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210화 (210/242)

210. 레벨 테스트 (3)

“네. 근데 아빠는 어디 가셨어요?”

현웅이 별장의 뒷문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잠깐 통화 좀 하고 오신대.”

“아, 네. 원래 업무상 전화가 좀 많이 와요.”

365일 비상근무 체제인 게이트작전사령부의 사령관을 맡고 있는 만큼 휴대폰은 늘 벨 소리를 최대한으로 키운 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 습관이 된 조 중장이었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은 어떤 활을 쓰세요?”

“나? 나야 뭐 이것저것 쓰고 있지.”

“와아, 역시 전공자는 다르구나. 활도 몇 개씩 있고. 이런 건 아예 안 쓰시죠?”

헌터학과의 환상에 약간은 젖어 있는 듯한 현웅이 자신의 평범한 활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안 쓰는 게 어디 있어. 화살만 나가면 다 쓰는 거지. 난 입시 때 이거보다 더 안 좋은 활로 시험 봤어.”

자신도 모르게 선배들의 화법이 나오긴 했지만, 실제로 태주가 사용했던 활은 현웅의 것보다 훨씬 저렴한 모델이었다.

물론 버프 하나 안 달린 활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뒤 수석까지 차지했다는 일화는 나중을 위해 아껴 두었지만.

“어? 진짜요? 제가 듣기론 궁수도 템빨이라 활에 돈을 아끼면 안 된다고 그러던데?”

햇수로 3년째 학원을 수강하고 있다 보니 귀동냥으로 배운 지식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쌓인 현웅이었다.

“동일한 실력이면 아무래도 버프가 많이 붙은 활을 쓰는 쪽이 유리하겠지. 몬스터도 빨리 잡을 수 있고. 근데.”

현웅의 말에 일정 부분 수긍했던 태주가 장비보다 먼저 갖춰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 주며 과외 선생님 다운 면모를 보였다.

“전설 등급의 활이 있어도 궁수의 기본기가 못 받쳐 주면,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어.”

“에이, 또 기본기 얘기에요? 저 기본기 탄탄해요.”

“진짜? 기본기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는 건 아니고?”

“네? 좁게요?”

“미리 말해두지만, 명중률만 높다고 해서 기본기가 탄탄한 게 아니야. 판단력이나 순발력, 그리고 위기 대처 능력처럼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야 비로소 궁수로서의 기본기가 탄탄하다고 볼 수 있는 거지.”

“예, 예. 명심하겠습니다요.”

물론 착각에서 깨어나지 못한 현웅의 귀엔 그 어떤 가르침도 잔소리처럼 여겨졌지만.

“아이고, 이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게 됐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조 중장이 조깅을 하듯 뛰어와 머쓱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은요. 저야 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리면 되는데.”

부스 안에 앉아 발사 버튼만 누르면 그만인 조 중장이 오른쪽 검지를 세워 보이며 태주와의 작전을 떠올렸다.

“건방 떨지 말고 잘해 이놈아.”

“아아, 진짜. 알았으니까 빨리 들어가기나 하셔.”

태주의 설교만으로도 벅찼던 현웅이 잔소리가 더 길어지기 전에 아버지의 등을 부스 쪽으로 밀어냈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할 거니까 준비가 되는 대로 신호를 보내.”

조 중장이 부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태주가 사대로부터 두어 발짝 물러서며 말했다.

“아 참, 그리고 연습은 따로 없으니까 첫 발부터 빗나갔다고 딴소리하면 안 돼.”

“넵!”

화살 한 발을 꺼내 활시위에 건 현웅이 사뭇 비장해진 얼굴로 기합 소리와 같은 신호를 보냈다.

“고!”

순간, 아들의 외침을 들은 조 중장이 버튼을 눌러 표적을 발사시켰다.

팟!

태주와의 약속대로 첫 번째 접시는 정면으로 날아갔다.

‘뭐지? 접시가 생각보다 빠른데?’

재빨리 활시위를 당긴 현웅이 부스 안에 앉아 버튼만 눌렀을 때는 몰랐던 표적의 체감 속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첫 발부터 미스(Miss) 나면 쪽팔린데.’

찰나에 스쳐 가는 오만가지 생각들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진 현웅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강하는 표적을 향해 첫 번째 화살을 쏘았다.

쉬이익!

‘이런 씨!’

산탄과 달리 탄막을 형성할 수 없는 화살이 멀어질 대로 멀어진 오렌지색 접시를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연습은 따로 없는 거 알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태주가 테스트 직전에 전달한 주의 사항을 기다렸다는 듯이 언급하며 협상의 여지를 차단했다.

“긴장하지 말고 해. 아직 아홉 발이나 더 남았으니까.”

규칙상 9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는 것은 맞았지만, 레벨 테스트에 통과하기 위해선 남은 9번의 기회 중 무려 8번 이상을 성공해야 하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긴장 안 해요. 그냥 처음이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거지.”

예상대로 그럴듯한 핑계를 댄 현웅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음 시도를 준비했다.

“고!”

활시위를 당긴 채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현웅이 처음보다 힘이 많이 들어간 목소리로 신호를 보냈다.

팟!

‘어?!’

12시 방향으로 날아간 첫 번째 접시의 궤적을 기억하고 있던 현웅의 얄팍한 노림수를 비웃기라도 하듯 두 번째 접시는 10시와 11시 사이의 방향으로 힘차게 발사됐다.

‘아니, 갑자기 방향을 왜 꺾어!’

다리는 고정시킨 채 허리 위만 황급히 45도 각도로 튼 현웅이 치사하다 투덜거릴 틈도 없이 목표물을 조준했다.

쉬이익!

