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242화 (242/242)

242. 인류 최초 (3)

‘뭐? 원주인?’

뜻밖의 메시지를 확인한 태주가 직경 3미터가량의 게이트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손님이 나 하나라 출입문도 작은 건가?’

게이트의 크기가 정형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상급 던전과 연결되어 있을수록 입구가 넓고 더 강력한 마력을 방출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E급 게이트보다 입구가 작으면서도 S급 게이트 이상의 마력을 방출하는 형태는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이례적인 것이었다.

‘썩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초대를 받았으면 가 보는 게 예의겠지?’

부츠의 원주인이 나타난 이상 대화로 끝날 일은 아니라고 판단한 태주였다.

‘주인이 둘이라고 한 쪽씩 나눠 신을 순 없으니까.’

싸움이 불가피하다고 여긴 태주가 인벤토리를 열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장비들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마르지 않는 풍요의 반지, 영웅 오크의 혼이 담긴 포효의 팔찌, 피닉스의 집요한 발톱,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으로 위장한 암살자의 복면까지.

신성력이 깃든 행운의 목걸이와 한정판 과잠은 희귀 등급이었지만, 재앙 등급의 부츠를 제외한 나머지 아티팩트들은 모두 전설 등급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원거리 딜러에 상대방의 공격을 회피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갑옷 형태의 무거운 방어구는 따로 구비하고 있지 않았지만.

▶ 스킬 『은신』이 발동되었습니다.

폭주 스킬을 해제하지 않고 있던 태주가 이번엔 복면으로 기척을 차단한 뒤 투명화 효과를 활성화시켜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

초대장을 보낸 아티팩트의 원주인이 자신에 대해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정직하게 나아갈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들어가 볼까?’

마지막으로 전설 등급인 썬더 드래곤의 뿔로 만든 전격의 활을 꺼내든 태주가 폭발형 화살인 버스터 애로우를 선택한 뒤 게이트가 열린 곳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 착용한 아이템으로 인해 전반적인 스탯이 상승하였습니다.

*

*

*

“……?!”

게이트 안으로 들어선 태주가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둑어둑한 하늘에선 금방이라도 벼락을 토해낼 듯 그르렁대고 있었고, 땅에선 발목까지 차오른 피가 사방으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부츠랑 딱 어울리는 장소네.’

태주가 주위를 천천히 돌아봤다.

엄폐물 하나 없는 완전한 개방형 공간이었다.

심지어 자신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했던 원주인이 모습마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 체력과 마나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태주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미 갈증이 해소된 상태였지만, 은신의 경우 초당 10에 해당하는 마나가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스킬이었기 때문에 발목까지 피에 잠긴 상태에선 흡혈 시 체력과 마나의 회복 속도가 300퍼센트 증가한다는 부츠의 버프가 활성화되는 것이 당연했다.

‘싸우다 지칠 일은 없겠네.’

아이스박스 안에 두 발을 집어넣었을 땐 피가 줄어드는 것이 육안으로 확인됐지만, 냇물을 조금 마신다고 해서 수위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듯 워낙 면적이 넓고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다 보니 사체 처리장에서와 마찬가지로 티가 나지 않았다.

‘아 참, 내가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게이트 가까이 서 있던 태주가 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닥에 슬쩍 표식을 그렸다.

▶ 첫 번째 『웨이포인트』가 설정되었습니다.

만약 상대가 너무 강해 승산이 없다는 결론에 이를 경우 언제든지 게이트 앞으로 이동해 폐창고로 돌아간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그나저나 이 자식은 사람을 불러 놓고 어디 간 거야?’

마력을 감지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태주가 게이트 앞을 벗어나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 땅속에 매복 중인 적의 위치가 감지되었습니다.

폐창고 주변이 안전했던 탓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부츠의 지하 탐색 옵션이 패시브 스킬처럼 저절로 발동했다.

‘옵션의 성능 테스트를 여기서 하네.’

순간,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화살표 하나가 생성됐다.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 한 녹색 화살표는 허리 정도의 높이에서 그 끝을 바닥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위치만 알 수 있을 뿐, 적의 실루엣까진 확인할 수 없었다.

‘이건 공격이 아니라 노크다.’

적의 위치를 파악한 태주가 버스터 애로우 한 발을 화살표 근처에 발사했다.

쉬이익! 푹!

화살촉이 바닥에 꽂히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펑!

분수처럼 솟구친 피는 비처럼 떨어졌고, 순간적으로 드러난 바닥은 움푹하게 패었다.

바로 그때.

촤악!

태주의 의도대로 폭발에 반응한 상대가 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적의 위치를 밀고하고 있던 고마운 화살표는 녀석의 등장과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너구나.’

태주가 원주인으로 추정되는 녀석의 생김새를 빠르게 스캔했다.

2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 키, 피 칠갑이 된 회색빛 피부, 오른손에 든 독특한 모양의 창.

상반신엔 특별히 걸친 것이 없었지만, 허리 밑으로는 나름 보호구를 착용한 상태였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바닥에서 솟구칠 당시 맨발이었다는 것.

‘진짜 신발 때문에 부른 건가?’

태주가 피에 잠긴 상대의 허전한 발목과 자신의 화려한 부츠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붉은 눈은 눈꺼풀이 없는 것처럼 일순간도 깜빡이지 않았다.

