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230화 (230/242)

230. 하극상 (3)

“컥!”

태주의 손바닥이 흉부를 압박하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얼굴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성규가 화염 효과에 놀랐을 때처럼 꼴사납게 나자빠졌다.

쿵!

- “……?!”

학생들의 시선이 일순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성규를 향했다.

- “야, 성규야, 너 갑자기 왜 그래?”

한 동기가 엉덩방아의 이유를 물었다.

“어? 어, 그냥 발이 좀 꼬였어. 신경 쓰지 마.”

차마 태주의 힘에 밀려 넘어진 것이라 얘기할 수 없었던 성규가 황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넌 무조건 검은색 별이다.”

가슴팍을 매만지던 성규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나지막이 경고했다.

“뭐, 언제는 흰색이었어요?”

태주가 코웃음을 쳤다.

- “1분 뒤 진입합니다! 다들 입구 쪽으로 모여 주세요!”

인원 체크를 마친 조교가 두 손을 입 앞에 모아 확성기처럼 만든 뒤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태주가 인벤토리에 보관 중이던 활을 꺼내 들었다.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성능이나 등급만 놓고 봤을 땐 썬더 드래곤의 뿔로 만든 전격의 활이 더 우수했지만, 태주의 선택은 고뇌하는 하급 정령의 활이었다.

푸드 체인 테스트 당시, 대선배인 노형래 대표와의 관계를 고려해 마스터 앤 피스의 활을 사용했듯 던전 실습에선 이 교수가 선물한 활로 레이드를 진행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 아직 등에 번호표 안 붙인 인원 있으면 옆 사람들이 좀 도와줘. 비밀 평가지는 나와서 작성하는 걸로 바꿨으니까 누굴 적을지 다들 신중하게 생각해 두고.”

게이트를 등지고 선 이 교수가 학생들에게 마지막 주의 사항을 전달했다.

- “네!”

장비를 점검하고 있던 학생들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합창을 하듯 대답했다.

“좋아. 그럼 지금 이 모습을 시험이 끝날 때까지 유지해 주길 바란다. 1번부터 20번까지 입장.”

- “입장!”

힘차게 복명복창을 한 스무 명의 학생들이 조교의 안내에 따라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스티커 줘. 내가 붙여줄 테니까.”

23번을 달고 나타난 민주엽이 태주의 오른손에 들린 스티커를 낚아채며 말했다.

“설마 오늘도 공동 1등은 아니겠지?”

태주의 등에 번호표를 부착하던 주엽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모의 던전에서 이루어진 첫 번째 맞대결에서 공동 1등이 나온 이후 비밀 평가 방식을 기반으로 한 동기들의 주관적인 평가가 매시간 이어졌는데, 그때마다 공동 1등이라는 이례적인 결과가 심심치 않게 나오곤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통계라 보긴 어려웠지만.

“글쎄요. 실전엔 워낙 변수가 많다고 해서.”

“뭐, 그렇긴 하지. 자, 다 붙였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근데 오늘은 진짜 제대로 해 볼 생각인가 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마력이, 우와, 아주 어마어마한데?”

스티커를 부착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마력을 느낀 주엽이 폭주 스킬을 발동 중인 태주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21번부터 40번까지 입장.”

20번까지 들어간 것을 확인한 이 교수가 다음 순번을 불렀다.

“어? 우리 차례네?”

23번인 주엽이 게이트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진짜 던전은 처음이지?”

“네.”

“저기 보이는 저 소용돌이처럼 생긴 게이트를 통과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28번인 태주와 나란히 걷고 있던 주엽이 마력을 방출하고 있는 거대한 던전의 입구를 턱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모의 던전의 기술력이 아무리 훌륭해도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지.”

주엽의 말대로 던전의 형태와 몬스터의 외형은 구현할 수 있어도 고글이 아닌 육안으로 마주하는 이세계의 현장감을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E급이라고 무시하면 안 돼. E급이어도 던전은 던전이고, 몬스터는 몬스터니까.”

