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22편 (22/109)



〈 22화 〉22편

새긴다.



쥐떼를 수족처럼 부리는 특이한 혈귀를 대면하고 가지 의문을 품어왔다.

렌고쿠 쿄쥬로.

그는 왜 검을 휘두르며 말을 한 것일까.

불꽃의 호흡, 제 4형, 성염의 물결

불꽃은 그가 사용하는 호흡의 종류일 것이다. 네번째 형이라니 아마도 여러 형태의 기술이 있을 테고. 성염의 물결이 바로 그중 하나.

왜 굳이. 그는 전투 중에기술명을언급하며 싸웠을까?

그의 몸놀림이나 숙련도를 봐서는 대단히 많은 훈련을 해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부분에도 이유가 있겠지.

쓸데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한 번 자리잡은의문은 쉽사리 떠나가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 때도, 식사를  때도, 산중을 뛰어다니면서도. 머리는 바삐 돌아간다.

"아"

문득 깨달았다.

숟가락의 줄기를 손가락으로 적당히 쥔다. 들어올려 먹고자하는 음식물에 밀어넣는다. 숟가락 앞부분에 힘을 주어 든다. 퍼올린 음식물을 쏟아지지 않게 평형을 유지하며 입으로 가져간 숟가락. 벌리고 털어넣는다.

숟가락으로 밥먹는 순서를 그려보면 대충 이렇게 되겠지.

나는 이러한 과정을 의식하고 있었나?

기억도  나지 않을 과거 유년기에 처음 익힐 때야 누군가 가르쳐줬거나,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웠을 거다. 그러나 뒤에는? 숨쉬듯 자연스럽게,당연히 그리 하는 것처럼 몸에 배어있다.

처음에는 세세한 과정, 그것을 쪼갠 조각 하나하나에 공을 들여가며 습득하고 반복한다.

무수히 되풀이하면 쌓인 행동은 어느새 무의식 안에 꼬리표를 하나씩 달고 보관되는 거다.

단지 특정 움직임을 하고 싶다고 떠올리기만 해도 움직이도록.

검술같은 복잡한 움직임은 일상생활 중에는 쓸 일 자체가 없다. 숟가락 들기따위보다 당연하게도 익히기 어려우며 오랜 시간을 들여야한다.

그것을 끊임없이,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반복, 반복해 몸에 새겨넣는다. 일련의 움직임. 따라붙은 기술명은 해당 기술을 떠올려 시전하기 위한 열쇠의 역할이다.

실전에서 정교한 움직임을 선보이려면 분명 문턱이 있다. 연습 당시의 환경과 다르고, 흥분하거나 겁을 먹었거나 심리 상태도 영향을 주겠지. 모든 난관을 뛰어넘어 물흐르듯 자연스레 펼쳐보이는 방법.

각인.

머리를 매만져주었던 그 아이를
잃었을 때. 두려움에 떨기만 했다.

복수심에 무모하게 혈귀를 찾아나서고 맞닥뜨렸을 때. 두려움은 잊고 날뛰기만 하다 죽을 뻔했다.

두려움을 잊지 않는다.동시에 겁에 집어삼켜지지 않는다. 견실하게 쌓아올린 연습량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움직인다.


지금 나는 최종 선별 막바지, 숲 속에 서있다.


거리를 두고 혈귀와 대치 중. 기온은 낮고 몸은 떨린다.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응하자.

혈귀의 몸은 단단하다. 인간의 거죽따윈 손쉽게 뜯어낼 힘도 있다.

귀살의 검사들은 잘 벼려진 검으로 혈귀의공격을 받아내고 숨통을 끊는다.

나는?

검은  무기가 아니다. 많은 훈련을 했으나 냉정하게 반 년의 단기간 단련일 뿐이다.

파문의 양은 충분한가? 고작 주먹 하나에 짧은 수련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검기를 갈고 닦은 자들의 귀살을 따라잡을 수 있나?

부정적이다.

다만 확실한 건,  앞의  놈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것.

 일을 한다.

숨을 쉰다.

폐 깊숙이 한껏 공기를 밀어넣는다. 온 몸에 퍼진다.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고 점점 전신이 달아오른다.

"파문의 호흡"

활성화한 신체. 깃든 힘.

"제 1형"


미약한 파문을 그러모아 한 점에 집중. 단 한 방, 최대한의 파괴력을 위한 기술.

다리는 응축. 손은 뒤로.

"파문질주"

세차게 떨리는 심장. 끓어오르는 핏줄. 불타오르듯 뜨겁게 달궈진 주먹. 기술 하나에 모든 집중력, 들여온 시간, 두려움을 뛰어넘는 정신력, 전부를 새겨넣는다.

한껏 웅크린 직후, 지면을 박차고 몸을 튕긴다.

급속도로 가까워오는 혈귀. 조준을 제대로. 접촉.

"황매화"

가속한 신체의 타격, 실린 파문. 박아넣는다.

혈귀에 닿은 접촉면으로 쭉하고 대번에 빠져나가는 기분. 강타로 일그러지는 그놈의 얼굴. 시야가 노란 빛으로 물든  같아 보였다.

콰앙

얻어맞고 날려진 혈귀는 나무 줄기에 거세게 틀어박히곤 바닥에 추락했다.

날아든 가속을 못 이겨 바닥에 구른다. 일시적인 탈진 상태다.

비틀대며 일어선다. 경련이 이는 팔을 부여잡고 혈귀가 쓰러진 곳으로 옮긴다.

가격당한 안면이 타들어간다. 혈귀는 사람의 신체능력을 월등하게 뛰어넘으며 심지어 재생까지 한다 들었다. 불타오른 부위가 번져가며 순차적으로 잿가루가 되는 걸 보니 다행히 먹혔다.

"누구.."

허물어져가는 형상으로부터 들려온다. 짓눌린 틈을 비집고 억지로 쥐어짜낸 그런 혈귀의 소리.

잃고 당하고 세번째.

이 손으로 널 쓰러뜨리고 살아남아 서있는 내 이름.


"..무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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