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레벨 테스트 (2)
“현웅이 아버님.”
“네, 선생님.”
“식사 후에 잠깐만 클레이 사격장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어휴, 그럼요. 근데 갑자기 사격장은 왜…….”
“아, 다름이 아니라, 날아가는 표적을 맞히는 테스트를 좀 해보려고요.”
“네? 총 대신 활로 날아가는 표적을요?”
태주의 생각지도 못한 요청에 놀란 조 중장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되물었다.
“입시에선 원래 움직이는 목표물만 상대하거든요.”
“그야 그렇지만……. 이 녀석이 할 수 있을까요?”
조 중장이 아들의 얼굴을 확신 없는 눈빛으로 힐끗 쳐다봤다.
“아니, 아빠. 지금 날 못 믿는 거야? 나 강남 철인 학원 히트(HIT)반이야. 한국대, 인재대, 태성대에 갈 수 있는 학생들만 모아 둔 특별반 중의 특별반.”
아버지의 반응에 발끈한 현웅이 또 한 번 언성을 높이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우수성을 상기시켜주었다.
“알지. 너 히트반인 거. 근데 그게 뭐. 히트반 들어가면 누가 한국대 붙여준대?”
“네?”
평소라면 그러려니 넘어갔을 아버지의 뼈를 때리는 독설에 적잖이 당황한 현웅이었다.
“판단은 선생님이 하실 거니까 건방 떨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 알았어?”
자녀의 부족한 면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편인 조 중장이 태주의 결정에 힘을 실어 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와아, 오늘 엄청 서운하네?”
“서운하긴 인마.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지. 선생님, 제 눈치 보실 것 없이 있는 그대로 평가해 주세요.”
부모의 심정을 모르는 막내아들의 철없는 투정을 다그친 조 중장이 태주와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정중하게 부탁했다.
“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조 중장의 적극적인 조력이 반가운 태주가 흐뭇한 표정으로 같은 마음임을 밝혔다.
“오케이, 알았어. 긴말할 것 없이 보여주면 되잖아. 아빠가 날 얼마나 과소평가하고 있었는지를.”
아버지의 의심에 오기가 생긴 현웅이 실력을 통한 증명을 다짐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럼 부스에 들어가 발사 버튼을 누르는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아들의 격양된 목소리 따윈 관심 없는 조 중장이 의욕적인 자세로 역할 분담을 자처했다.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선생님.”
검증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현웅이 구체적인 테스트 방식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을 건넸다.
“어, 왜.”
“레벨 테스트의 합격 기준이 어떻게 돼요?”
“합격 기준? 히트반에 들어갈 땐 어땠는데?”
당사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척도가 필요했던 태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문했다.
“히트반이요? 전 A급 각성자라 무시험 전형으로 들어갔는데요?”
순간, 태주의 물음에 답하는 현웅의 목소리와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뭐? 무시험으로 들어갔다고?”
“네. 입반 테스트는 B급 이하만 봐요. 커트라인은 기초 체력이랑 클래스별 테스트에서 모두 상(上)을 받아야 되고요.”
각성 등급이 높은 학생들을 유치해 명문대 합격자를 늘리는 것만큼 좋은 홍보 수단은 없었기에 A급 이상의 각성자에 대한 특혜는 대다수의 헌터 입시 학원이 시행하고 있는 필수적인 정책이었다.
심지어 초기 각성이 S급인 경우 무시험은 물론 무료 수강의 혜택에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수업 태도가 엉망이어도 다른 학원에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잘못을 눈감아 주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었다.
마치 태주가 들은 현웅의 불성실한 학원 생활이 1학년 때부터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상(上)의 기준이 뭔데?”
헌터 입시 학원의 운영 방침에 익숙지 않은 태주가 입반 테스트의 정확한 커트라인을 물었다.
다른 동기들과 달리 보육원 출신이었던 태주는 회귀 전, 학원에 다닐 여력은커녕 활과 화살을 마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궁수로 따지면 10발 중 8발 이상이 10점에 명중해야 돼요. 근력, 지구력, 민첩성 등을 측정하는 기초 체력 테스트에선 상위 2퍼센트 안에 들어야 되고요.”
“그래? 그럼 객관적으로 봤을 때 네가 입반 테스트를 봤어도 히트반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아?”
기준이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다고 여긴 태주가 커트라인에 대한 현웅의 솔직한 심정을 물었다.
“으음. 그러니까 입반 테스트를 면제시켜 주지 않았을까요?”
잠시 고민하는가 싶었던 현웅이 무시험의 이유를 학원의 상술이 아닌 자신의 실력과 결부시키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자신감만큼은 상(上)이 맞네. 좋아. 그럼 밥 먹고 한 30분 정도 쉬었다가 바로 시작하자.”
현웅의 자의적인 해석에 헛웃음이 나온 태주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네. 대신 테스트에 통과하면 지루한 기본기 훈련 대신 족집게 과외 식으로만 알려주시는 거예요. 아셨죠?”
평범한 트레이닝은 학원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착각하고 있는 현웅이 자신의 요구 사항을 거듭 어필하며 태주의 확답을 구했다.
“그래. 근데 80퍼센트 이상의 명중률이 합격 기준이라고 해도 테스트의 강도를 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선생인 내 전권이니까 거기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지 마.”
“에이, 그건 아니죠.”
출제자의 무한한 재량으로 의한 구조적인 불리함을 느낀 현웅이 태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의를 제기했다.
“뭐가 아닌데?”
