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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91화 (191/242)

191. 문제 유출 (11)

비상구로 들어선 태주가 함 교수 특유의 느긋한 발걸음에 보폭을 맞추며 대기실로 향했다.

“이 과장하고는 무슨 사이야?”

먼저 침묵을 깬 함 교수가 자신이 품고 있던 궁금증들을 하나씩 묻기 시작했다.

“네? 이 과장님이요?”

“그래. 네 플레이를 실시간으로 보겠다고 주말 근무까지 자처한 그 미친놈하고 얼마나 친하냐고.”

“글쎄요. 친하다는 것의 기준이 좀 애매하지만, 일단 만남의 횟수에 비해선 마음이 일찍 열렸던 것 같습니다.”

이 과장이 자신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신고식 때부터 느끼고 있던 태주가 함 교수의 공격적인 질문에 유연하게 대처했다.

“그래? 이 과장이 들으면 엄청 좋아하겠네. 안 그래도 시험 내내 네 편만 들고 있었는데.”

“이 과장님께서요?”

응원이 아닌 편이라는 표현에 무언가 의견 충돌이 있었음을 직감한 태주였다.

“그래. 내가 네 비밀을 알고 싶다 하니 제자의 능력을 탐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알려고도 하지 말라던데? 어차피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할 미지의 영역이라고.”

함 교수가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사리사욕의 도구로 매도한 이 과장의 불쾌한 발언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아, 네.”

편을 들었다는 의미에 대해 알게 된 태주가 함 교수의 집착을 미연에 방지하려 한 이 과장의 자발적인 조력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근데 난 생각이 좀 달라. 특히 너에 대한 생각은.”

전방만 주시하던 함 교수가 처음으로 태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보스전에서 보여준 유도 화살이나 순간 이동 스킬만 봐도 알 수 있지. 넌 네가 가진 특별한 능력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걸. 그건 너도 부정할 수 없겠지?”

“네. 우발적으로 나가는 게 아니란 건 인정합니다.”

“그래. 의도성이 없다고 보기엔 타이밍들이 너무 절묘하긴 했지. 생각보다 솔직하네.”

원하는 대답을 들은 함 교수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나한테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지?”

“글쎄요. 저에 대한 궁금증은 얼마든지 풀어 드릴 수 있지만, 매직 아처에 대한 비밀은 저 역시 알아가는 단계라 지금으로선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눈치 빠른 태주가 함 교수의 노골적인 질문을 침착하게 빠져나갔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손쉽게 정보를 얻어내려던 함 교수가 태주의 정중하면서도 빈틈없는 대처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럼 아는 데까지만 말해볼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궁금증을 가슴 속에 묻어 둘 함 교수가 아니었지만.

“세 마리의 최종 보스 중 뭐가 진짜인지 어떻게 알았지? 중간 보스의 약점이 겨드랑이와 목인 건 또 어떻게 알았고.”

“아, 그거요. 그건 서윤이의 케이스와 동일합니다.”

“서윤이? 지금 금서윤을 말하는 거야? 금서윤이 왜?”

대기실 복도에서 한 번, 태주의 입을 통해 또 한 번 끼어든 서윤의 반갑지 않은 등장에 함 교수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저 운이 좋았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실력이 아니라.”

시각적인 효과가 뚜렷한 파이어 애로우나 점멸 등은 그 존재를 숨기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간파처럼 스스로 밝히기 전까진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는 은밀한 스킬에 대해선 필요 이상으로 솔직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

대화가 순조롭게 흘러가는 줄 알았던 함 교수가 태주의 겸손을 가장한 철벽에 미간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멈췄다.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더 이상 드릴 말씀도 없고요.”

덩달아 걸음을 멈춘 태주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매상과 직결된 영업 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건가?”

“그 또한 어떻게 해석하셔도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뭐, 감사하게도 제 능력을 과대평가하신 것 같지만.”

“좋아. 그에 대한 질문은 이쯤에서 멈추도록 하지. 근데 말이야.”

태주의 거부 의사를 명확히 확인한 함 교수가 스킬의 존재 여부에 대한 추궁을 그치며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갔다.

“대체 그 다양한 능력들을 누구한테 배운 거지? 세계 최초라는 것은 곧 다른 클래스들과 달리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을 길이 없다는 뜻인데.”

함 교수의 말대로 태주가 구사하는 궁술과 스킬은 그 어떤 클래스와 커리큘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인 형태였다.

“그냥 신기한 마음에 이것저것 연습하다 하나씩 습득한 겁니다.”

함 교수의 예리한 질문을 받은 태주가 시스템의 존재를 숨긴 채 우연에 의한 발견인 양 적당히 둘러댔다.

“E급 궁수였던 네가 그 모든 걸 혼자 알아냈다고?”

태주의 초기 각성 수준 정도는 알고 있던 함 교수가 성에 차지 않는 답변에 코웃음을 쳤다.

“차라리 게임처럼 튜토리얼이 있었다고 하지 그래. 어?”

‘……?!’

함 교수의 상상력에 포커페이스가 무너질 뻔했던 태주가 허무맹랑한 가설이라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당혹감을 감췄다.

“아, 죄송합니다. 튜토리얼 방식은 생각지도 못해서.”

함 교수의 눈치를 보는 척 황급히 웃음기를 걷어낸 태주가 사과의 뜻을 전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비웃어도 돼. 어차피 나도 농담이었으니까.”