“스바큐샤수문드라미캭쿠랍무타루.”

모습을 드러낸 이후 미동조차 없던 녀석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언어가 쏟아져 나왔다.

‘뭐라는 거야?’

태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별 과제 땐 오크인 티마란과도 소통이 가능했지만, 현실에선 마수의 언어를 알아듣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스바큐샤수문드라미캭쿠랍무타루.”

같은 말을 반복하던 녀석의 고개가 태주가 있는 방향으로 홱 하니 돌아갔다.

‘……?!’

기척을 지운 채 은신 스킬까지 쓰고 있던 태주가 우연이라고는 볼 수 없는 녀석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흠칫 놀랐다.

‘설마.’

태주의 시선이 자신의 부츠를 향했다.

부츠의 위치를 원주인에게 들킨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피에 잠긴 부분이 투명화 효과로 인해 구멍이 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두 발로 걷든 점멸을 쓰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순간 첨벙이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아쑤투게케.”

태주를 응시하던 녀석이 왼손을 뻗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 상대가 정신적인 대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뭐? 정신적인 대화?’

누가 봐도 말이 안 통하게 생긴 녀석의 이성적인 접근이 태주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설마 알고 보니 좋은 녀석이었어, 뭐 이런 건 아니겠지?’

말보단 주먹, 아니, 화살을 앞세우려 했던 태주가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Y를 선택했다.

▶ 언어의 경계를 초월한 이질적인 존재 간의 소통이 성사되었습니다.

서로의 의사가 합치되는 순간 마수의 언어가 모국어처럼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정신적인 대화라는 표현답게 상대방의 의사가 텔레파시처럼 머릿속으로 전달되는 것일 뿐, 입에서 귀로 전해지는 일반적인 대화는 아니었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생각이지? 나약한 존재여.”]

부츠의 원주인은 인간인 태주를 한 수 아래의 생명체로 여기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라. 그렇지 않으면 이 창이 너의 두려움까지 모두 집어삼킬 것이다.”]

왼팔을 내린 부츠의 원주인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장창의 손잡이 끝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쿵!

2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였지만, 진동으로 인해 퍼져나간 동심원 형태의 물결이 태주가 있는 곳까지 이어졌다.

【“역시 관상은 과학이네.”】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에 높은 점수를 주려 했던 태주가 말이 통하기 무섭게 시작된 일방적인 협박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인간 사회의 농담을 이해할 리 없는 몬스터가 헛웃음의 이유를 물었다

【“무슨 뜻인지는 알 거 없고. 나를 왜 여기로 초대한 건지부터 설명해 봐.”】

[“인간치고는 꽤나 당돌하군.”]

녀석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자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좋아. 그럼 일단 내 소개부터 하지. 내 이름은 카이세로. 첫 번째 혼돈인 절망의 구렁텅이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이자 네가 허락도 없이 신고 있는 그 장화의 주인이다.”]

【“뭐? 혼돈의 입구?”】

원주인의 정체를 알게 된 태주가 두 귀를 의심했다.

잠금장치가 풀릴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의 메시지.

혼돈의 입구로 연결된 곳이 아니라는 수수께끼 같은 알림의 실마리를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그 혼돈의 입구라는 건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상대를 쓰러뜨릴 생각만 하고 있던 태주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 전까진 공격을 유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왜 궁금하지? 어차피 여기가 네 무덤이 될 텐데.”]

카이세로가 태주의 진지한 질문에 조롱

섞인 태도로 회답했다.

【“네 말대로 어차피 죽을 거 속이라도 후련하게 죽으려고.”】

대화가 끊기는 것을 원치 않았던 태주가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며 대답을 유도했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녀석이군.”]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태주의 능청스러운 반응에 색다른 흥미를 느낀 카이세로가 죽기 전에 들어주는 소원처럼 혼돈의 입구에 대한 비밀을 조금씩 풀어냈다.

[“혼돈의 입구는 동서남북에 하나씩 총 네 개가 있다.”]

【“아아, 네 개.”】

혼돈의 입구 옆에 늘 (0/4)이라 표시됐던 이유를 알게 된 태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중 동쪽에 위치한 첫 번째 혼돈의 주인인 듀라고네스님을 모시고 있지.”]

【“듀라고네스?”】

[“그래. 절망의 구렁텅이를 관장하시는 태초의 재앙이시다. 그 장화도 그분께서 하사해 주신 것이지.”]

【“태초의 재앙이라…….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는데?”】

혼돈의 입구에만 집중했던 태주가 그 너머에 존재하는 절대 악의 등장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시스템이 자신에게 열쇠를 찾으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설령 혼돈의 입구를 어찌어찌 통과한다 해도 더 큰 위협에 직면할 것임이 확실시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적인 대화가 연결된 이후부턴 좋든 싫든 태주의 생각이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지만.

[“일이 커지다니. 무엇이 말이냐.”]

【“아니야. 넌 신경 쓸 거 없어. 그나저나 그 혼돈의 입구를 여는 열쇠는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거야?”】

열쇠는 시작에 불과함을 깨달은 태주가 자신의 관심사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열쇠?”]

태주의 질문에 코웃음을 친 카이세로가 두 손으로 창의 자루를 움켜쥐며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건 장화를 회수하고 난 다음에 알려주지. 뭐, 그땐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몸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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