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20편 (20/109)



〈 20화 〉20편

육성자의 교육, 그 시작으로부터 반년이 지났다.


산자락은 네 바퀴를 반나절 안에 주파할  있게 됐다.

그 외 자잘한 성과가 있었으나 파문의 힘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있기는 했으나 미미하게 늘었다가 정답이다. 아무래도 호흡해온 시간 자체가그리 길지않다보니. 앞으로도 장기적으로 두고 볼 일이다.

달리기를 끝내고 팔굽혀펴기 등 운동까지 마친 후 약간의 개인 훈련. 씻고 숙소로 돌아온다.

언제나처럼 화롯불 근처에 앉는다. 향이 다르다.

'고기인가?'

흔하지 않은 일. 맛있는 스승의 요리지만 육류가 들어가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 냄새의 농도로짐작해보면 꽤 많은 양이다.

무슨 일이지. 중요한 뭔가 잊어버린  있었나?

잡념은 뒤로 하고 먹자.

고기가 입에서 녹는다. 높은 강도의 단련으로 푸석푸석해진 몸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스승님은 비운 그릇에아낌없이 덜고 또 덜어주셨다. 컸던 냄비의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한바탕 전투같은 식사를 마치자 불꽃 너머에서 물체가 날아온다.
반사적으로 잡는다.

편지. 종이에 무언가 적힌 편지다.

보낼 사람이 없는데. 편다.

가지런한 글씨. 가느다란 붓으로 적어내린 글과 그림.

'최종 선별'

네 글자. 단순한 글자일 텐데 종잇장이 무겁다. 긴장감.

후지카사네야마, 상복색 산이란 의미의 그곳에서 치러진다는 시험. 여기서 통과해야 귀살대원이 될 수 있다.

지도도 있다. 상세한 내용은 없이 다만 대략적인 형상으로 스승님의 거처에서 선별 시험장까지의 지리를 표현한 그림이었다. 지도를 본 적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해하기 쉽게끔 구성한 약도. 눈에 담는다.

마지막 적힌 한 줄.

'불태워 파기하라.'

내심 품에 두고 헷갈리면 꺼내 읽으며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아쉽다.

불길에 던져넣는다. 모서리부터 천천히 검게 타들어가던 종이는 순식간에 잿가루로 바뀐다. 한 줄기 연기를 피워올리면서.

탁탁

가벼이 두드리는 소리. 스승님이 방문 앞에서 부른다. 재빨리 일어난다.

반 년간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 곳. 궁금해도 열어볼 수 없었던 그 방.

끼이익

작은 내부엔 하나, 나무 궤짝이 있었다.

스승님은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검집에 든 칼. 한 자루의 도가 뉘어져 있다.

검집의 한 중간을 꾹 잡아 들어올린 스승은 내게



내밀었다.

"저한테요?"

멍청하게 되묻자, 스승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다.

"하지만 저는..."



스승의 마음은 변화가 없는 듯했다.

분명 알고 계실 터이다. 개인수련 시간이건 아니건 칼자루를 쥔 적은 없다. 파문을 전해받을 때부터 맨 손, 몸으로 싸워왔고 근 반 년도 팔다리 쓰는 법에 집중해왔다.

그럼에도 가져가라 하신다. 혹시나하는 스승의 복잡한 심경이 묻어나는 것만 같다. 거절하지 못한다. 떨리는 손길로 받아든다.

방심하고 미진한 준비 탓에 혈귀에게 당했던 전적을 생각하면 뭐라도 더 갖고 있는 게 상책이다. 합리적인 사고 부분을 제하고서라도 거절하지 못했다. 흠집이 가득해 거센 전투를 치러온 세월이 가득한 칼자루를 고목같은 손으로 전해주는 그것을 보고도 도저히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날이 밝았다.



길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신발이 겉돌지 않게 단단히 묶고 선다.

선선한 아침공기가 내려앉은 숲. 뒷짐을 진 스승을 뒤로 하고 내딛는다.



 해줬다


화들짝 놀라 뒤돌아본다. 이미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묵직하고 다정한 음성은 확실히 남아있었다.

아마도 스승. 처음으로 칭찬. 인정.

누구도 없는 그 길 위에서 한참동안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최대한의 감사를 실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