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90화 (190/242)

190. 문제 유출 (10)

쩌적!

보스몹의 두꺼운 외피가 등골을 따라 갈라지더니 이내 녹색 피를 뒤집어쓴 몬스터 한 마리가 상반신을 드러냈다.

‘어? 크기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네.’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뚱이에서 튀어나온 의문의 생명체는 2미터가 조금 안 되는 키에 날렵한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민첩성으로 승부를 볼 작정인가?’

외형 자체의 위압감은 없었지만, 방심하지 말라는 함 교수의 충고대로 쉽게 안심할 상대가 아님은 분명했다.

▶ 스킬 『간파』가 발동되었습니다.

적이 반경 20미터 안에 들어오도록 거리를 좁혀둔 태주가 새로운 보스몹이 숙주의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기 전에 약점부터 파악했다.

‘……?!’

특별한 공략 포인트를 예상했던 태주가 너무나도 평범한 적의 취약점에 의아함마저 느꼈다.

‘뭐야, 그냥 아무 데나 맞추면 그만이네?’

무적 모드였던 2페이즈와 달리 새로운 보스몹의 경우 신체 전부가 대미지에 취약한 것으로 분석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기본으로 승부를 보라는 건가?’

선제공격의 필요성을 느낀 태주가 탐색전의 의미가 담긴 첫 번째 화살을 발사했다.

쉬이익!

키에에에!

체이싱 애로우가 목을 관통하자 새로운 보스몹의 아가리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쏟아졌다.

‘함 교수님이 고작 저 정도 몬스터로 까다로워질 거란 소린 안 하실 텐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을 거라던 함 교수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한 태주가 미리 체력을 깎아둔다는 심정으로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폭딜엔 역시 속성 화살만 한 게 없지.’

▶ 파이어 애로우[F]를 선택하셨습니다.

3초간의 차징으로 화염 효과를 발동시킨 태주가 하반신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보스몹을 향해 활시위를 놓았다.

쉬이익! 화르르!

‘그래. 그렇게 얌전히……, 어?!’

커다란 불기둥을 형성한 파이어 애로우가 적의 가슴 한복판을 향해 날아가던 바로 그때.

촤악!

보스몹의 등에 접힌 채 숨어 있던, 흡사 박쥐를 연상케 하는 날개가 양옆으로 활짝 펼쳐지더니 이내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천장까지 솟구쳤다.

‘내 화살을 자력으로 피한 몬스터는 처음인 거 같은데?’

파이어 애로우를 아슬아슬하게 피한 보스몹을 올려다보며 헛웃음을 진 태주가 지대공 능력을 겨뤘던 정진천과의 5차 웨이브를 떠올리며 화살을 교체했다.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은 적에겐 역시 조준된 목표물을 끝까지 따라가 명중시키는 유도 화살이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 체이싱 애로우[C]를 선택하셨습니다.

더구나 얼마 전, 근석이 마련한 신고식 당시, 안개 속의 적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도 어디까지나 화살촉의 방향이 적의 신체 일부를 가리키는 순간 타격 의사를 묻는 체이싱 애로우의 레이더와 같은 특성을 활용한 덕분이었다.

‘그래. 그럼 이것도 한번 피해 보든지.’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활의 각도를 높인 태주가 화살촉의 방향을 몬스터에게 맞추려던 바로 그때.

키에에에!

보스몹이 포효를 하자 똑같이 생긴 몬스터 두 마리가 등 뒤에서 복사 붙여넣기를 하듯 양옆으로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분신술?’

까다로움의 실체를 마주한 태주가 두 눈을 의심케 하는 몬스터의 혼란스러운 능력에 조준 타이밍을 빼앗겼다.

‘참 가지가지 하네.’

한 마리만 진짜고 나머지는 분신인지, 아님 세 마리로 개체를 증식한 것인지에 대해선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본체라고 볼 수 있는 가운데 녀석을 겨냥해 진위 여부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쉬이익!

키에에에!