물론 이번에도 역시 현웅의 손끝을 떠난 화살은 접시와 만나지 못한 채 제 갈 길을 가고 있었지만.

“……?!”

현웅의 연이은 실패를 목격한 태주가 조 중장이 있는 부스 쪽을 슬쩍 쳐다봤다.

세 번째 시도까진 정면으로 발사하자 했던 당초의 계획과 달리 두 번째 시도부터 바로 흔들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현웅의 실패가 목적인 태주의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는 돌발 행동이었지만.

“하아. 왜 이러지?”

활을 내린 채 깊은 한숨을 내쉰 현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 번째 화살을 꺼내 들었다.

급격하게 줄어든 말수와 바짝 타들어 가는 입술.

심리적 긴장감이 외부로 드러나기 시작한 현웅에겐 더 이상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았다.

‘중앙과 왼쪽은 이미 나왔으니까 이번엔 오른쪽인가? 아니야, 어쩌면 왼쪽을 한 번 더 노릴지도 몰라.’

머릿속이 복잡해진 현웅이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금 활을 들었다.

“후우. 고!”

크게 심호흡을 한 현웅이 심기일전하는 자세로 우렁찬 콜 사인을 내렸다.

팟!

공중으로 솟구친 접시가 향한 곳은 공교롭게도 앞서 등장한 적이 없는 우측 45도 각도였다.

‘놓치지 않는다!’

표적의 이동을 따라 화살촉의 위치를 조정한 현웅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세 번째 화살을 신중하게 발사했다.

쉬이익!

물론 결과론적으로 방향을 읽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지만.

“아아아아!”

3구 삼진에 버금가는 굴욕적인 실패를 맛보게 된 현웅이 화살이 빗나가기 무섭게 괴성을 내질렀다.

“뭘 그렇게 소리는 지르고 그래. 별로 아쉽지도 않았구먼.”

기대 이하로 싱겁게 끝난 승부에 헛웃음이 나온 태주가 현웅의 과한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승패와 상관없이 끝까지 해볼래? 아직 일곱 발이나 남았는데.”

“아니요. 나중에 연습해서 다시 할게요.”

스스로에게 화가 난 현웅이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태주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래. 연습을 하면 나아지긴 하겠지. 근데 왜 교수님들이 연습을 실전처럼 하라고 그러는지 알아?”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악착같은 구석까지 없는 현웅의 빠른 포기를 한심하게 여긴 태주가 수업 중에 배운 내용들을 떠올리며 멘탈적인 부족함을 지적했다.

“실전에선 나중이란 게 없거든. 특히 던전 안에선 더더욱 그렇고.”

“……?!”

어깨에 둘러맨 화살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있던 현웅이 태주의 자문자답에 잠시 멈칫했다.

“A급 각성자? 히트반? 미안하지만, 실력 없는 궁수에게 허락된 나중은 죽음밖에 없어.”

처음으로 마주한 태주의 날카로운 눈빛과 그 눈빛보다 더 예리한 비수 같은 일침.

“……?!”

자신의 내세울 것 없는 실력을 몸소 증명해 보인 꼴이 된 현웅으로선 변명을 하는 것조차 민망한, 그야말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덜컥!

부스에서 나온 조 중장이 아들이 있는 곳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안색이 어두워진 아들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조 중장이 빈정거리는 말투로 쓰린 속을 긁어 놓았다.

“아아, 진짜.”

만만한 게 가족이었던 현웅이 태주에게 하지 못한 변명을 아버지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빠가 접시를 이상한 방향으로 쏴서 그렇잖아! 가뜩이나 처음 하는 거라 연습할 시간도 없었는데.”

“어이구, 이 녀석 봐라? 그럼 네가 지금 실패한 게 다 내 탓이라는 거냐?”

“활대의 탄성도 영 시원찮은 게 바꿀 때가 된 거 같고……. 아무튼, 아빠의 책임도 있으니까 오늘 일로 꼬투리 잡을 생각하지 마.”

“뭐, 인마?”

아들의 억지스러운 주장이 황당할 따름인 조 중장이 덩달아 언성을 높이던 바로 그때.

“현웅아.”

현웅의 예견된 불복을 맞닥뜨린 태주가 미리 마련해 둔 대책을 실행에 옮겼다.

“잠깐 활 좀 빌려줄래?”

“네? 제 활을요? 갑자기 왜요?”

한창 열을 내고 있던 현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장인은 원래 연장을 탓하지 않거든.”

설령 이의를 제기한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했던 태주가 현웅의 손에 들린 활을 가져가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네?”

“부스에 들어가서 신호를 보낼 때까지 기다려. 화살은 따로 필요 없으니까 걸리적거리지 않게 치워 두고.”

“어? 설마 선생님도 하시게요?”

태주의 도전 의사를 확인한 현웅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어. 참고로 나도 날아가는 접시를 맞히는 건 오늘이 처음이야.”

활의 종류부터 경험의 유무까지 실력을 제외한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맞춘 태주가 사대로 들어서며 말했다.

‘뭐야, 지금 날 기죽이려고 이러는 건가? 이러다 진짜 성공하면 내 꼴만 더 우스워질 텐데.’

태주의 시범이 자신에게 불리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판단한 현웅이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오히려 선생님이 실패를 해야 내 변명도 합리화가 되겠지? 막말로 S급 매직 아처가 못한 걸 내가 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 그래. 일단 시도를 하게 둔 다음에 접시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서 무조건 3개 이상 놓치게 하자.’

마침내 결단을 내린 현웅이 발칙한 속내를 숨긴 채 부스가 있는 곳으로 순순히 나아갔다.

“네. 그럼 준비가 되시면, ‘고’라고 외쳐주세요.”

물론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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