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19편 (19/109)



〈 19화 〉19편


수련의 성과는 매우 더디게 늘어났다.

반나절 한 바퀴를  두 배로 늘리는데 한 달이 소요되었다.

 바퀴를 반나절에 소화하고 체력단련을 하는 수준이 된 시점은 그로부터 두 달 뒤.

지루하기 짝이 없는 훈련임에도 견뎌낼 요소가 몇 있었다.


체력 상승에만 전념할 환경 조성이 첫번째.

스승님은 엄격하고 때로는 작대기 찜질을 일삼곤 했다. 허나 거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식사나 잠자리, 기본적인 부분은 철저하게 마련해준다.

두들겨맞는 빈도도 숙련도가 상승하고 실수하거나시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어지며 수직 낙하했다.

사실 기가 막힌 스승의 음식이 원동력에 기여했다. 배고픈 와중에 한 입하면 세상 부러울  없다.



두번째는 파문이 안겨준 궁금증에 대한 고찰.

하루는 여느 때처럼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아직 과제의 양이 추가되기 전, 아슬아슬하게 시간 내에 들어갈락 말락 하는 수준이던 시기.

잠시 나무에 기대 쉴 때였다.

한창 뛰던 도중이어서 호흡법을 아직 끊지 않은 상태. 무심코 손을 나무에 갖다댔는데.

달라붙는다.

"어?"

그간 사용해오면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현상.

신기해서 뗐다 붙였다 반복. 숨이 가라앉고 평소의 호흡으로 돌아온다. 달라붙는 느낌이 사라진다.

혹시나 싶어 파문의 호흡을 시전하며 다시 접촉한다. 유사한 감각이 다시금 와닿는다.

극도로체력을 갈고 닦느라 파문의 호흡이 자연스러워지고 이전보다 체력회복이 빨라졌다거나 변화는 있었다.

이런 일은 없었다.

하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훈련을 강제당하다보니 무의식 중에 파문의 호흡을 하게 된다. 이전에는 신체가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생명유지차원의 호흡이었다면, 지금은 격한 움직임을 보조하기 위한 자동 호흡의 느낌으로.

격렬하게 움직일 이유가 없는 일상생활에서는 기현상이 존재했다 한들 경험할 계기가없었던 거다.


그 후 의문과 호기심이 생겼다.

수련 중 틈틈이 탐구한다.

파문은 여러 특성이 있었다. 달라붙기도 하지만 밀어내기도 한다. 파문을 전수해준 이국인의 말에 의하면 주위 생명체를 감지하는 기술도 있다던가. 파문이 생명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보니 가능한 일인가보다.

듣기만 했던 이론 상의 일이 손 끝에서 벌어지는 건 신선한 경험이었다.


답답할 때는가끔 뭔가 두들기기도 한다.

이를테면 나무같은 것. 아무 대처없이 때리면 손이 아프기에 꼭 호흡을 하며 주먹에 힘을 집중하는 그림을 마음으로 그리며 타격한다.



살짝 파인 자국이 남았다.

생각해보자.

호흡을 하며 달리다 부딪힐 땐 통증이 없는 선에서 끝났다. 흔적은 남는 일없이.

주먹에 집중하며 내지르니 단단한 나무 껍질에 손의 모양대로 문양이 생겨난다.

더 작은 면적에 집중한다면.

손가락, 그것도 손 끝에 힘이 모이는 심상을 떠올리며 지그시 누른다. 무른 점토를 압박하는 감촉. 눈을 뜬다.

구멍이 딱 손가락 굵기로 파여있었다.

얼마 안 되는 시간. 그 사이 극적으로 가진 힘의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집중을 달리 하는 것만으로도 파문이 만들어낸 결과는 다르다.

일점집중.

같은 양의 힘이라도 사용법에 따라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한 번은 한창 뛰다가 토끼가 돌발적으로 나타났다. 달려나가려던 기세를 죽이지 않으면  들짐승이 무사하진 못할 것.워낙 가까운 거리에 이미 늦었구나 느낌이 들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때.

세상이 느려졌다.

뛰어드는 토끼가 보인다. 벌름거리는 코의 움직임이 둔화한다. 그 눈망울이 이리로 향하는 것도, 털 끝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까지.

멈춰가는 흐름 속에 발견했다. 작은 틈이지만 내가 크게 자세를 낮추며 등짝을 지면에 붙이고 미끄러진다면 회피가능하다 판단이 선다. 안심하고 숨을 내쉬자 다시 토끼가 원래의 움직임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갈려서 생채기가 나긴 했지만 신기한 일이다.

혈귀를 상대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긴 했지만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지 못했다.


세번째는 동기의 존재였다.

내가 노인,  스승님의 거처에 도착하고 이틀 뒤. 또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이유는 모르나 귀살대원이 되겠다며 소개를 받아 마찬가지로 훈련을 시작한 동기생.

"더는 못해먹겠다!"

씩씩거리며 그는 멋대로 돌아갔다.

무의미해보이는 단순 체력단련의 반복. 귀살대원이 다들 갖춘 검, 그걸 다루는 흔한 검술조차 처음부터 가르쳐주지 않는다며 벌컥 화를  것이다. 그가 훈련 시작 일주일 무렵의 일이다.

애초 그는 스승의 형상을 목격했을 때부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다리가 없다.

그런 그가 무슨 실전 검법 연마를 도울 수 있냐는 얘기다.

막무가내식 탈주 이후로도 나는 꾸준히 훈련에 임했다.

궁금했다.

과연 이 스승님이 내주는 과제를 수행하면 무엇이 바뀔까? 그 뒤에는? 경험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혈귀와의 전투가 동기부여가 된 측면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체력부족을 절감했다. 극히 힘들어도 몸에 힘이 붙는 것을 절절히 체감 중인데 굳이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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