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인류 최초 (2)
[전장의 피를 탐식하는 포식자의 흡혈 장화]
- 등급: 재앙
재앙 등급의 통제 자격을 인류 최초로 얻게 된 태주가 설렘으로 가득 찬 눈동자로 아티펙트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 민첩성 500% 증가
‘뭐야, 오백?’
태주가 버프의 증가 수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장비들 중 민첩성을 가장 높여 주던 녀석은 200%의 버프를 가진 전설 등급의 복면이었기 때문이다.
‘염 기사님이 준 복면이랑 같이 쓰면 장난 아니겠는데?’
더욱이 특정 클래스를 위한 아티팩트는 아니었지만, 궁수인 태주에게 있어 민첩성의 급상승은 단순한 이동 속도와 회피율의 증가를 넘어 속사 능력까지 높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 흡혈 시 체력, 마나 회복 속도 300% 증가
두 번째 버프는 회복 속도에 관한 것이었다.
‘와아, 이것도 수치가 어마어마하네.’
그동안 태주의 회복 속도를 책임지고 있던 아티팩트는 역시나 전설 등급을 가진 함 교수의 반지였는데, 마나의 회복 속도만 100% 증가시켜 주는 반지와 달리 부츠는 체력과 마나 모두를 동시에 회복시켜 준다는 차이가 있었다.
‘힐러처럼 상처를 치유할 순 없어도 체력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겠어.’
상급 게이트로 갈수록, 그리고 후반부에 이를수록 레이드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지고, 몬스터를 잡을 때 들이는 수고와 부상의 위험 또한 자연스럽게 늘어났는데, 그러다 보니 실전에선 기술적인 측면 못지않게 체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었다.
동료들의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힐러가 공대 내에서 우선적인 보호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는데, 지금처럼 부츠의 버프가 체력적인 뒷받침을 해준다면, 힐러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팀플이 아닌, 솔플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고 있는 태주에게 가장 적합한 버프를 얻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진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체력적인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었지만.
‘그나저나 흡혈 시라는 조건이 딱 재앙의 찬가에서 본 내용이랑 똑같네.’
순간, 전장의 웅덩이를 가득 채운 약자들의 피에 얼굴을 담가 사리사욕을 채운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럼 몬스터의 피가 다 포션이 되는 셈이니까 긴박하게 싸우는 와중에도 얼마든지 체력과 마나를 채울 수 있겠네.’
태주의 짐작대로 적이 흘린 피를 밟기만 해도 흡혈이 일어나니 왼손으로 활대를 움켜쥔 채 오른손으로 활시위를 당겨야 하는, 다시 말해, 포션을 마시기엔 두 손이 너무 바쁜 궁수의 입장에선 이보다 간편한 회복 방식이 없었다.
- 3단 점프
재앙 등급의 부츠엔 민첩성과 회복 속도 같은 일반적인 버프 외에도 태주의 눈길을 끄는 다양한 옵션들이 부착되어 있었다.
‘뭐? 3단 점프?’
게임 속에서나 볼 법한 흥미로운 표현을 마주하는 순간, 설명서에 해당하는 메시지가 겹치듯이 떠올랐다.
▶ 『3단 점프』는 허공을 밟은 횟수로 결정됩니다.
‘허공을 밟은 횟수라.’
폐창고의 천장을 올려다보던 태주가 오른손을 들어 대략적인 높이를 가늠해 보았다.
‘한번 해 볼까?’
살짝 무릎을 굽힌 태주가 발을 힘차게 구르며 제자리 점프를 시도했다.
탁!
비각성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지닌 태주의 몸이 부츠의 도움을 받아 평소보다 더욱 빠르고 높게 솟구쳤다.
‘오오, 이거 확실히 느낌이 다른데?’
체중은 그대로였지만, 몸놀림이 가벼워졌다는 것을 단번에 체감할 수 있었다.
‘이 상태로 허공을 밟으면 되는 건가?’
자신에게 고통만 안겨 주던 부츠의 놀라운 변신에 적응하고 있던 태주가 지면으로 내려오기 전 한 번 더 발을 굴렀다.
탁!
“……?!”
분명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허공 그 자체였지만, 마치 투명한 계단을 밟고 뛰어오른 것처럼 태주의 몸이 다시 한번 몸이 솟구쳤다.
‘뭐야, 2단도 이 정도인데, 3단까지 가능하다고?’
태주의 정수리는 이미 지붕을 지탱하고 있던 철제 골조에 닿기 직전까지 떠오른 상태였다.
‘그건 그렇고 내려갈 땐 어떡하지?’
발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문득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된 태주였다.
척!
3단 점프 대신 착지를 택한 태주의 두 발이 지면에 맞닿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적잖은 대미지가 누적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몬스터의 피를 빨아들이듯 착지 시의 충격 또한 모조리 흡수해 버린 느낌이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자신의 기우였음을 깨달은 태주가 이번엔 자신감 넘치는 도약으로 허공을 누볐다.
타들어간 땔감에서 날리는 작은 불씨보다 더욱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탁! 탁! 탁!
대각선으로 세 번, 그다음엔 수평으로 세 번.
탁! 탁! 탁! 탁!
심지어 벽이나 구조물을 이용해 일차적으로 도약을 한 뒤 3단 점프를 더하는 응용 4단 점프까지 성공한 태주가 놀이 기구를 탄 듯한 얼굴로 부츠의 성능을 만끽했다.
‘민첩성까지 높여 줘서 그런가? 몸이 아주 날아갈 것 같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착지를 끝으로 3단 점프의 테스트를 마친 태주가 남은 두 개의 옵션을 차례대로 확인했다.
