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12편 (12/109)



〈 12화 〉12편

섬뜩하다.

꾸물거리는 쥐떼가 들러붙어 조용히 해체 작업을 진행한다.


주둥이로 물고 갈 만큼 떼어낸 쥐들은 먼저 자리를 뜬다. 기다리던 쥐들은 빈틈으로 빼곡히 파고든다. 빠져나온 쥐들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줄지어 달린다.




무리 중 하나를 밟았다. 추측이 확신으로 바뀐다.


정상적인 생물이 아니다.


생김새부터 습성까지. 낯선 존재가 바로 옆에서 동족을 밟았는데 찍 소리 하나  낸다.


발을 든다. 아무 것도 없다. 밟힌 무언가의 흔적조차 없다. 분명 누를 때 감촉이 있었다. 그런데 조금  힘을 주자 푹 꺼져버린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그들의 작업이 끝나간다.

기술좋은 정육업자를 연상케 한다. 유골과 피, 옷가지 뿐. 눈 깜박할 새 마지막 한 마리가 현장을 빠져나간다.

뛴다.

지금 놓치면 끝이다.


다시금 불빛이 드리운다. 골목 입구엔 사람이 가득하다.  전 상처입은 취객과 부축하려는 행인, 궁금증과 불안이 역력한 군중.


그 사이를 비집고 밀쳐낸다. 투덜거리며 불평을 토하는 이도 있지만 받아줄 겨를이 없다.

벌써 저만치 멀어져간다.

"흐으읍"


심호흡. 파문의 호흡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몸 속에 차오르는 힘.

가속한다.


부지런히도 몰려가는 쥐 무리를 눈알이 빠지도록 노려보며 쫓는다. 주택 담장을 수직으로, 지붕 위로, 때론 도약까지. 재주좋게 도주하는 무리를 따라잡으려면 그들을 응시하면서도 행인과의 충돌까지 피해야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


놀란 사람들의 얼굴, 손짓. 도시에서 교외로, 외진 곳으로.




사아아

서늘한 바람이 불어간다.

너른 들판에 솟은 집. 말그대로 대문짝만했다. 꽤 규모가 있다. 그러나 낡았다. 사람은 없어보인다.

스스슷

대열의 꼬리  한 마리가 풀숲을 헤치고 출입구 너머로 넘어간다.


바로 뒤따르려 했으나


"허억"


한달음에 달려온 탓인가, 급격히 피로해졌다.

흔들리는 갈대 아래 누워버린다.

거칠게 숨을 들이쉬자 속이 살짝 아프다.


여기까지 왔다.

아마 쥐들의 행보로 보아 저택이 인간인지 짐승인지 모를 혈귀의 거처로 짐작된다. 아직 혈귀라 단정짓긴 어렵지만 그럴 거란 예감이 든다. 아니어도 확인해본다.


진정됐다.

숨이 고른 걸 느끼고 일어난다. 순간 아차 싶다.


만약 진짜 혈귀가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 손은 텅텅. 아무 것도 없다. 사전에 뭐라도 무기삼아 준비했어야하나 싶지만, 고개를 흔든다.

어차피 지금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물건이어서야 쓸모가 없다.  수 있는 걸 하자.


마음을 다지고 걷는다.

스산함이 가득한 주택. 입구인 대문은 방문자가 없음을 나타내듯 제멋대로 열려있다. 문짝 하나는 달랑달랑한  금방이라도 떨어져나갈 것만 같다.

끼이이익


문턱을 넘는 순간 들리는 소리.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깜짝 놀라 소릴 낼 뻔 했다. 그간 미친 행각을 벌여온 놈이 있을지 모르는데 먼저 들키는 일은 사양이다.

끽 끼익

바람에 문짝이 조금씩 진동하며 나는 소리였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한층  조심스럽다. 담장 너머 안은 넓었다.

정원이 딸린 집. 좌우로 여러  건물이 서있다. 하나하나 훑어보자.

제일 작은 칸부터 열어본다.


소가구 몇 개, 곰팡내가 난다.

다른 방들도 별다른 건 없다. 쌓인 먼지가 주인잃은 지 오래됨을 알려줄 뿐.

마지막 하나. 제일 큰 건물. 예전 살았던 마을에서 촌장과 어른 몇몇이 모여 회의할 때 쓴다던 제일 컸던 회합장소보다도 더 크다.


담장 안이어서인지 잠잠해진 바람. 훤히 빛나는 보름달. 달빛 아래 육중한 집채와 그림자. 너무나도 조용하다. 침이 넘어간다.

팔락

까만 천 조각이 발에 채인다. 마지막으로 다시금 주위를 찬찬히 둘러본다. 잔뜩 긴장한 채 계단에 올라선다.


커다란 미닫이 문은 이미 반쯤 열린 상태. 발을 들이려는데

찰팍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뭔가싶어 반사적으로 확인한다.


뒤에서 내리비치는 월광에 선명한 윤곽. 거무죽죽한 혈액이 묻은 작은 뭉치는 몇 가닥 털이 자라있다. 마치 사람의 피부 일부를 떼어놓은 듯한.


내부가 보인다. 퀴퀴한 냄새, 썩은 내. 꽂히고 팽개쳐진  칼 몇 자루. 검은 옷 여러 벌과 흩어진 뼛조각. 옷자락 위엔 한 글자, 滅.


홀린듯 몇 걸음 내딛는다.

"어린 아이네."

누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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