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과외 (3)
[“서울 근교에 제 별장이 하나 있습니다. 배산임수의 형태를 갖춘 아주 한적한 곳인데, 일단 거기서 뵙는 걸로 하죠.”
태주의 예상과 달리 조 중장이 선정한 약속 장소는 군부대 등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군사시설이 아니었다.
“네? 별장이요? 그럼 택시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곳 아닌가요?”
[“하하. 그야 별장 나름이겠죠.”]
‘무슨 별장인데 그러지?’
웃음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태주가 조 중장의 의미심장한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설마 앞으로의 수업도 전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겁니까?”
원거리 딜러인 탓에 장소적인 제약이 많은 궁수 클래스의 경우 양궁장이나 사설 트레이닝 센터에서 과외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네. 일주일에 한 번, 하루에 두 시간씩만 봐주시면 됩니다. 물론 이동에 불편이 없게 기사를 지원할 예정이고요.”]
“그래도 길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적진 않겠네요.”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태주가 자신이 감수해야 할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어필했다.
수업 장소의 적합성을 떠나 서울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왕복에 소요되는 두 시간까지 수업으로 책정해 총 네 시간의 수업료를 지불하겠습니다. 시간당 100만 원씩 하루에 400만 원을요.”]
단순한 교통비 지원을 넘어 기사까지 붙여주기로 한 조 중장이 태주의 불만에 이례적인 조건을 덧붙였다.
‘한 번에 400? 그럼 한 달에 네 번만 가도 1600만 원이네?’
협의는 곧 상한을 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라 했던 정웅의 해석대로 조 중장의 제안은 태주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물론 관점에 따라 만족스럽지 않은 시급이라 여길 수도 있었지만, 제아무리 희귀 클래스를 지닌 S급 각성자라 해도 프로의 자격이 없는, 심지어 과외 경험이나 노하우가 전무한 1학년 학생에게 시간당 100만 원이란 금액을 제시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태주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길드에서 주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네.’
더구나 가장 많은 용돈을 주는 곳이 한 달에 300만 원이라는 것을 고려해 봤을 땐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으음. 그렇게까지 배려해 주신다면야 저로서도 허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지만, 과외비에 대해 듣지 못하고 수락했던 만큼 돈 때문에 드린 말씀이 아니란 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이죠. 따로 뒷조사를 한 건 아니지만, 이미 수많은 길드와 기업으로부터 매달 유례없는 수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태주 학생의 쉽지 않은 선택이 더더욱 감사할 따름이고요.”]
게이트작전사령부의 사령관이라는 직책으로 인해 군 내부에서의 파워는 물론 비각성자임에도 불구하고 헌터 업계에서의 입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조 중장이었지만, 그 역시 자식의 문제 앞에선 한없이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는 평범한 학부모의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과외를 수락하게 된 건지 한번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정웅이 약속을 어긴 채 비밀을 발설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터라 수락의 기쁨과는 별개로 태주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인 계기가 궁금한 조 중장이었다.
“이유요. 글쎄요. 사실 저도 그 이유를 찾고 싶어서 수락한 거라.”
[“네?”]
태주의 수수께끼 같은 답변에 당황한 조 중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유를 찾고 싶다는 게 무슨 뜻인지.”]
“어떠한 이유가 됐든 과외를 수락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느끼는 순간 언제든지 과외를 그만두겠다는 뜻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유가 있었다고 하기엔 선택을 위한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했거든요.”
합격이나 한국대 등 학부모의 기대감을 고조시킬 수 있는 단정적인 표현들을 피하고 있던 태주가 이번엔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는 보험적인 여지를 남겨두었다.
돈과 인맥도 좋지만, 태주가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는 매직 아처로서의 성장과 커리어적인 측면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선택인 만큼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까지 책임감을 부담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순조롭게만 흘러가던 대화 속에 스며든 묘한 긴장감.
일방적인 사임 가능성을 암시하는 생각지도 못한 수락 조건에 말문이 막혔지만, 태주의 지적대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책임은 조 중장에게 있었다.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느끼는 순간이라……. 그럼 그 순간의 예도 함께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태주의 발언을 잠시 곱씹어 보던 조 중장이 휴대폰을 든 손을 바꾸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드님의 이름이 현웅이라고 하셨죠? 조현웅.”
[“네.”]
“우선 현웅이의 태도에 변화가 없거나 제 말에 전적으로 따르지 않을 경우 수업 중에라도 언제든지 과외 의사를 철회하겠습니다.”
학부모보단 과외 학생과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만큼 입시 학원에서 보여주고 있는 불성실한 모습이 이어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할 필요성이 있었다.
