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사역 요건 (4)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자세를 고쳐 앉은 태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제가 예전에 데리고 있던 녀석 하나가 얼마 전에 큰 사고를 쳐서 교도소에 갔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염 기사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아아, 네. 전 또 기사님께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 줄 알고.”
“아이고, 이거 제가 괜한 소리로 오해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염 기사가 태주의 반응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니요. 오히려 기사님의 문제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꼿꼿했던 태주의 등이 다시 아치를 그리며 시트에 붙었다.
“그나저나 상심이 크신 것 같은데,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겁니까?”
태주가 룸미러에 비친 염 기사의 어두운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하아.”
한숨으로 운을 뗀 염 기사의 이야기는 재룡을 만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사실 이 운전대를 잡기 전까진 그리드(Greed)라는 이름의 머니 길드를 운영했습니다.”
“네. 3차 각성에 성공한 S급 전사이자 머니 길드의 수장이었다는 것까진 재룡이에게 들었습니다. 물론 길드의 이름이나 그밖에 행적에 대해선 전혀 들은 바가 없고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머니 길드가 어떠한 곳인지도 잘 아시겠네요.”
“네. 헌터의 주업인 레이드 이외에 돈이 되는 일이라면, 위험하고 무모한, 심지어 불법적인 의뢰까지 마다하지 않는 음성적인 길드라 알고 있습니다. 물론 폭발물의 파편을 온몸으로 막아내면서까지 재룡이를 구해주신 것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었지만.”
“네. 맞습니다. 부끄럽지만, 목숨이 열 개라도 되는 것처럼 살았던 제 인생 최고의 암흑기였죠.”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염 기사가 회한에 젖은 눈으로 차분하게 수긍했다.
“아무튼 그 당시, 나재형이라는 녀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2차 각성에 성공한 A급 무투가였는데, 별명이 벌꿀오소리였죠.”
“네? 벌꿀오소리요?”
동물의 생김새는커녕 이름조차 생소했던 태주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네. 세상에서 가장 겁이 없는 동물이 벌꿀오소리거든요. 사자에게 덤빌 만큼 아주 답이 없는 녀석이죠.”
“그럼 교도소에 갈 정도로 큰 사고를 치게 된 원인이 그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네. 2차 각성에 성공한 A급 무투가 주제에 5차 각성에 성공한 S급 법사의 목숨을 노렸으니 누가 봐도 겁대가리를 상실한 상황이죠. 마치 사자에게 덤비는 벌꿀오소리처럼.”
“어? 그건 암살의 성공 여부를 떠나 명백한 살인 미수 행위 아닙니까?”
“주된 죄목은 그렇다더군요. 뭐, 개인적인 원한이 아닌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저지른 일이라 교사범 역시 동일한 처벌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사주요? 그럼 혹시 기사님이 만든 머니 길드가 지금까지…….”
“아니요. 길드는 제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해체됐습니다. 녀석은 특정한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채 개별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고요.”
“길드를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었네요.”
“머니 길드가 괜히 머니 길드겠습니까. 돈맛에 길들여지는 순간, 정직하고 느리게 버는 돈이 하찮게 느껴지는 거죠. 그 돈에 목숨 값이 포함되어 있는 줄도 모르고. 쯧쯧.”
염 기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기사님께선 그 유혹을 이겨내셨잖아요. 이렇게 10년 넘게 다른 일을 하시는 것도 그렇고, 부르는 게 값인 아티팩트까지 선뜻 내어주신 것도 그렇고.”
“각성자든 비각성자든 사람의 목숨은 결국 하나고, 인생도 단 한 번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으니까요.”
“네? 아, 네. 그렇죠.”
2회차 인생을 살고 있는 태주가 목숨이 열 개인 것처럼 살아왔던 염 기사의 자조적인 성찰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공감했다.
“저, 근데 암살 대상이 누구였는지도 알고 계세요? 5차 각성에 성공한 S급 법사면 이름이라도 들어 봤을 것 같아서요.”
“알다마다요. 아, 물론 태주 씨께서도 잘 알고 있는 분입니다.”
“네? 제가요?”
염 기사의 대답을 듣는 순간, 자신과 안면이 있으면서 클래스와 각성 수준까지 일치하는 두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한국대학교의 최지문 총장과 태동 길드의 오승훈 대표.
“네. 국내 최대 규모의 아티팩트 제작 업체인 마스터 앤 피스의 노형래 대표가 녀석의 목표물이었습니다. 피크닉의 회원인 태주 씨에겐 그야말로 까마득한 선배님이시죠.”
“……?!”
피해자의 정체를 알게 된 태주가 두 귀를 의심했다.
“아아, 노형래 대표님이요. 직접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어떠한 분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예전에 한번 마주친 기억이 있는데.”
“예전에요?”
“네. 도련님의 납치 사건을 무마시킬 목적으로 저희 대표님을 만난 피크닉의 중진들 중 한 명이었거든요.”
“……?!”
놀랍게도 피크닉의 2대 회장인 노형래 대표는 퍼스트 에이드를 통해 얻은 백승걸의 그릇된 면죄부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아, 물론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운전기사에 불과한 전 협상의 내용에 대해 정확히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저 접선 장소인 폐공장으로 들어서는 참석자들의 얼굴만 우연히 확인했을 뿐이지.”