“무시한 적 없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어느덧 입구까지 다다른 두 사람이 게이트 안으로 동시에 발을 들였다.

‘으음?’

순간, 봄바람이 스치던 태주의 얼굴에 매서운 한기가 전해졌다.

‘얼음 동굴?’

뽀드득 눈을 밟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숨을 들이마시자 폐까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와아, 춥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패딩이라도 하나 입고 오는 건데. 너는 안 추워?”

어깨를 잔뜩 움츠린 주엽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네. 아직까진 견딜 만합니다.”

웨더 트레이닝 센터에서의 신고식 당시,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놓인 듯한 극한의 추위 속에서도 멀쩡하게 살아남은 태주였다.

물론 인내심이 아닌 저항 스킬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지만.

“그나저나 내부 사정이 이러면 좀 미리미리 말씀해 주시지.”

몸에 열을 내기 위해 제자리 뛰기를 시작한 주엽이 던전의 유형에 대해 언질을 주지 않은 이 교수의 의도적인 침묵에 불만을 토로했다.

게이트가 생성되면 협회에서 파견된 인원이 먼저 등급을 측정하고, 내부 조사를 하는 것이 순서였는데, 지금처럼 던전 안에서 시험이 치러질 경우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교수와 조교들의 사전 답사 과정이 추가되곤 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112명에 이르는 거대한 무리가 게이트 안으로의 진입을 완료했다.

“자, 그럼 천천히 한번 가 보자.”

10명의 조교들과 함께 학생들 틈에 섞여 있던 이 교수의 입에서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 “네!”

함성에 가까운 학생들의 대답이 얼음 동굴 안에 메아리쳤다.

파다다닥!

침입자들의 요란한 인기척을 감지한 얼음 박쥐 한 마리가 학생들을 향해 나아들었다.

크기는 비둘기 정도였지만, 날개의 길이는 두 배 더 길었다.

특히, 날카로운 송곳니가 인상적이었는데, 다행히 E급 게이트에서 조우한 만큼 위협적인 공격력을 지닌 건 아니었다.

“야, 누가 잡을래?”

얼음 박쥐를 발견한 주엽이 여유를 부리며 사냥의 기회를 양보했다.

“저런 비행형 몬스터는 당연히 원딜이 잡아야지.”

주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궁수인 박성규가 자신 있게 활을 쳐들었다.

‘오오, 초반부터 달리시려고?’

박성규의 마수걸이를 보고만 있을 리 없는 태주가 재빨리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렇게는 안 되지.’

▶ 스킬 『도발』이 발동되었습니다.

박성규가 조준을 마치고 활시위를 놓기 전, 앞줄에 있던 선배 한 명의 뒤통수를 3초간 응시한 것이다.

쉬이익!

성규가 쏜 화살이 얼음 박쥐를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파다다닥!

“……?!”

명중을 자신했던 성규가 화살을 피한 얼음 박쥐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도발 스킬의 어그로에 끌린 얼음 박쥐가 급커브를 돌 듯 태주가 지정한 목표물을 향해 몸을 비틀었기 때문이다.

팍!

체이싱 애로우와 같은 유도 기능이 없는 성규의 화살이 얼음 동굴의 천장에 단단히 박혔다.

- “어! 뭐야 이거!”

슈아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그로를 끈 전사 클래스의 선배 한 명이 갑자기 돌진하는 얼음 박쥐를 단칼에 제거했다.

- “아아, 박성규 뭐야. 저런 비행형 몬스터는 원딜이 잡아야 된다며.”

- “그러게. 이거 시작부터 김이 팍 새는데?”

- “번호대로 칠칠치 못하네. 아주 실망스러워.”

- “야, 저 정도 움직임은 당연히 예측했어야지.”

성규가 초보적인 실수를 범했다고 여긴 동기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스슥. 슥슥.

예리한 눈빛으로 학생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조교들의 손놀림이 성규의 오발로 분주해졌다.

