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211화 (211/242)

211. 레벨 테스트 (4)

“불안하지 않으세요?”

조 중장의 초조한 시선을 느낀 태주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솔직한 심정을 물었다.

“제가 여기서 실패하면 아드님의 핑곗거리가 모두 합리화되는 건데.”

“네. 불안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근데 왜 지금이라도 안 말리세요?”

“하하. 그걸 몰라서 물으십니까? 앞으로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절대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약속. 그 불합리한 약속이 마음에 걸려서 꾹 참고 있는 겁니다.”

태주의 질문에 헛웃음으로 입을 연 조 중장이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은 이유를 숨김없이 밝혔다.

“불합리한 약속이라…….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그 ‘불합리한’이란 수식어를 걷어낼 수 있을까요?”

▶ 체이싱 애로우[C]를 선택하셨습니다.

정밀 타격에 최적화된 유도 화살을 고른 태주가 현웅으로부터 빌린 활을 세움과 동시에 활시위를 당겼다.

“……?!”

모두가 그랬듯 조 중장 역시 빈 활시위에 나타난 화살의 특별한 장전 방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눈앞에 놓인 미션을 퍼펙트하게 완수하는 수밖에 없겠죠?”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차분한 눈빛과 안정된 목소리.

유일한 타개책을 알고 있는 태주가 조 중장에게 머물러 있던 시선을 정면으로 옮기며 묵직한 콜 사인을 보냈다.

“고!”

그러자 부스에 앉아 태주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던 현웅이 똑같은 실수를 바라는 마음으로 힘차게 발사 버튼을 눌렀다.

팟!

첫 번째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공중으로 솟구친 피전이 향한 곳은 정면이 아닌 좌측 45도 각도였다.

‘시작부터 티를 많이 내네.’

강타자를 상대로 절대 좋은 공을 주지 않겠다는 투수의 결연한 의지처럼 현웅이 던진 초구 역시 무난한 코스로 날아가진 않았다.

물론 직구가 아닌 변화구마저 담장 위로 넘겨 버리는 것이 모두에게 인정받는 진정한 강타자였지만.

쉬이익!

목표물에 대한 조준을 순식간에 마친 태주가 첫 번째 화살을 주저 없이 발사했다.

팍!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오렌지색 접시가 태주의 화살에 속절없이 부서졌다.

‘그렇지.’

축포처럼 허공에 흩날리는 핑크색 가루들.

“……?!”

부자간의 희비는 태주의 성공으로 인해 엇갈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태주의 활솜씨에 놀란 조 씨 부자의 표정은 두 사람의 생김새만큼이나 닮아 있었다.

“고!”

성공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심지어 명중을 알리는 핑크색 가루들이 바람에 실려 자취를 감추기도 전에 태주의 입에선 두 번째 콜 사인이 떨어졌다.

팟!

어안이 벙벙해진 현웅의 일시적인 집중력 저하로 인해 두 번째 접시는 한 박자 늦게 하늘로 비상했다.

‘벌써 흔들리면 어떡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버튼을 누르는 타이밍만으로도 현웅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간파한 태주가 우측으로 뻗어 나가는 접시를 향해 다시 한번 활시위를 놓았다.

쉬이익! 팍!

“와아.”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체이싱 애로우의 위력이 또 한 번 빛을 발하자 막연한 불안감을 드러냈던 조 중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태주의 연이은 성공에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물론 태주의 실수를 바라는 현웅은 다른 의미의 탄성을 내뱉고 있었지만.

“와아. 저걸 맞힌다고?”

같은 시각, 부스 안에 홀로 앉아 손가락만 까딱거리고 있던 현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만 나타나는 전형적인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패를 합리화를 위해 허락한 태주의 시범이 성공으로 끝날 경우 단순한 판단 미스를 떠나 자신의 꼴 자체가 우스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활의 성능과 경험의 유무를 핑곗거리로 삼은 현웅의 입장에선 이 모든 테스트가 동일한 조건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굴욕으로 다가왔다.

“어떡하지? 뭔가 변수를 만들어야 되는데…….”

방향 전환만으로는 태주의 실수를 유도할 수 없다고 판단한 현웅이 다시금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마치 어떻게 해서든 태주를 죽이려 했던 함 교수의 집요한 모습처럼.

“아직도 불안하세요?”

초조함을 감출 수 없던 조 중장의 눈빛이 놀라움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낀 태주가 똑같은 질문으로 심경의 변화를 확인했다.

“네. 불안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태주의 예상과 달리 조 중장의 대답은 처음과 비교해 토씨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아까는 선생님이 실패할까 불안하고, 저 녀석이 다시 기고만장해질까 불안했는데, 지금은 저 녀석이 아예 훈련의 의욕을 잃을까 불안합니다. 아무리 봐도 선생님의 실력이 노력으로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아서요.”

물론 대답만 동일할 뿐, 초조함의 이유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지만.

“근데 왜 지금이라도 안 말리세요?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아드님의 자괴감만 커질 텐데.”

“하하. 진짜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태주와의 대화가 수미상관법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조 중장이 장단을 맞추듯 흥미롭게 문답을 이어갔다.

“청출어람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옛말에 근묵자흑, 근주자적이라고, 이렇게 실력 있는 분 밑에서 꾸준히 배우다 보면, 적어도 선생님의 반, 아니, 반의반이라도 닮아 있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자괴감이 들 만큼 출중한 실력도 아니지만, 설령 자존심이 상한다고 해도 그게 배움의 과정이라면, 천 번 만 번이라도 깨져야죠.”

