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240화 (240/242)

240. 인류 최초 (1)

【축하요?】

태주가 답장을 보내기 무섭게 1이 사라졌다.

[네. 국제헌터협회에서 태주 씨가 준프로임을 인정하는 공식 메일을 보내왔거든요.]

준프로에 해당하는 기준은 테스트 당일에 이미 넘어섰지만, 대부분의 업무 처리 절차가 그렇듯 실제 공인 시점은 상위 기관인 본부의 승인 문제로 인해 조금씩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예비 등록을 완료했어요. 지금 링크를 보낼 테니까 들어가서 확인해 보세요.]

사소한 실수조차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승화가 발 빠른 움직임으로 매니저로서의 본분을 성실히 수행했다.

‘일처리 한번 빠르네.’

승화의 신속한 조력이 고마울 따름인 태주가 링크를 눌러 국제헌터협회에서 마련한 구인 구직 사이트인 빅 사이닝에 접속했다.

‘시작부터 다 영어네.’

웹사이트 내의 언어 설정부터 한국어로 변경한 태주가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입력했다.

[1. 신 태 주]

‘어, 찾았다.’

다행히 콘택트 과정에 혼란을 유발할 수 있는 동명이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적에 2차 각성에 성공한 S급 매직 아처, 나이는 20살, 소속 한국대학교 헌터학과.’

혹시나 잘못 입력된 정보가 없는지 눈으로 차근차근 살펴보던 태주가 프로필 하단에 위치한 관심 등록 숫자를 확인했다.

[♡: 4]

‘뭐야, 지금 올렸는데 벌써 네 곳이나 찜을 한 거야?’

증가 속도가 궁금했던 태주가 프로필이 나온 페이지를 새로 고침 해 보았다.

[♡: 6]

‘어? 또 늘었네?’

사이트의 특성상 길드로 등록된 계정만이 구직을 원하는 헌터들을 관심 목록에 추가할 수 있었는데, 당사자든 제삼자든 어느 길드가 자신을 눈여겨보고 있는지에 대해선 따로 알 길이 없었다.

[봤어요?]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고 판단한 승화가 다시 대화를 이어 갔다.

【네. 오타 하나 없이 아주 완벽한데요? 올리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매니저의 계약상 의무를 다한 것뿐이지만, 그래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 태주였다.

[수고는요.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웃는 이모티콘) 아, 그리고 조금 이따 기사가 몇 개 올라갈 거예요.]

【기사요?】

[네. 그래도 영업을 개시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최소한 오픈했다는 사실 정도는 주변에 알려야 입소문이 나지 않겠어요?]

푸드 체인 테스트 때도 그랬듯 이번에도 역시 아는 기자들을 동원해 태주의 해외 활동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작정이었다.

물론 승화가 진짜 원하는 그림은 국내 언론에서 시작된 태주의 소식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것이었지만.

[아마 내일부터 메일이랑 쪽지가 폭발할걸요? 전 이제 밤잠은 다 잤어요. ㅠㅠ]

태주의 개인 정보가 아닌 자신의 업무용 연락처와 메일 주소를 등록해 둔 승화였다.

특히 빅 사이닝 내에서 보낼 수 있는 다이렉트 메시지에 답변하는 것 역시 태주의 프로필을 관리하고 있는 승화의 몫이었는데, 아무래도 시차가 제각각인 해외 길드를 주로 상대해야 되다 보니 워라밸적인 부분은 잠시 잊고 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계약을 하려고 등록한 건 아니니까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무엇보다 매니저님의 건강이 중요하니까 아예 연락이나 확인이 가능한 시간을 정해서 제 프로필에 올려 두시고요.】

태주와 파트너십을 맺은 승화는 졸업할 때까지 이어져야 할 이번 장기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대체할 이가 없는 상황에서 먼저 지쳐버릴 경우 해외 길드와의 소통 자체가 단절되는 치명적인 리스크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태주는 승화가 겪게 될 앞으로의 고충을 헤아리며 상대방의 일방적인 문의에 융통성 있게 대응할 것을 당부했다.

[역시 제 생각을 해 주시는 건 태주 씨밖에 없네요. ㅠㅠ 안 그래도 찔러보기만 하는 길드도 많을 것 같아서 태주 씨가 말한 대로 업무 시간을 적어 둘 생각이었는데.]

이미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승화가 태주의 속 깊은 배려에 큰 감동을 받았다.

[아, 그건 그렇고 여권 문제는 어떻게 됐어요?]

태주가 국제헌터협회 아시아 지부의 최연주 이사에게 특별 여권의 예외적인 발급을 부탁한 사실을 알고 있는 승화가 본부의 승인 여부에 대해 물었다.

【아직 별다른 연락은 못 받았어요.】

태주의 요구 사항은 이미 스위스에 있는 협회 본부에 전달된 상황이었지만, 새로운 선례를 남길 수 있는 이례적인 요청인 만큼 발급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이라 여기며 느긋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물론 여전히 소식이 없는 건 피크닉 테이블의 가입 메일도 마찬가지였지만.

[아, 그래요? 그럼 연락이 오는 대로 어떻게 됐는지 좀 알려 주세요. 특히나 요즘처럼 특수 비자를 받기 까다로운 시대엔 국제헌터협회에서 발급한 특별 여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신뢰감을 줄 수 있거든요.]

한국 국적의 헌터가 다른 나라의 길드에 취업하기 위해선 해당 국가의 특수 비자를 받아야 했는데, 특별 여권의 경우 여행 금지 국가를 비롯한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의 출입국을 무비자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체류 기간까지 제한받지 않는 그야말로 프리 패스의 결정체였기 때문에 특수 비자를 발급하는 쪽에서도 검증을 간소화하는 것이 당연했다.