‘감점은 확정이네.’

성규의 실수를 유도하는 데 성공한 태주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이런 씨.”

활을 내린 성규가 짜증 섞인 얼굴로 바닥에 깔린 눈을 걷어찼다.

물론 그러한 분풀이 또한 동료들의 사기를 저해하는 하나의 감점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지만.

파다다닥!

동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수십 마리의 얼음 박쥐들이 성규의 화살이 박힐 때 발생한 미세한 진동에 놀라 공중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다들 몸 좀 풀자.”

단검을 꺼내든 주엽이 가벼운 교전을 예고하며 자세를 낮췄다.

▶ 파이어 애로우[F]를 선택하셨습니다.

본격적인 전투태세에 돌입한 태주 역시 얼음 속성에 상성을 지닌 불 속성의 화살을 장착했다.

‘자, 그럼 그림 좀 만들어 볼까?’

태주가 호기롭게 돌진하던 근거리 딜러들 중 무투가인 장세종의 뒤통수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 스킬 『도발』이 발동되었습니다.

강제적인 어그로가 집중되자 별다른 적의 없이 날갯짓을 하고 있던 얼음 박쥐들의 머리가 장세종을 향해 저절로 돌아갔다.

파다다닥!

수십 마리의 박쥐들이 날아들자 한 마리일 땐 느끼지 못했던 위압감과 공포감이 세종의 움직임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이것들이 미쳤나!”

퍽! 퍽!

선두에 있던 두 마리의 얼음 박쥐는 너클을 낀 주먹으로 어찌어찌 처리했지만, 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 수십 마리에 달하는 몬스터들을 혼자서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바로 그때.

▶ 스킬 『도발』이 해제되었습니다.

박쥐들에게 에워싸인 장세종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 태주가 장학생 레벨의 상승으로 추가된 도발 스킬의 해제 기능을 발동시켰다.

파다다닥!

무리하게 뒤엉켜있던 얼음 박쥐들이 어그로가 풀림과 동시에 공중으로 솟구쳤다.

‘지금이다!’

역시나 장학생 레벨의 상승으로 줄어든 화염 효과의 차징 시간을 신속하게 채운 태주가 동굴 벽을 구름판 삼아 선배들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쉬이익!

태주의 손끝을 떠난 화살이 거대한 불기둥을 일으키며 박쥐 떼를 향해 날아갔다.

화르르!

화염에 휩쓸린 수십 마리의 얼음 박쥐가 속절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됐어!’

무모한 돌진과 미흡한 대처라는 두 가지 감점 요소를 세종에게 선물한 태주가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감점법의 특성상 추가 점수를 받을 순 없었지만, 속성 공격을 활용해 멀티 킬을 달성했다는 점과 위기에 처한 공대원을 구했다는 인상만 심어줄 수 있다면, 레이드 종료 후에 있을 동료들의 비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기대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우와.”

태주의 활약에 놀란 선배들이 일제히 탄성을 내뱉었다.

- “박쥐들을 싹 다 쓸어버렸는데?”

- “어떻게 된 게 땅에서 조준한 성규보다 공중에서 조준한 태주가 더 낫네.”

- “준 프로도 저런 식으로 딴 건가? 완전 일당백인데?”

태주에 대한 찬사가 이어질수록 성규와 세종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물론 정신적으로만 흔들린 박성규보다 물리적인 대미지까지 입은 장세종의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었지만.

“야, 힐 안 쓰고 뭐 하냐?”

초반부터 만신창이가 된 세종이 근처에 있던 힐러에게 버럭 화를 냈다.

스슥. 슥슥.

그 모습이 좋게 보일 리 없는 조교들의 손놀림이 다시 한번 분주해졌다.

‘이제 민주엽만 삐끗하면 된다.’

자신에게 검은색 별로만 복수할 수 있는 속 좁은 선배 두 명을 가볍게 처리한 태주가 이번 레이드의 마지막 걸림돌인 주엽을 노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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