공장 밖에 차를 세워둔 채 운전석을 지키고 있던 염 기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노형래 대표의 예리한 눈빛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 이번 사건에 대해 만감이 교차하셨겠네요. 가뜩이나 기사님께선 피크닉에 대해 안 좋은 기억만 가지고 계신데.”
“그런 마음이 조금도 안 들었다고는 못하겠죠. 하지만, 개인적인 원한을 이유로 납치를 사주한 것에 대해선 분노하고, 암살을 교사한 것에 대해선 기뻐한다면, 제 식구만 싸고도는 그들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역시 유혹을 이겨내신 분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태주가 염 기사의 솔직하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이성적인 답변에 경의를 표했다.
“그나저나 누가, 그리고 왜 암살을 교사한 겁니까?”
“범인은 도련님 때와 마찬가지로 경쟁 업체의 대표였습니다. 마스터 앤 피스의 독과점 체제에 불만을 품은 나머지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거죠.”
“늘 그놈의 경쟁 업체가 문제네요.”
태주의 입술 사이로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될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사건이 언론에 조명된 적이 있나요? 그 벌꿀오소리라는 사람이 수감된 시점이 최근이면, 업계에서도 꽤나 떠들썩했을 것 같은데.”
범죄의 형태와 피해자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봤을 땐 포털 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적인 기삿거리였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회귀자인 태주마저 해당 사건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미수라서 그런 건 아니겠죠?”
“아니요. 저도 유민정 대표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겁니다.”
“유민정 대표님이면, 그 클로버 컨테이너의…….”
“네. 사무실 안에만 있는 것 같아도 정보력 하나는 아주 끝내주는 친구죠.”
태주에게도 클로버 퀸을 모티브로 한 플레잉 카드 형태의 명함을 건네며 찾고 싶은 사람이나 뒷조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 했던 범상치 않은 영업력의 소유자가 바로 유 대표였다.
“아무튼 이번에도 피크닉에서 힘을 썼는지 경찰의 수사 과정이나 기존의 재판 절차를 모두 생략한 채 바로 교도소로 직행시킨 것이라 하더군요. 결국 암살을 교사했던 경쟁 업체의 대표는 회사 전체를 마스터 앤 피스에 넘긴 뒤 대한민국을 떠나는 조건으로 목숨을 부지했고, 나재형 그 녀석은 교사가 아닌 단독 범행으로 결론짓는 조건으로, 다시 말해, 혼자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는 조건으로 감형을 약속받은 뒤 살리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중이죠.”
“네? 살리도 교도소요?”
태주가 나재형의 수감 장소에 관심을 보였다.
과팅의 파트너였던 윤나리의 아버지가 근무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1학년 2학기에 있을 살리도 교도소에서의 현장 학습 시간에 마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기 때문이다.
“네. 범죄를 저지른 각성자들 중 가장 죄질이 무거운 녀석들만 모아둔 곳이죠. 물론 그놈 성격에 조용히 형기나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심란한 기색을 내비치며 고개를 가로젓던 염 기사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아, 저 앞에 줄지어 가는 트럭들이 보이십니까? 저게 바로 몬스터들의 사체를 운반하는 초대형 트레일러들입니다.”
“네, 정말 장관이 따로 없네요.”
차량의 행렬을 지켜보던 태주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
*
*
잠시 후.
“안녕하세요.”
사체 처리장에 도착한 태주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하 대표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오오, 그래. 어서 오너라.”
아들인 재룡이 못지않게 태주에게 커다란 마음의 빚을 진 하 대표가 입구에 들어서기 무섭게 반색을 하며 맞이했다.
“어? 근데 재룡이가 안 보이네요?”
태주가 주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 좀 전에 수거를 나간 트럭들이 돌아와서 집하장 쪽에 보내 놨단다. 사실 전문가의 수준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명색이 삼강의 후계자라면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기본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되거든.”
“아, 네. 일종의 경영 수업인 셈이네요.”
“하하. 역시 이해가 빠르구나.”
태주의 모든 것이 호감으로 느껴지는 하 대표가 특별할 것 없는 대답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 우리도 슬슬 집하장 쪽으로 이동하자꾸나. 내 오늘 특별히 너의 일일 가이드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
태주의 목적이 단순한 견학이라고만 알고 있는 하 대표가 의욕적인 걸음으로 재룡이 있는 곳까지 앞장섰다.
*
*
*
잠시 후.
화해를 주선한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이 관리자 전용 출입구를 통해 집하장 안으로 들어섰다.
“와아, 집하장의 면적이 어마어마하네요. 일하시는 분들도 많고.”
수십 대의 대형 트레일러와 그 안에 실린 몬스터들을 나르고 있는 수백 명의 직원들.
삼강과 채굴권 계약을 맺은 길드가 한두 곳이 아닐뿐더러 게이트의 생성 위치 또한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져 있다 보니 집하장 안은 늘 전국 각지에서 수거한 일거리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네. 거의 모든 직원들이 비각성자지만, 웬만한 헌터들은 명함도 못 내밀 만큼 다양한 몬스터들을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죠.”
회귀 전의 태주처럼 각성 등급이 낮은 헌터들의 경우 상급 게이트에서만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사체를 보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 정말 한눈에 보기에도…….”
태주가 자부심이 느껴지는 하 대표의 설명에 맞장구를 치려던 바로 그때.
- “피해!”
작업복을 입은 이름 모를 사내가 주위에 있던 동료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위험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