[“아무렴요. 그런 이유라면 저도 태주 학생의 선택을 말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두 번 다신 없을 천금 같은 기회란 걸 알기에 태주의 입장에 기꺼이 수긍하면서도 최소한의 인내심을 부탁하는 조 중장이었다.
[“아주 대화가 통하지 않는 녀석은 아니니 적어도 변화의 기회 정도는 주었으면 하는 게 아비로서의 작은 바람입니다.”]
“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판단이 섰을 때만 내릴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에 걱정하시는 것처럼 경솔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한결 안심이 되네요.”]
안도의 미소가 번진 조 중장이 미간의 긴장을 풀며 다시 한번 태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나저나 우선이라고 한 걸 보면 다른 예도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짚고 넘어갈 게 더 남아 있습니까?”]
“네. 미리 말씀드리지만,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듯 자녀를 향한 높은 기대감은 성장에 대한 조급함과 결과에 대한 실망감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으음. 쉽게 말해,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는 뜻이군요.”]
과외 학생의 태도에 이어 학부모의 마음가짐에 대한 당부의 말을 들은 조 중장이 자신이 느낀 바를 직설적으로 해석했다.
“아니요. 전 다만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과 비난의 화살을 외부로 돌리는 것만큼 무책임하고도 편의주의적인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물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면피용 요구 사항임을 순순히 인정할 태주가 아니었지만.
“이런 제 입장에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드신다면, 얼마든지 제안을 거두셔도 좋고요.”
사람 사이의 관계란 작은 심경의 변화 하나로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불완전한 것이었기에, 다소 민감한 부분이라도 책임의 선을 긋는 확실한 강수를 두어 성에 차지 않는 결과물을 받아든 조 중장의 태도가 돌변하는 상황을 철저히 예방하기로 한 태주였다.
[“으음.”]
고민이 많아진 조 중장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물론 태주로부터 과외를 수락했다는 것 이외엔 어떠한 확답도 받아내지 못한 조 중장이 지나치게 저자세라는 생각이 들 법한 모양새를 갖추고도 섣불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건 자존심이 상할지언정 제안을 거둬들일 마음이 없다는 하나의 방증이었지만.
[“알겠습니다. 태주 학생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도록 하죠.”]
실리를 택한 조 중장이 결국 태주의 일방적인 사임 가능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실패에 대한 원인을 자식으로부터 찾겠다는 약속을 세부적인 조건으로 추가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럼 본격적인 수업은 언제부터 가능한 겁니까?”]
지금까지 나눈 대화가 원점으로 돌아갈까 마른침을 삼키게 했던 고민마저 호탕하게 웃어넘긴 조 중장이 마지막 조율 과정이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과외 일정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일단 이번 주 토요일에 뵙기로 했으니 수업은 그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걸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를 기준으로 하되 각자의 사정에 따라 스케줄을 조정하는 방식으로요.”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는 걸로 하죠.”]
‘으음.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운 것 같네.’
조 중장과의 갑작스러운 통화에도 위축되지 않았던 태주가 기대 이상의 조건에 만족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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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뒤, 목요일.
유일한 교재 중심 수업인 헌터의 역사를 수강하는 아이들이 계단형 강의실에 모여 열심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아아, 평소에 공부 좀 해둘걸.”
벼락치기를 하고 있던 세준이 학과장이 내준 광범위한 시험 범위에 괴로워하며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아니야. 이렇게 분량이 많은데 설마 다 본 애가 있겠어?”
현실을 부정하며 혼잣말을 하던 세준이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한 칸 떨어져 있던 태주에게 슬그머니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태주야, 넌 공부 많이 했어?”
“아니. 그냥 어젯밤에 대충 훑어봤어.”
“진짜 대충 훑어본 거 맞아?”
책상 위에 놓인 태주의 교재를 자신의 쪽으로 슬쩍 끌어당긴 세준이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부분을 넘기며 공부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어? 진짜 책이 깨끗하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던 세준이 자신의 교재와 거의 다를 바 없는 휑한 필기 상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족보를 가지고 있는 태주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전제였지만.
“아아, 그나저나 객관식이 하나도 없다는데 어떡하지?”
세준의 걱정대로 헌터의 역사는 오직 주관식 단답형과 서술형 문제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냥 아는 것만 쓰고 나오는 거지.”
“아는 게 없으면?”
“그래도 세 개는 있겠지.”
“뭐? 세 개씩이나?”
“어. 학과, 학번, 이름.”
“야, 너 지금 장난…….”
태주의 농담에 발끈한 세준이 멱살을 잡기 위해 팔을 뻗던 바로 그때.
지이잉!
“어? 야, 나 잠깐만 전화 좀 받고 올게.”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던 태주가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하기 무섭게 계단 쪽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