조금 전 상황과 마찬가지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인지한 보스몹이 공중에서 회피를 시도했지만, 체이싱 애로우는 파이어 애로우와 달리 단순한 움직임만으로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키에켁켁켁켁!

화살이 왼쪽 가슴을 정확히 관통하자 괴로움에 온몸을 뒤틀던 보스몹이 불안정한 날갯짓을 하며 추락 직전까지 떨어졌다.

‘그렇지.’

물론 화살에 맞은 녀석보다 명중 직후에 일어난 기현상이 태주의 시선을 더 빼앗고 있었지만.

‘어?’

놀랍게도 한 마리가 화살에 맞자 남은 두 마리의 보스몹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역시 한 마리만 본체고 나머지는 분신이었네.’

스킬의 도움 없이도 적의 눈속임을 간파한 태주가 다시 날아오르려는 보스몹을 향해 또 한 발을 화살을 날렸다.

쉬이익!

키에켁켁켁켁!

비상에 실패한 보스몹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뭐지, 생각보다 너무 쉬운데?’

몬스터의 경우 별도의 체력 게이지가 표시되지 않아 몇 대를 더 맞춰야 잡을 수 있는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지만, 함 교수의 기대와 달리 현재까지의 대결 양상으론 태주의 무난한 승리가 예견되고 있었다.

키에에에!

태주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사이, 바닥에서 꿈틀대던 보스몹이 어느새 생성한 두 마리의 분신과 함께 나선형을 그리며 빠르게 날아올랐다.

‘어쭈, 누가 누군지 모르게 속이시겠다?’

패를 섞듯 바쁘게 회전하던 세 마리의 보스몹들이 공중에서 산개한 뒤 태주를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키에에에!

공격 딜레이로 인해 온전히 조준할 수 있는 목표물은 단 하나.

‘그럼 진짜가 나올 때까지 잡지 뭐.’

선택의 기로에 놓인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3분의 1이란 불리한 확률에 내몰린 와중에도 의연한 마음가짐으로 단순한 접근법을 택한 태주였다.

쉬이익!

자신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보스몹부터 공략한 태주가 나머지 두 녀석이 달려들기 전에 신속히 자리를 옮겼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어? 왼쪽이 아니었네?’

아쉽게도 화살에 맞은 녀석은 별다른 반응 없이 잔상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럼 이번에도 가운데였나?’

서로에게 대미지를 입히지 못한 태주와 보스몹 모두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공격을 감행했다.

키에에에!

급격히 방향을 선회한 두 마리의 보스몹이 길고 날카로운 손가락을 위협적으로 뻗으며 매섭게 날아들었다.

물론 만약을 대비해 두 번째 공격의 여유가 있는 위치로 자리를 옮긴 태주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선 적어도 한 발의 화살을 허용해야 했지만.

쉬이익!

태주의 손끝을 떠난 화살이 중간에 있던 녀석의 이마를 그대로 관통했다.

‘뭐야, 이것도 아니었어?’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영양가 없는 분신들만 연달아 제거한 꼴이 된 태주가 본체를 공략하기 위해 또 한 번 자리를 옮겼다.

바로 그때.

키에에에!

불리함을 느낀 보스몹이 육안으론 분간할 수 없는 두 마리의 분신을 황급히 만들어낸 뒤, 태주가 눈치챌 수 없도록 위치를 섞는 과정을 반복했다.

‘두 번 연속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니까 차라리 화살을 쏘기 전에 누가 진짜인지부터 걸러내야겠다.’

확률상 최소 한 번, 최대 두 번의 간파 스킬로 본체를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연속적인 점멸로 꾸준히 거리를 벌리며 신중한 공격 방식으로 전환한 태주였다.

▶ 스킬 『간파』가 발동되었습니다.

‘일단 오른쪽은 가짜고.’

전신이 대미지에 취약했던 본체와 달리 분신의 경우 어떠한 대미지도 입지 않는다는 분석이 내려졌다.

