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2편 (2/109)



〈 2화 〉2편


무라타

이름이다.

있지만 없는 거나 다름없는.



'어이', '얘야'

보통 다들 그런 식이었다. 이름보다는 본인들 부르기에 편한 쪽으로 마음대로다.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이 집 저  떠도는 처지. 관심은 부담이다.

"거기 다 했으면 이거 먹으렴."

주먹밥 하나. 받아들고 아무렇게나 길가에 앉았다. 옆엔 쓸던 빗자루를 세워둔 채.



이렇게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잡일을 해주기 시작한 것도 좀 됐다.

어릴 적 나는 이 마을 입구 귀퉁이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한다.


기억도 안 나지만.

며칠인가 기다려봐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말하자면 버려진 자식인 거다. 내가 돌봐지던 촌주의 집에 모인 몇몇 사람들이 잠시 회의를 했고 결론이 내려졌다.

돌아가며 돌본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두번 심부름이란 명목으로 간단한 일거리가 주어졌다.


시간이 지나 힘이 붙자 소일거리는 허드렛일로, 노동에 가깝게 변해갔다.

부모없이 눈칫밥 얻어먹으며 얹혀살던 입장에선 다행이다. 뭐라도 해주고 얻어먹는 편이 마음은 편하다.


"왁!"

갑작스런 탄성에 고개를 든다. 옆에 어느샌가 나란히 앉아있는 소녀.

"좀 늦길래 데리러왔어"

싱긋 웃는 그녀. 일이주일에 한번 꼴로 순번이 도는 포목상집 딸이다.


"기다려줄게"

무슨 소린지 멍하니 보고 있으니 손가락을 까닥이며 내쪽을 가리킨다.


"덜 먹었잖아."

"어, 응"


황급히 남은 조각을 밀어넣었다. 생각이 길었다. 씹어삼키며 주섬주섬 챙기려니 그녀가 먼저 툭툭 털고 앞선다.

흥흥. 신나는 일이라도 있나. 콧노래를 부르며 앞장서는 그녀의 뒤를 따라 향한다.

포목상집의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약간 악의적으로 힘든 일만 시키는 집이 몇 있는데, 이 집은 아니다.


"읏차"

이렇게 거의 항상 짐도 같이 옮겨주기도 한다. 덕분에 일도 빠르게 끝나고 쉬는 시간도 길다.


"이리 와봐."


의문을 표하자 그녀가 탁탁 치며 옆자리를 권했다.


"무슨..."

"이쪽 봐봐"


무심코 고개를 돌린다. 고소하고 향긋한 내음. 그녀의 손길이 살짝 닿은 앞머리칼. 시야를 가리던 긴 머리카락이 탁 트인다. 섬세하게 좌우로 머리를 쓰다듬던 손가락이 떨어진다. 만져본다. 매끈한 액체가 슬며시 묻어난다.

"동백 기름. 머릿결이 찰랑거리니깐, 이게 낫네. 무라타."

손바닥을 탁탁 털며 웃는 그녀. 신경쓰지 않아 내내 가려오던 앞머리가 걷히고 선명하게 보인다. 그녀가. 웃음이. 발간 입술이.

심장이 뛴다.

 누구도 부르지 않았던 이름.  이름에 빛깔이 생겨난 기분.


이후 일과에 하나가 늘어났다. 동백기름으로 머리손질.


굳이 포목상집 일이 없어도 그녀는 종종 찾아왔고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조금씩 다가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축제가 열리는 시기가 왔다.

근방의 마을과 함께 하는 그 때는
모처럼 사람들은 꾸며입고 어두웠던 밤길은 등불로 빛난다.


'기다릴게, 무라타'


그녀와의 약속. 그간 모아온 푼돈으로 자그마한 장신구 하나를 구했다. 선물이다.


걸음을 옮겨 인적이 뜸한 마을 한구석에 이르자 저만치 누군가 손을 흔든다.

"여기!"

가까워질 수록 선명해졌다. 차려입은 전통복에서 한껏 신경쓴 기색이 엿보인다. 가지런히 모은 손. 그녀의 상반신을 감싼 옷감의 화려한 무늬.


"많이 기다렸어, 무"


스칵

그녀의 싱그러운 미소, 이쪽을 향한 눈매, 틀어올린 머리와 드러난 하얀 목선,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멈춘 입가, 그 모두가

목덜미의 가로 그어진 시뻘건 혈선 위로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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