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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23편 (23/109)



〈 23화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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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등이 시큰하다.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혈귀의 시신.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 점점이 박힌 별. 구름 점, 비  방울 없는 맑은 하늘이 일렁인다.

그 아이가 살아서 지금 내 모습을 봤다면. 술취한 사람도 아닌데 눈코가 빨개졌다며 놀려댔겠지.


세차게 풍경이 돈다.

처박힌다.

형편없이 나동그라져 바닥에 뒹군다.

거대한 아픔이 후방에 스치고는 감각이 없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쉭쉭거리며 피비린내 섞인 숨만 열심히 쉰다. 손가락, 발 끝 하나 운신이 불가능하다.

꾸웅

육중하게 울리는 대지. 엎어진 채로 꼼짝없이 지켜본다. 귓전을 때리는 진동. 튀어오르는 흙내음.

혈귀다.

통상의 혈귀와 생김새도 크기도 다르지만 맞다. 덩치가 어지간히 자란 나무도 우스워보일 정도로 크다. 다리가 넷, 팔도 여러 개. 거대하게 부푼 배 위에 얹어진 솥뚜껑같은 대갈통을 기형의 손이 감싸쥔 모습. 새어나오는 웃음소리.

"키히히힉. 좋아, 좋아."

다발로자라난 흉측  자체의 팔. 개중 하나가 불뚝 솟더니 쑤욱하고 길어진다. 두터운 손아귀를 쫙 펼쳐 쥐려는 시늉을 하며.

사냥이다. 저 놈은 지금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잠시,아주 잠깐 긴장의 끈을 놓았다. 가슴에 날붙이를 품고 혈귀에 대적하려 노력한 시간. 겨우 한 마리를 마침내 잡아낸 그 순간. 감상에 젖은 그 시각.

이미 노려지고 있었다. 방심했다. 그뿐이다.

아주 작은 빈틈. 틀어막지 못한 그 틈새 탓에 죽는다.

손에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대형 혈귀의손바닥이 보인다..

물의 호흡,제 2형
물방아

피를 뿜으며 잘리는 혈귀의 팔뚝. 시야 밖에서 난입한 인영. 그는 물레방아를 감고 흐르는 물의 궤적처럼, 공중 회전으로 원을 그으며 혈귀의 공격을 차단했다.

"크아악!"

혈귀가 고통과 분통에 몸부림치는 사이 검사는 부드럽게 이쪽을 짊어진다.

 호흡도 전에 난동피우는 혈귀와 상당히 거리가 벌어진다.

"여기서 쉬고 있도록 해라."

주홍에 가까운 적색의 거친 머리, 입가에 쭉 그어진 한 줄의 흉터. 잘 조각한 백색의 여우 가면을 비껴쓴 소년 검객.

그는 친절하게도 편히 쉴 수 있게 자세를 잡아주고는 칼을 고쳐들었다.

숨을 쉬는 일 말고는 어떤 것도  수 없는 마비 상태.그에게는 그저 눈의 깜박임 외에는 전할 방법이 없다.

축 늘어진몸을 바위에 의지한  깊이 숨을 쉰다.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호흡.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최대한 집중해 몸을 움직여야한다.

회복에 몰입하려 파문의 호흡을 시전한다. 모든 활동이 제약당한 입장에서 호흡을 하자 시각, 청각과 같은 감각만이 확장한다.

가볍고 부드럽게, 그럼에도 날카로운 소년의 움직임이 보인다. 대형 혈귀가 팔의 단면을 재생해 새로이 뽑아내는 모습도.

혈귀는 식인해 힘을 키운다. 저 놈은 대체얼마를 먹어치운 건가.

"감히 이 몸의 식사를 방해하다니!"

윽박지르며 상체에 돋아난 팔들을 길게 쏘아내 채찍처럼 내려친다.

 쾅 쾅

제 3형, 굽이춤

소년은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을 보였다.

굽이치는 물살이 바위, 큰 돌을 빙돌아 회피하듯 내리찍는 팔을 피해낸다. 동시에 스쳐가며 마주치는 팔뚝을 썰어버린다.

혈귀가 일부러 그의 위치만 교묘하게 빗나가도록 조절하는 착각이 드는 고속 이동.

