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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14편 (14/109)



〈 14화 〉14편

나는 약하다.



처음 폐가에 발을 들였을 때, 쥐들을 무시하고 혈귀에게 돌진했다면 어땠을까?

꼬챙이에 꿰인 고깃덩이처럼 쥐떼의 급습으로 구멍투성이가 되었을지 모른다.

애초에 주먹이 닿았다고 한들 그게 제대로 먹혀들기는 했으려나.

한두 마리 상대로 까지고 피흘리는 현실에 믿음이 없을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혈귀가 파놓은 덫에 걸려 퍼덕거리다 죽는 꼴이 되고 만 거다.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통할지, 맞닥뜨리고도 무사히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지.

그 무엇도 파악하지 못한 채 달려들었다. 그저 복수심에, 화가 나서, 구하지 못한 그녀에게 미안해서. 무모하다.

움직이지 못하고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하고 무력한 채로 죽는다. 안타까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지켜보는 게 전부라 더.


시간의 정적.


콰앙

고요를 깨고 부서지는 소리가 날아든다. 후방.

"여기인가!"

소년의 음성.

뒤에서 누군가 받쳐드는 감각. 옮겨진다. 어느샌가 꺼내든 칼로 거세게 휘젓자, 벽에 그득하던 쥐무리 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난다. 몇 번의 칼질로 수십을 정리한 거다.

"잘 버텼다...만. 대원이 아니었나? 뭐, 상관없다!"

뒤돌아선 소년은 붉은 빛이 반절을 감고 있는 도신을 부여잡고 혈귀를 향해 선다.

"조금만. 잠시만 더 버텨주게!"

활기 가득한 소년. 바닥에 흩어져있던 이름없는 뼈들처럼  또한 검은 옷, 위로는 불길을 휘감은 듯한 머리칼.

'같은..소속의...'

어지럽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는 와중에도  등의 滅 한 글자는 눈에 들었다.

"건방지게.. 어디서 방해야!"

의도치는 않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벽에 기대어 앉은 지금. 장내의 광경이 뚜렷하게 보인다.

앙칼진 목소리의 혈귀가 거세게 손짓을 하자 일순간 수백의 쥐가 쇄도했다.

"전집중! 불꽃의 호흡, 제 4형!"

외침과 함께 깊이 숨을 들이킨 소년은 적색도로 둥글게 원을 그린다. 빠르게 거세게.

"성염의 물결!"

전방에 세차게 원을 그리다 넓혀간다. 불꽃의 고리. 적빛의 방패에 쏟아지는 쥐들은 마치 불빛에 달라붙는 덧없이 타죽는 부나방. 남김없이 갈려나간다.

"이이익!"

혈귀가 분통을 터뜨리며 두번째, 세번째, 그 이상의 공격을 해왔다.

불같은 소년은 그때마다 불꽃의 호흡이란 것의 여러 기술로 응했다. 그의검세에 휘말린 쥐떼는 가루로, 혈귀의 수작은 무위로 돌아간다.

"허억, 허억"

지친 기색이 역력한 혈귀.

"음! 이게 다인가?"

팔짱낀 채 여유가 있는 소년.

실내 그 넓은 공간은 깨끗했다. 쥐  마리 그 흔적조차 없다.

이를 부득부득갈던 혈귀는 움츠러든다.

"대체 뭐가 문제야? 사람 좀 잡아먹는 게"

"그것이 문제다!"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소년.

다시 칼자루를 쥐고 다가가자, 혈귀는 뒤로 넘어진다. 슬금슬금 바닥을 긴다.

"오,오지마! 하, 하,  번만 살려"


불꽃의 호흡,제 1형
시라누이


혈귀의 너머에 소년은 서있었다. 한 차례 검을 털고 수납한다.

뒤에선 그 귀신같던 혈귀의 목이 떨어지며 타올라 재로 화한다.

불같은 기세의 날카로운 직선 공격. 깔끔한 절단.

강하다.



이쪽으로 신속하게 달려오는 소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심각하군."

나를 받쳐들었던 그의 팔뚝 언저리가 핏물로 번들거릴 정도니 보지 않아도 위험한 상황일 테지.

안 그래도 극심한 피로로 눈 앞이 깜박깜박한다. 놓아버리면 추락할 것만 같아 아찔하다.

푸드득

"까아악! 까악!"

웬 까마귀가 창밖에서 틈새로 날아들었다. 천장 가까이서 둥글게 선회하며,

"렌고쿠 쿄쥬로오 다으음 목적지느은"

"가까운 곳으로!"

말하는 까마귀도 놀라운데 그걸 끊는 소년.

"부상자다! 옮긴다!"

"임무우가아아"

"안내!"

"아안돼애앤다아아 임무우"

"부탁한다!"

까마귀와 소년의 입씨름.

점점 흐리게 보인다. 어두워진다.

소년이  번쩍 들더니 둘러업는다.

뒤따르는 까마귀 울음.

더없이 따뜻하다.

까무룩 잠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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