“그렇게 되면, 접시 여러 개를 막 두세 개씩 동시에 발사할 수도 있고, 시험에 사용되는 접시의 개수도 100개가 됐든 200개가 됐든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저만 불리하게.”
현웅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나니 학원 강사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했던 조 중장의 설명이 무엇인지 여실히 깨닫게 된 태주였다.
“좋아. 그럼 네가 원하는 테스트의 방식은 뭔데?”
“총 10번의 시도를 하되 접시는 딱 한 개씩만 발사되는 방식이요.”
테스트를 받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하듯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의견을 제시하는 현웅이었다.
“80퍼센트라는 명중률 자체엔 이의가 없고?”
“네.”
“알았어. 대신 이 정도까지 편의를 봐줬는데도 성공을 못 하면, 앞으로 네가 원하는 그 어떠한 요구 조건도 수용되기 어려울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변명의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던 태주가 현웅의 입맛에 맞도록 테스트의 전반적인 진행 방식을 흔쾌히 수정해 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없으니까. 아빠도 걱정하지 마. 그동안 전력을 다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걸 내가 오늘 확실하게 보여줄 테니까.”
만족스러운 협상 결과에 자신감을 얻은 현웅이 기세등등한 얼굴로 큰소리를 쳤다.
“고작 10개 중에 8발 맞히는 걸로 무슨. 야, 아빠는 백발백중이야.”
레벨 테스트의 방식이 성에 차지 않았던 조 중장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무시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아니, 고작이라니. 그리고 총이랑 활이랑 같아? 심지어 산탄총은 300개나 되는 탄알이 탄막을 형성하며 날아가는 형태라 대충만 조준해도 다 맞잖아.”
좀처럼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아버지의 냉정한 잣대에 이골이 났던 현웅이 두 무기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언급하며 따지듯이 대들었다.
“뭐? 대, 대충? 아니, 이 자식 이거 아주 큰일 날 소리하고 있네? 야, 인마, 너 같으면, 대충 쏴도 맞힐 수 있는 걸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했겠냐?”
자신의 사격 실력에 자부심이 넘쳤던 조 중장이 부릅뜬 눈으로 매섭게 쏘아붙이며 아들의 지적을 반박했다.
“아아, 또 왜 이렇게 흥분하고 그래. 선생님 보는 앞에서 쪽팔리게.”
손님을 곁에 앉혀 놓고 싸우고 있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웠던 현웅이 덩달아 인상을 쓰며 젓가락을 내려놨다.
“아무튼 두 분 다 천천히 드시고 오세요. 전 먼저 가서 몸 좀 풀고 있을 테니까.”
입맛이 제대로 달아난 현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일찌감치 주방을 나섰다.
“고작 10발 쏘기로서니 몸풀기는 무슨.”
현웅의 뒷모습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던 조 중장이 아들에 대한 불만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선생님, 근데 저러다 진짜 10발 중에 8발 이상을 맞히면 어떡하죠?”
아들의 실패를 바라고 있는 조 중장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태주의 대책을 물었다.
“아니요.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현웅과의 대화 내내 양보만 하는 것 같았던 태주가 단정적인 어조로 조 중장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물론 아버님만 도와주신다면요.”
“네? 제가요?”
“어차피 10발 중에 3발만 실패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태주의 말대로 긴장을 해야 될 쪽은 삼진 아웃의 위기에 놓인 현웅이었다.
“그야 그렇죠.”
“접시가 설마 한 방향으로만 발사되는 건 아니죠?”
“네. 좌우 각각 45도 각도랑 정면으로 방출됩니다.”
“으음. 그럼 정면으로만 3발 연속 발사하다가 한 번씩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주면 되겠네요. 왼쪽, 중앙, 왼쪽 이런 식으로 혼란을 주는 것도 좋고요.”
태주는 고정된 표적 위주로 훈련을 했을 현웅이 빠르게 움직이는, 더구나 방향까지 예측할 수 없는 물체를 쉽게 맞힐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아아, 진짜 그러면 되겠네요. 어차피 횟수랑 커트라인만 정했지 방향까지 정한 건 아니니까.”
방출기의 조작을 맡은 조 중장이 자신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격하게 맞장구를 쳤다.
“네. 그리고 설령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에 대한 대비 또한 이미 마련해 둔 상태고요.”
조 중장과 달리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있던 태주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슬며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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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몸 좀 풀었어?”
약속된 시간에 맞춰 느긋하게 사격장에 모습을 드러낸 태주가 사대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웅에게 다가가 컨디션을 확인했다.
“넵! 전 준비됐습니다.”
“뭐야, 실전파야? 목소리에서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데?”
“원래 긴장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오오, 그래? 활은 손에 익은 거고?”
실패의 원인을 컨디션의 난조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태주가 이번엔 장비의 수준을 점검했다.
“네. 바꾼 지 한 1년 정도 된 건데, 그냥 대학 들어가기 전까진 쓰려고요. 어차피 아빠한테 입학 선물로 하나 받을 예정이라.”
현웅이 자신의 활을 태주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냥 무난한 걸 쓰고 있네.’
활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태주가 장비의 스펙을 확인할 겸 활시위를 당겨 보았다.
[초급 궁수의 튼튼한 활]
- 등급: 일반
- 근력: 2% 증가
- 공격력: 4% 증가
- 명중률: 3% 증가
‘으음. 딱히 변수가 될 만한 옵션은 없네.’
일반 등급에 해당하는 초심자용 활임을 파악하는 순간, 테스트의 결과가 온전히 실력으로 판가름 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하긴, 지금 당장 좋은 걸 살 필요는 없으니까.”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협 요소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태주가 활을 돌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 테스트를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