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16편
렌고쿠 쿄쥬로의 방문.
그 뒤로 별 일은 없었다.
꼼짝없이 누워서 때때로 찾아오는 고통의 소독 외에는 무료한 일상의 반복.
며칠 후부터는 호흡 수련도 틈틈이 가능해졌다.
상태가 더 호전되고 나서는 외출도 허락됐다. 기껏해야 누워있던 건물, 병동 주위를 오가는 수준이었지만.
따사로운 햇살. 이따금 우는 풀벌레 소리. 꽃을 옮겨 앉는 나비. 미지근한 실바람이 손등을 어루만지며 스쳐간다.
휴식에 최적화한 공간이다.
"잠시 지나가도 되겠나...?"
중저음의 묵직한 목소리. 위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든다.
거한. 본 적도 없는 거구의 사내가 서있었다.
이마에 일자로 그어진 흉터. 나지막히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며 합장한 두 손의 염주를 한 알씩 돌린다. 좌우 동일한 글귀가 내리 새겨진 길고 긴 겉옷을 대원복 위에 걸친 모습을 보아 귀살대원인 것 같기는 한데...
"아, 죄송합니다!"
아직 그가 멈춰서있음에 당황해 얼른 비킨다. 병동 출입구 계단에 앉아있었던 게 실수다. 볕도 잘 들고 워낙 사람들 왕래가 없던지라 안심했었다.
"아니, 암주님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로?!"
당황한 또 한 사람이 안쪽에서 뛰어나왔다.
"아아. 전갈을 보냈을 터인데..."
까아악
때맞춰 날아오는 까마귀 한 마리.
오른팔에 새를 앉힌 대원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입을 연다.
"이 녀석이 히메지마 교메이 님께서 보내신 그 놈이군요."
"다시 한 번 말해줌세. 지난 밤 가여운 자매를 혈귀의 손에서 구했내만... 상처를 입어서 그만..."
안타깝게도 세상과 이별했다는 건가..
"치료할 약이 필요하시다는 거죠? 환자는 코쵸우 카나에, 시노부 두 분. 연령은 십대 초. 부상 부위는..."
오해했다.
급히 자릴 뜨느라 완전히 멀어진 것도 아닌 어정쩡한 거리였다. 파문 수련 이후로 신체능력 향상의 효과인가, 감각이 예민해졌다. 암주란 사람과의 대화는 비교적 조곤조곤하게 오가는데 대부분 선명하게 들렸으니.
"그런데 아이들의 회복이 마무리되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혹시 가르침을.."
"물어보아 가까운 친척에게 보내주려고 하네만. 자매의 처지와는 별개로 아이들이 거북스럽군."
열심히 뭔가 적던 대원에게 대꾸하는 암주라는 자. 무슨 내막인지 어린 아이를 싫어하는 낌새였다.
"아아아. 더는 참혹한 변고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네... 나무아미타불."
별안간 두 줄기 눈물을 쏟는 거한. 종잡을 수가 없다.
건물 내부에서 약품을 들고나온 대원에게서 받아든 히메지마 교메이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문자 그대로 사라졌다.
뒤에 물어 안 사실. 귀살대에는 몇명인가 특출한 무위를 자랑하는 기둥, 지주란 존재가 있다. 히메지마 교메이는 그 중 암주.
지주는 다 특이한 사람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