[어! 지금 막 기사를 올렸다는 톡이 왔는데, 아무래도 전 컨택이 밀려들기 전에 업무 시간부터 추가해야겠어요. 그럼 공유할 이슈가 있으면 또 연락할게요.]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 승화가 태주와의 대화를 황급히 마무리 지었다.

【네. 그럼 저도 여권 신청 결과가 나오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승화와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공장 입구를 나서게 된 태주였다.

*

*

*

다음 날 오후.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새벽같이 사체 처리장을 찾은 태주는 쉬는 시간을 포함해 거의 12시간 동안 저장 탱크의 모서리에 앉아 발을 담그고 있었다.

‘슬슬 빼 볼까?’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태주가 액체 속에 담겨 있던 두 발을 평행하게 들어 올려 사역 요건의 충족도를 확인했다.

▶‘전장의 피를 탐식하는 포식자의 흡혈 장화’의 사역 요건 충족도 (99/100)

‘어? 이제 거의 다 됐다.’

특히 사역 요건의 충족도가 97을 넘어선 시점부터는 그 확인의 빈도가 급격히 늘어났는데, 이는 모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했지만, 최악의 경우 100이 되는 순간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자신은 물론 사체 처리장과 그 안에 속한 수백 명의 직원들을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먹여 볼까?’

태주는 이미 이곳에 발을 담근 상태로 약 6분에서 7분이 흘러야 1퍼센트가 올라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참방!

5분 정도는 괜찮다고 여긴 태주가 두 발을 다시 일렁이는 액체 속에 담갔다.

▶ 장화의 갈증이 조금 해소되었습니다.

그리곤 인벤토리를 열어 말통이라고도 불리는 20리터짜리 대형 생수통을 꺼내 들었다.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몬스터의 피를 담아 가는 용도였는데, 조금 번거롭긴 해도, 자신이 원하는 안전한 장소에서 100퍼센트를 달성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 6통 정도만 받아 가면 되겠지?’

마치 약수터에 온 듯 여러 개의 통을 미리 준비한 태주가 접촉한 사물의 투명화 능력이 풀리지 않도록 왼손엔 마개를 오른손엔 생수통의 손잡이를 야무지게 움켜쥐었다.

꾸르륵! 꾸르르르!

빈 생수통을 액체 속에 집어넣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기포들이 올라왔다.

*

*

*

잠시 후.

과학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침입 사실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게 확실히 뒷정리를 하고 나온 태주가 사체 처리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폐창고로 자리를 옮겼다.

‘자정이 다 된 시각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훨씬 어둡네.’

깨진 유리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어스름한 달빛에 의존하기엔 밤이 너무 깊었다.

드르르르르!

폐창고 구석에 버려진 소각용 드럼통을 중앙으로 끌고 온 태주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각목 몇 개를 땔감처럼 집어넣었다.

▶ 파이어 애로우[F]를 선택하셨습니다.

활을 꺼내든 태주가 드럼통 안에 얼기설기 세워둔 각목을 향해 화살 한 발을 발사했다.

쉬이익! 탁! 화르르!

마나의 힘으로 생성된 불꽃이라 별도의 불쏘시개가 없어도 순식간에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일단 밝기는 이 정도면 됐고.’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활을 거둔 태주가 이번엔 몬스터의 피가 가득 담긴 대형 생수통 여섯 개와 커다란 아이스박스 하나, 그리고 이번 의식의 주인공인 재앙 등급의 부츠를 꺼내 바닥에 내려놨다.

‘혹시 모르니까 만반의 준비를 하자.’

▶ 스킬 『폭주』가 발동되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능력치부터 극대화시킨 태주가 아이스박스의 뚜껑을 열어 몬스터의 피를 채우기 시작했다.

콸콸콸콸!

최대 용량을 고려해 3통만 우선적으로 채운 태주가 경건한 마음으로 신발을 갈아 신은 뒤 아이스박스 안으로 들어섰다.

▶ 장화의 갈증이 조금 해소되었습니다.

꾸준한 공급으로 인해 줄어드는 티가 나지 않았던 저장 탱크와는 달리, 아이스박스 안에 든 몬스터의 피는 빠른 속도로 바닥을 드러냈다.

‘뭐야, 벌써 다 마셨어?’

부츠의 게걸스러운 식사 속도에 헛웃음이 나온 태주가 남은 3통의 피마저 남김없이 채워 넣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시도.

먹성 좋은 부츠의 흡혈 속도는 여전히 지칠 줄을 몰랐고, 드럼통 속 땔감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듯 피가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던 태주의 속도 적잖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제발 여러 번 움직이게 하지 마라.’

사체 처리장으로 돌아가기 귀찮았던 태주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눈치 없는 부츠는 컵에 든 내용물을 빨대로 남김없이 빨아들이는 듯한 탐욕스러운 소리를 내며 아이스박스의 바닥을 다시 한번 드러나게 만들었다.

쓰으으으읍!

“하아. 통을 몇 개 더 챙겨 올 걸 그랬나?”

준비성이 부족했다고 여긴 태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던 바로 그때.

▶‘전장의 피를 탐식하는 포식자의 흡혈 장화’의 사역 요건 충족도 (100/100)

아이스박스를 벗어난 태주의 눈앞에 그토록 기다리던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 장화의 갈증이 완전히 해소되었습니다.”▶ 사역 요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아티팩트에 걸린 저주가 그 힘을 상실하였습니다.

“어! 됐다!”

순간, 태주의 육체와 정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부츠의 저주가 한순간에 풀렸다.

▶ 아티팩트에 부착된 버프와 기타 옵션이 공개되었습니다.

“……?!”

메시지를 읽어 나가던 태주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물음표 상태로 남아 있던 부츠의 히든 스펙이 그간의 고생을 모두 잊게 해줄 만큼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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