- 지하 탐색
- 웨이포인트
‘이건 또 뭐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던 3단 점프와 달리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생소한 옵션들이었다.
▶ 『지하 탐색』은 땅속에 숨어 있는 적들과 함정의 위치를 자동으로 알려 줍니다.
‘이 정도면 거의 패시브 스킬 수준인데?’
저항 스킬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시전 절차 없이 자동으로 발동되는 옵션의 등장에 태주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땅속에 매복하고 있는 몬스터나 바닥에 설치된 함정의 경우 눈치를 채기도 어려울뿐더러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치명상을 입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피하면 그만인 함정과 달리 땅을 파고 들어간 녀석들을 공략하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는데, 지금처럼 지하 탐색 옵션이 레이더의 역할을 해준다면, 그러한 문제 역시 손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여긴 안전한 곳이라 잠잠했던 거구나.’
탐색 반경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별다른 테스트 없이도 옵션의 유용함은 충분히 입증된 것 같았다.
▶ 『웨이포인트』가 설정된 곳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습니다.
▶ 『웨이포인트』의 설정 방법은 부츠를 신은 발로 바닥에 원을 그린 뒤 그 안에 엑스 자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웨이포인트』는 한 번에 다섯 곳까지 설정할 수 있습니다..
▶단, 다섯 번째 『웨이포인트』가 넘어갈 경우 첫 번째 『웨이포인트』부터 차례대로 사라집니다..
▶부츠를 신은 발로 문질러 표식을 지워도『웨이포인트』가 사라집니다.
‘으음. 한마디로 순간 이동 능력이라는 거네.’
앞선 두 개의 옵션에 비해 사용법이 다소 복잡하긴 했지만, 반경 10미터 내에서만 이동할 수 있는 점멸 스킬과 달리 거리에 대한 제한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면 또 안 해볼 수가 없지.’
폐창고의 시멘트 바닥이 모래처럼 흔적이 남는 성질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웨이포인트를 설정해 보는 태주였다.
스윽. 슥. 슥.
평범한 가죽이었다면 시멘트 바닥을 긁는 순간 표면에 흠집이 났겠지만, 태주의 가죽 부츠는 어떠한 가죽으로 만들었는지 거침없이 선을 그려도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
▶ 첫 번째 『웨이포인트』가 설정되었습니다.
우연히 그릴 수 없는 웨이포인트의 표식을 완성하는 순간, 원의 크기에 딱 들어맞는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아아,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구나.’
▶ 『웨이포인트』를 설정한 자만이 『웨이포인트』의 위치를 볼 수 있습니다.
표식의 형태를 그리기만 하면 바닥에 자국이 남지 않아도 웨이포인트가 설정된다는 것과 부츠의 진정한 소유자만이 표식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 『웨이포인트』의 번호를 마음속으로 세 번 외쳐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설정은 좀 번거로워도 실행 방법은 간단하네.’
첫 번째 웨이포인트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태주가 정확한 테스트를 위해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스윽. 슥. 슥.
▶ 두 번째 『웨이포인트』가 설정되었습니다.
그리곤 점멸의 작전 반경인 10미터가 넘어가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창고를 나섰다.
만약 10미터 전후의 거리에서만 활용할 수 있다면 표식을 그릴 필요가 없는 점멸을 사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되겠지?’
창고로부터 약 50미터 가까이 떨어진 태주가 원하는 위치의 번호를 속으로 세 차례 되뇌었다.
‘2번! 2번! 2번!’
그러자 점멸을 사용한 것처럼 두 번째 웨이포인트 위로 순식간에 몸이 이동해 있었다.
‘어? 이게 되네?’
창고 안으로 돌아온 태주가 발밑에 위치한 마법진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잘만 활용하면 아주 재미있는 장면들을 연출할 수 있겠는데?’
장거리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비장의 카드 하나를 얻게 된 태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대외 활동을 훌륭히 수행하였습니다.
부츠의 세부적인 스펙을 표시하고 있던 창이 사라짐과 동시에 새로운 메시지들이 태주의 시야를 가렸다.
▶ [난이도 하] 『전장의 피를 탐식하는 포식자의 흡혈 장화』의 사역 요건 충족하기 (완료).
▶대외 활동 점수 [A+].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획득한 점수가 장학생 레벨에 반영된다는 점에선 동일했지만, 과제와 달리 대외 활동은 시스템이 만든 가상의 환경이 아닌 현실에서 그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 대외 활동 점수의 합산이 기준점을 넘었습니다..
▶장학생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Lv.23 → Lv.28
‘뭐야, 바로 28이 된다고?’
대외 활동의 난이도에 따라 완료 보상의 규모가 달라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갈수록 기준점이 높아지고 있는 장학생 레벨이 단 한 번의 성취로, 심지어 하(下)에 해당하는 난이도로 무려 5단계나 뛰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중(中)이나 상(上)이면 대체 얼마나 오른다는 거지?’
더 이상의 메시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태주가 슬슬 부츠를 벗으려던 바로 그때.
‘으음?!’
드럼통 안에서 타오르는 불빛이 희미하게 미치는 폐창고의 구석진 곳에서 강력한 마력과 함께 공간이 일그러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마.’
하던 일을 멈춘 태주가 일그러진 공간에서 생성된 작은 소용돌이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책에서 배웠던 바로 그 현상.
태주의 눈앞에 게이트가 생성된 것이다.
▶ 『전장의 피를 탐식하는 포식자의 흡혈 장화』의 원주인이 당신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스템의 초대장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