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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21편 (21/109)



〈 21화 〉21편

도착했다.


최종 선별 시험이 치러지는 산. 초입부터 묘한 향이 코끝을 스치는 그곳은 꽃으로 가득했다.

"와"

절로 탄성이 나올 만큼 가득한 보랏빛 등나무꽃. 계단을 오르며 살짝 건드려본다. 상쾌한 향기가 물씬 난다.

출입구 격인  개의 붉은 빛 기둥 앞에 사람들이뿔뿔이 흩어져있다. 다양한 차림새. 머리가 길기도 짧기도 하다. 흉터가 있는 인원도 있다. 여러 지역에서 모였구나 짐작되나 공통점은 있었다.

검.

옆구리 허리 부근에 차고 있는 칼자루.

"아, 맞다."

서둘러 검집을 고쳐맨다. 옆에서  뒤로. 단단하게 둘러 매듭도 확실하게.

비상시에 대비해 갖고는 있다지만, 사용할 일은 적어보인다. 그렇다고 어디 둘 만한 곳도 따로 없거니와 그러기도 싫었다. 움직임을 제약하지 않는 선에서 소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모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긋한 여성의 음성. 군중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하얀 머리카락을 곱게 묶고 선 그녀.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람이다.

"귀살대의 최종 선별 시험은 이레동안 실시되며..."

지나오며 봐왔던 보라색 등나무꽃. 그 꽃무리는 이 산에 일년 내내 피어있다.

혈귀는 등나무꽃을 특히나 싫어한다. 산의 기슭부터 중턱까지 자라난 꽃이 담장 역할을 해 귀살 검사들이 잡아온 혈귀를 가둬놓는다.

언급한 이레, 일곱  해가 지고 뜨는 그 시간. 버티라는 것이다. 혈귀와 싸우며 살아남아서.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살아남아라. 반대로 죽을 수도 있다. 수행이 미진하다면 실전에서 혈귀와 마주치자마자 사망할 가능성도 있다.

잔혹한 시험이다. 몰아넣고 남은 실력자만 골라 쓰겠다는 것 아닌가?

이해는 간다. 혈귀란 존재부터가 상식을 넘어선 괴물들이니 만들어진 시험에서조차 생존을 장담하지 못하면, 그 후는 고려할 가치마저 없단 얘기겠지.

하나 둘 안전지대를 넘어 사라지는 수험자들의 뒤를 밟아 위험지역의 선을 넘는다.


정말 등나무꽃은 단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다.

산 중턱까지 흐드러지게피어있던 그 광경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같은 산, 동일한 지역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음습하고도 어둑한 숲. 당장이라도 뭔가 튀어나올 기세다.

공기가 팽팽하다. 침을 삼킨다.

혈귀는 밤에 활동한다. 낮에는 태양이 내뿜는 빛에 죽어 없어진다.

엉뚱한 얘기지만 이곳도 해가 뜨고 졌다. 너무나 긴장한 탓에 혹시 여긴 계속 밤이라 혈귀와 끝없이 싸워야하는지 우려했다.

폐가 쑤시도록 파문의 호흡을 들이키고 내쉬며 꼬박 하루를 지샜다.다음 아침이 밝아서야 맥이 탁 놓였다.

아침부터 쉬거나 쪽잠을 청하고 일몰부터 경계하면 무리없다.

방침을 정하고부터 여유가 생겼다. 그래봐야 쥐꼬리만큼이지만.

그래도 피곤함은 어쩔 수 없었다. 잠을 잔다고는 해도 깜박하면 해가 진 뒤까지 곤히 잠들어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마음을 완전히는 놓지 못한다.

불행 중 다행은 혈귀를 단 한 마리도 만났다는 점.

분명 시험의 내용에 대해 들었을 적에는 마치 혈귀가 쏟아져나오는 아비규환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실상은 아니었다.

놀라우리만치 조용하다.

운이 좋아서 피해온 것인지, 다른 수험자들이 이미 처리하고 넘어간 자리를 뒤늦게 찾아가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렇게 엿새가 지나간다.


단 하루. 한나절만 버티면 끝이다.

바삭

바스러지는 낙엽.

돌아가면 스승님의 요리를 맛보고 싶다 생각하며 발을 뗀다.

쉬익

호흡법 유지로 민감해진 감각에 걸려든 기척 하나가 흉포하게 달려든다.

"히익!?"

간발의 차로 피했다.


경계는 했다지만 실제로 맞닥뜨리자 괴상한 소리가 나와버렸다.

"혀, 혈귀"

자세를 고쳐잡는다.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손톱을 세운 채 거리를 벌린  놈은 침을 흘린다.

무력하게 당해온 과거.  앞에서 날 봐주던 아이를 잃었다. 특이한 능력을 쓰는 혈귀 때는 외부의 도움을 빌어서 간신히 살아남기만 했다.


이번에는 여기서 내가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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