이번 과외의 주선자 역할을 맡은 류정웅이 그랬듯 조용욱 중장 역시 태주를 가까이하고 싶은 근본적인 이유를 가감 없이 밝혔다.

“그러니 앞으로도 선생님 마음대로 하시되 부디 저 부족한 녀석만 잘 좀 지도해 주십쇼.”

하나를 보면 열을 알 듯 단 두 발의 화살로 모든 의심을 거둔 조 중장이 태주의 의도대로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자식의 교육을 부탁했다.

“어? 그럼 이제‘불합리한’이란 수식어도 사용하지 않으실 겁니까?”

“어휴, 그럼요, 그럼요. 안 그래도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후회하고 있었는데, 이제라도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어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태주의 물음에 황급히 손사래를 친 조 중장이 본인의 말실수를 뒤늦게 인정하던 바로 그때.

덜컥!

“그만 하실 거예요?”

세 번째 콜 사인을 기다리다 지친 현웅이 부스의 문을 활짝 열며 태주를 향해 소리쳤다.

“아니.”

“그럼 10발을 다 채우실 거예요?”

“어.”

“근데 혹시 한 번에 두 개도 맞힐 수 있으세요?”

패배가 확정된 현웅이 고민 끝에 찾아낸 작전은 변칙적인 규칙을 추가해 태주의 인간적인 면을 이끌어 내는, 다시 말해, S급 매직 아처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께 보여 주는 것이었다.

“뭐? 한 번에 두 개를?”

현웅의 뜬금없는 제안이 순수하게 들리진 않았던 태주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되물었다.

“네. 그냥 이런 것도 하실 수 있나 궁금해서요.”

“글쎄. 따로 해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상대방의 의도를 곰곰이 헤아려 보던 태주가 만약을 대비해 무모한 자신감을 드러내진 않았다.

‘으음. 지금 내 한계를 시험해 보려는 건가? 선생님도 완벽하진 않다는 걸 아버지께 보여주려고?’

체이싱 애로우의 성능이 뛰어나긴 하지만, 접시가 슈터로부터 멀어지는 속도가 워낙 빨라 여러 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노릴 경우 두 번째 표적부터 조준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 줘야지.’

물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익숙한 태주에겐 반항기 가득한 현웅을 실력으로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그럼 재미 삼아 한번 해보세요. 어차피 승부도 다 결정 난 마당에.”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이번엔 단순한 이벤트성 도전임을 강조하며 태주의 승낙을 부추겼다.

“그래. 그럼 한번 해보지 뭐.”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태주가 못 이기는 척 현웅의 제안을 수락했다.

“어? 진짜요? 그럼 준비가 되는 대로 신호를 주세요.”

태주를 함정에 빠뜨리는데 성공했다고 착각한 현웅이 내적 환호성을 지르며 얼른 부스의 문을 닫았다.

“진짜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두 개를 연속으로 맞히는 건 총으로나 가능한 일 같은데.”

미션의 난이도가 높다는 것을 아는 조 중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태주의 의사를 재확인했다.

클레이 사격엔 이미 더블 트랩(Double Trap)이나 스키트(Skeet)처럼 두 개의 표적을 사용하는 종목이 있었지만, 검지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비해 활시위를 당겼다 놓는 건 더 많은 시간과 수고로움을 요했기 때문이다.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

조 중장의 현실적인 우려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태주가 대화를 위해 내리고 있던 활을 다시금 꼿꼿하게 세웠다.

“아버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더 궁금해지는데요? 정녕 활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불가능한 도전인지 아닌지.”

입가에 흥미로운 미소가 번진 태주가 정면을 노려보며 세 번째 콜 사인을 외쳤다.

“고!”

팟! 팟!

태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닥에서 솟구친 두 개의 접시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거리를 벌리며 날아갔다.

‘역시 쉽게 가는 법이 없네.’

하나라도 정면으로 발사됐다면 두 번째 표적을 조준하는 시간이 조금이나마 단축됐겠지만, 그마저도 허락하고 싶지 않았던 현웅의 선택은 매정하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표적 간의 거리가 가장 멀어질 왼쪽과 오른쪽이었다.

쉬이익!

하나는 포물선의 정점에 이르기 전에, 나머지 하나는 정점을 지나 하강 곡선을 그리는 타이밍에 공략하기로 마음먹은 태주가 가야금을 뜯듯 첫 발이 걸린 활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활의 방향을 수정하며 두 번째 활시위를 당겼다.

‘찍혔다.’

쉬이익!

연속 조준에 성공한 태주가 멀어질 대로 멀어진 두 번째 접시를 향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팍!

앞서 발사한 첫 번째 화살이 좌측으로 날아가던 접시를 시원하게 관통했다.

팍!

곧이어 불가능의 기준을 가려줄 두 번째 화살이 실패에 무게를 두고 있던 조 씨 부자의 예상과 우측으로 날아가던 접시 모두를 동시에 깨뜨렸다.

“와아아아!”

체면상 나지막한 탄성만 내뱉었던 조 중장이 보고도 믿기지 않는 발사 속도와 상식을 벗어난 정확도에 놀라 환호성을 지르던 바로 그때.

덜컥!

“우와아아아아!”

부스의 문을 열어젖히며 탈출하듯이 뛰쳐나온 현웅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태주의 실력에 탄복하며 더 큰 환호성을 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