별안간 소년이 공중으로 솟구친다. 종이  장 차, 대지를 뚫고 수직으로 솟는 혈귀의 다발 공격.

제8형, 용소

삽시간에 수차례 내리치는 검격.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와 같은 기세. 다연발의 물줄기가 혈귀의 공격을 분쇄한다.

일대는 쑥대밭이 되어갔다. 사정없는 혈귀의 강타로 멀쩡하던 나무도 넘어가버린다.

"이놈이이이!!"

분노한 혈귀가 바늘이 잔뜩 박힌 공처럼 위협적인 팔 줄기들을 쏘아내 공간을 장악하려했다.

제 9형 수류 물보라 란

최소한의 착지 면적, 불필요한 동작을 걷어낸 움직임. 좁은  안에서 거세게 던져넣은 공이 사방팔방 정신없이 튀듯, 나무에서 다른 나무 기둥으로, 때론 혈귀가 쏘아낸 팔뚝을 받침대삼아 뛰어오르며, 전광석화처럼 거슬러 올라간다.

제 7형, 물방울 파문 찌르기 

찰나에 혈귀의 안전에 도달, 그의 검이 송곳이 되어 괴물의 안구에 쑤셔박힌다.

혈귀는 움찔하며 만들어낸 살덩이로 눈 앞을 보호하며 후방에서 재생성한 팔들로 쏟아지는 공격을 시도하고

제 4형, 들이친 파도

기척을 감지한듯 달려들었던 기세를 역이용, 혈귀의 상반신을짓밟고 튀어올라 멀어지며, 허공에 유려한검의 잔상을 수놓는다.

투두둑

갈려나간 혈귀의 살점이 바닥에 흩어져내리고, 소년과 괴물은대치한다.

"아아, 아. 역시 네 녀석도 그 가증스런 우로코다키의 제자구나."

나긋하면서도 비꼬는 어조로 입을 여는 혈귀.

"우로코다키? 그분의 성함을 네놈이 어떻게!"

"암, 알다마다.  몸을산골짝에 처박은 게 그놈이니깐 말이지. 아주 오래 전 우로코다키가 혈귀 사냥꾼 노릇 해먹고 살던 시절."

혈귀는 눈알을 빙글빙글 돌려가며말했다.

"사람 몇 잡아먹었다고 여기다 갖다놨단 말이지. 해마다 검사 나부랭이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놈들 천지라 더 고달팠다 이 말이야. 난 잘못이 없는데 고통을 받으라니."

눈가를 세로로 쭉 찢는 혈귀 .

"우로코다키의 제자들을 잡아먹어서 분풀이하기로 결심했어! 그놈이 쓴 텐구 가면.. 같은 나뭇결의 여우 가면은 뭐, 제자라고 도장찍어준 증표랄까. 지금까지 한..."

손 두 개를 모아 꼽아가며 수를 세는 그 놈.

"열이  넘었나. 특히나 재빨랐던 꽃무늬 기모노의 암컷 꼬맹이. 먼저 온 제자들은 내 배 속에 있다고 알려주니 길길이 날뛰더라니깐. 움직임이 덜덜 떨리게 되어선 둔해진  이렇게  붙잡아서!"

여러 개의 팔로 무언가허공을 쥐어뜯는 시늉을 하는 대형 혈귀.

"팔다리를 하나씩 뜯어내고 입에 넣어서는.. 으히히히히힉!!"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소름이 끼친다.

"..마코모. 마코모를 너 따위가아!!!"

지면에 발을 탕 구른 소년은 박차고 나간 반동으로 일순에 혈귀의 목덜미로 근접한다.

제 1형, 수면 베기

혈귀가 반응조차 힘든 잠깐, 정확히 약점을 노린다. 푸른 검날이 횡으로 휘둘러지며 혈귀의 목에 닿아

챙강

 동강이 난다.

안 돼. 제발.

아직도 움직이지 못해 호흡만 간신히 유지 중이라 더 미칠 지경이었다.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선의에서 다가온 사람들이 당하는 장면은.

체공 중이던 소년의 표정이 허탈하다.

 얼굴을 혈귀의 투박한 손이 움켜쥐고

퍼걱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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