳐 넘어졌다.

토미오카 기유는 검을 금방이라도 뽑아들 것처럼 서슬이 퍼렇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진정하시고 다음 절차를!"

"놔, 놓으라고! 저 안에 사비토가 있단 말이다!"


복면 귀살대원 둘과 실랑이를 벌이는 그 소년. 숲에 못 들어가도록 막는 그들과의 씨름 끝에 고개를 떨구고 돌아선다.

돌아온 그는 회장에 새로 나타난 인물이 다음 순서를 알릴 때까지도 조용히, 주먹을 움켜쥔 채 서있었다.


짝 짝


"주목해주십시오."

시험 돌입 직전 안내를 맡았던 묘령의 여인이었다.

"무사히 살아남으신 점 축하드립니다. 이제 귀살대의 신규 대원이 되실 여러분들은.."

혈귀를 베는 검의 제작을 위한 쇳덩이, 원석의 선택. 대원복 지급, 계급을 새기는 일. 그리고

까아아악


삼십여 마리에 달하는 까마귀 떼가 사람마다 하나씩 나누어 내려앉는다. 조심스레 내민 팔에 소리내며  마리 자리잡는 까마귀.

"한 마리씩 꺽쇠 까마귀가 따라붙게 됩니다. 귀살대와의 연락의 통로가 될 터이니 당황하지 마시길."

여인의 안내대로 후속 절차가 진행되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주위 시선에 정신차리니  차례였다. 마지막 남은 덩어리, 옥강이란 물체를 집어들고 건네준다. 받아든 사람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다음은 계급을 새겨넣는 순서.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람을 기다린다. 먼저 작업이 끝난 인원이 지나간다.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흔드는 게 아파보인다.


"손 주세요."


의자에 앉아 날카로운 도구를 들고 있는 대원.

"악!"


사정없이 손등을 찔러댄다. 이어 끝에 색깔있는 액체를 묻힌 바늘로 다시 쑤신다. 이루 말로 하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붓기가 빠지면 괜찮을 거예요. '계급을 보여라' 말하면 나타날 테니 참고하시고."

사무적인 말투로 일러주고는 '다음'을 외치며 다시금 작업에 몰두하는 그 사람.


열 개 계급 중 최하인 계癸. 차후 확인해보면 되겠지.




귀살대 대원복 제작을 위한 순서가 뒤를 잇는다.


몸의 치수를 재야한다해서 복장을 둘러본다.

"아, 칼."

잊고 있었다. 등에 메고 있던 검. 풀어본다.


부숴졌다.


검신을 감싼 집은 으스러진 형태로 곳곳이 파손되었다. 겉으로 드러난 내부의 칼날도 균열이 간 상태.


그래서 살았다.

스승님의 도를 두르고 있던 덕분에 마비로 끝났다. 단단해보이는 검집이 손상이 심한 걸 보아,  충격을 직접 당했다면 즉사했을지도 모른다.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옆에 잠시 내려둔다.


오래지 않아 대원복 재단과 지급도 완료됐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장내의 수험자, 신입 귀살대원들은 저마다 여장을 꾸린 뒤 바로 떠났다.


매끈하게 만들어진 대원복, 멸滅자가 박힌 그 제복을 만진다.
결이 튼튼하고 빈틈없다.

검은 열흘에서  닷새가 걸린단다.

모든 짐을 챙겨 귀환 길에 오른다.




최종 선별.

본디 사상자가 수두룩하다던  시험.

단 한 명의 활약으로 남은 모두가 살았으며, 그 한 명만이 돌아오지 못한 시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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