태주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속아 넘어간 함 교수가 다시 대기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나저나 매직 아처의 비밀은 평생 공개하지 않을 셈이야?”

개인적인 질문을 그친 함 교수가 이번엔 공익적인 관점의 질문을 건넸다.

“클래스별 기본기나 스킬은 모두 그 능력을 일찍이 깨우친 누군가가 몬스터의 위협에 직면한 인류를 위해 과감히 공유한 희생의 산물이야. 만약 혼자만 그 특별한 힘을 간직했다면, 지금처럼 입시 학원이나 헌터학과가 생길 수도 없었겠지. 나와 같은 학자들은 그 기본기와 스킬을 연구하고 발전시킨 뒤 경험이란 자격으로 너희들에게 전수하고 있는 거고.”

물론 명분은 그럴싸해도 태주의 입을 열기 위한 수단이란 점에선 다를 바가 없었지만.

“네. 하지만 매상과 직결된 영업 비밀까지 남김없이 공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4차 각성 법사인 교수님께서도 예외는 아니실 거고요.”

2회차 신입생인 태주는 세상에 공개된 클래스별 기본기나 스킬의 대부분이 입문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N차 각성의 격차를 벌이거나 레드오션으로 변한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상태였다.

“그래. 소위 말하는 상위 랭커일수록 경쟁자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가 되는 걸 원하지 않긴 하지. 하지만.”

태주의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하는가 싶었던 함 교수가 이 과장에게 그랬듯 하지만이란 단어에 힘을 주며 계속적인 탐구 의지를 드러냈다.

“매직 아처라는 유례없는 클래스를 세상에 보급한다는 개념에서 접근한다면, 네 말대로 그에 대한 기본기인 화살의 생성 방법이나 간단한 스킬 정도는 오픈할 수 있지 않을까? 네가 확답을 피하고 있는 영역은 계속 비밀로 남겨둔 채 말이야.”

“네. 언젠간 그래야 하는 순간이 오겠죠. 그게 자의가 됐든 타의가 됐든.”

“언젠간이라…….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건가?”

“아시다시피 노력으로 이루어 낸 전직이 아니라 저 역시 매직 아처가 되는 방법에 대해 어떠한 이정표를 제시할 순 없는 처지입니다. 어쩌면 머지않아 제2, 제3의, 아니, 수많은 매직 아처들이 저처럼 우연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그래. 너처럼 일당백을 하는 매직 아처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면 업계의 판도 자체가 완전히 뒤바뀌겠지. 공대원들이 느끼는 레이드의 체감 난이도도 한결 수월해질 테고. 하지만 가정 자체가 너무 이상적이고 낭만적이야. 한마디로 기약이 없고 무책임하다는 뜻이지.”

“아니요. 그건 기약이 없고 무책임한 게 아니라 전에 없던 클래스가 새롭게 인정받는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지금이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지만, 초창기 때만 해도 누군가는 인류 최초의 법사로서, 또 누군가는 인류 최초의 힐러로서 모두를 놀라게 한 적이 있으니까요.”

죽음의 대가로, 아니, 어떠한 대가를 치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죽음을 통해 얻은 독보적인 능력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지 않았던 태주가 12시의 함 교수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기 싸움을 벌였다.

“아, 쉽게 말해, 알려줄 생각이 추호도 없으니까 괜히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하지 말고, 정 궁금하면 다른 녀석들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어보든지 말든지 해라. 뭐, 이거야?”

작은 여지도 허용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함구에 살짝 아니꼬운 기분이 든 함 교수가 태주의 완곡한 거절을 직설적으로 풀이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문이 아닌 벽을 두드리는 기분이라 노크가 길어질수록 손만 아프네. 좋아. 오늘은 더 이상 열어 달라고 안 할 테니까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나부터 찾아와. 같은 궁수라고 괜히 엄 교수나 이 교수 주위에서 기웃거리지 말고.”

태주만 만나면 의욕적으로 바뀌는 함 교수가 결국 후일을 도모하며 당부의 말만 전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다른 교수들에 대한 견제는 잊지 않았지만.

“어? 저기 다 모여 있네요.”

함 교수의 강제성 없는 부탁을 한쪽 귀로 흘린 태주가 탈락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말 돌리긴.”

마지막까지 소통에 실패한 함 교수가 나지막이, 하지만 곁에 있는 태주에겐 들릴 정도로 못마땅한 티를 냈다.

- “어? 뭐야, 왜 교수님이랑 같이 오지?”

- “그러게. 마지막 응시자라 그런가?”

- “근데 보스는 잡았을까? 태주랑 마지막까지 있었던 은재 말로는 아무리 때려도 죽을 생각을 안 했다던데.”

- “글쎄. 지금까지의 기세라면 충분히 깼을 것 같긴 한데, 태주의 표정이 워낙 덤덤해서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네.”

태주의 클리어 여부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라 대기실에 있던 16명의 아이들 모두 두 사람의 어색한 동행을 의아한 눈으로 돌아보며 갖가지 추측들을 쏟아냈다.

“태주야, 어떻게 됐어?”

자신의 탈락 이후가 궁금했던 은재가 제일 먼저 다가가 레이드의 결과를 확인하던 바로 그때.

“아, 그게…….”

“떨어졌다.”

옆으로 팔을 뻗어 태주의 말문을 막은 함 교수가 사실과 다른 정보를 아이들에게 전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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