▶ 스킬 『간파』가 발동되었습니다.

‘찾았다.’

작전대로 본체를 색출하는 데 성공한 태주가 지체 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쉬이익!

키에켁켁켁켁!

본체가 공격을 받자 하나 남은 분신은 잔상과 함께 자취를 감췄고, 태주를 속인 대가를 톡톡히 치른 보스몹은 저공비행을 하다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그로부터 약 3분 후.

‘이제야 잡았네.’

분신을 만든 뒤 다양한 대형으로 태주를 공략하려 했던 보스몹의 본체가 결국 15발의 화살을 맞은 뒤 눈앞에서 사라졌다.

‘설마 4페이즈가 있진 않겠지?’

방심하지 말라는 함 교수의 경고성 조언을 떠올린 태주가 활을 거두지 않은 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던 바로 그때.

[짝! 짝! 짝! 짝! 짝! 짝!]

자신을 진정으로 축하하는 것이 느껴지는 다소 호들갑스러운 박수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어? 누구지?’

이 과장이 통제실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태주가 앞서 들은 함 교수의 느린 박수 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텐션에 동일 인물이 아님을 확신했다.

[“태주야, 축하해. 네가 가형 던전 최초의 통과자야.”]

‘어? 이 목소리는.’

손뼉을 친 장본인이 이 과장임을 알게 된 태주가 CCTV를 올려다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근데 왜 이 사실을 교수님이 아닌 과장님이 전하지?’

통제실의 특성상 프로그래머가 직접, 더구나 중간고사처럼 공식적인 학사일정 중에 교수의 권한을 대리한다는 것은 흔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 그래. 갑자기 내 목소리가 나와서 놀랐지? 사실 네가 마지막 생존자라 얼굴이라도 보면서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방금 교수님께서 화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마무리하는 거야. 환한 얼굴이 아니라 화난 얼굴로.”]

태주의 인사를 화면상으로나마 받은 이 과장이 흐뭇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긴, 가뜩이나 예민해지는 시간대라 그럴 만도 하지.’

아직 12시에서 1시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태주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을 함 교수의 더러운 기분을 헤아려 보며 고글을 벗었다.

[“게다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네가 가짜들 사이에 숨어 있는 진짜 몬스터만 딱! 딱! 골라잡기 시작한 이후부턴 아예 한 말씀도 안 하셨어.”]

한계를 마주하기는커녕 태주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평정심을 잃은 함 교수는 이 과장이 보는 앞에서도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통제실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그럼 이제 대기실로 가 봐. 교수님께서도 아마 거기로…….”]

증강 현실을 종료하던 이 과장이 함 교수의 발길이 향한 곳을 짐작하던 바로 그때.

덜컥!

“누가 대기실로 갔대.”

비상구를 통해 시험장 안으로 들이닥친 함 교수가 이 과장의 말을 끊은 뒤 태주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확실히 대기실 앞에서 봤을 때보단 안색이 어두워지셨네.’

▶ 접촉한 장비를 인벤토리에 넣으시겠습니까? (Y/N)

평소와 다른 보폭만으로도 분위기 파악을 마친 태주가 활을 비롯한 모든 아티팩트를 거둔 뒤 자신을 찾아온 함 교수를 정중히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그래. 축하할 기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축하부터 하는 게 순서겠지?”

피차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에서 걸음을 멈춘 함 교수가 태주의 흠잡을 곳 없는 성공에 대한 솔직한 심정부터 전했다.

“축하해. ‘진심으로’라는 말까진 못 하겠지만.”

“아닙니다. 오히려 교수님의 말씀 덕분에 방심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쎄. 내 말을 들었다고 하기엔 너무 적당히 한 거 같은데? 대기실 앞에서 봤을 때랑 다를 게 없어.”

지친 기색 따윈 없는 태주의 평온한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함 교수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일단 따라와. 가면서 얘기하게.”

이 과장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함 교수가 이유조차 설명해 주지 않은 채 먼저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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