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85화 (185/242)

185. 문제 유출 (5)

“이 구멍들 좀 어떻게 틀어막을 수 없나?”

선봉장으로서 시선 끌기용 몬스터들을 허창민과 함께 쓸어버린 A급 무투가 황건우가 옆에 있던 구멍에, 정확히 말하면, 구멍이 구현된 벽에 발길질을 하며 몬스터의 등장 방식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게. 무슨 두더지 게임도 아니고, 사방에서 랜덤으로 튀어나오니까 영 정신 사납네.”

좌우 벽면과 천장에 뚫린 구멍들을 주의 깊게 살피던 허창민이 황건우의 의견에 맞장구를 쳤다.

“우리 그냥 다 같이 모여 있을까? 흩어져 있으니까 습격에 더 취약해지는 거 같아서.”

선두에서 걷던 황건우가 동기들을 향해 돌아서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물론 공벌레라 불리는 자폭 몬스터의 광역 딜을 염두에 두고 있던 태주의 귀엔 다 같이 죽자는 소리로밖에 안 들렸지만.

“왜 그런 말도 있잖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줄여서 뭉살흩죽.”

“단생산사(團生散死)겠지.”

농담과는 거리가 먼 허창민이 동기들을 마주한 채 뒤로 걷고 있던 건우의 말도 안 되는 사자성어를 고지식하게 지적했다.

- “그래. 이왕이면 그게 좋겠네.”

- “개인 평가이긴 하지만 나도 각개격파를 당하는 것보단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건우의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 “그럼, 그럼. 막말로 각자도생하려다 초반에 우수수 떨어지면 나형이나 다형을 택한 애들보다 더 안 좋은 점수가 나오잖아.”

말 그대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스스로 선택한 던전이라 원망할 사람은 없었지만, 최저점이 다르다 보니 떨어진 시기가 비슷해도 가형의 경우 D를 받는 나형이나 C-를 받는 다형에 비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

물론 서로의 간격을 좁히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뭉치는 것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4명의 응시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어차피 던전 안에서의 판단력도 평가 요소 중 하나인데, 경쟁자의 오판을 바로잡아주지 않았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까진 없지.’

중후반을 도모하기 위해 궁수 2명을 살려두긴 했지만, 앞서 서윤의 팀플 제안을 거절했듯 개별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특히, 무지가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굳이 쓸데없는 영웅 심리를 발휘해 정보를 공유하거나 위협을 경고하는 등의 오지랖을 떨고 싶진 않았다.

“난 그냥 자유롭게 다닐 테니까 뭉치고 싶으면 너희들끼리 뭉쳐.”

역시나 공벌레의 스플래시 대미지를 경계하고 있던 서윤이 무리를 이루기 시작한 아이들을 향해 단독 행동의 의지를 드러냈다.

- “그러게. 이렇게 통로가 넓은데 뭐 하러 땀 냄새나게 따닥따닥 붙어가려고 그래.”

대다수가 전방을 주시할 때 후방을 돌아봤던 또 한 명의 정보 보유자가 서윤과 마찬가지로 거부의 뜻을 표하며 서서히 거리를 벌렸다.

“태주야, 넌 어떻게 할 거야?”

동기들 사이에 이견이 발생하자 태주의 주위로 모여들었던 은재와 희범 역시 쉽지 않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글쎄.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일단은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엄호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궁수의 특성상 꼭 옆에 붙어 있어야 화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은재의 질문에 대한 답변엔 거짓이 없었지만, 산개를 택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선 끝끝내 말을 아낀 태주였다.

“하긴, 거리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우리 클래스가 가진 장점이자 강점이니까.”

자신의 실력에 확신이 있던 은재가 태주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괜찮겠어? 좀 전에도 동떨어져 있다가 죽을 뻔한 건데.”

그에 반해 요령을 피우는 성격인 희범은 태주의 실력에 묻어가고 싶은 마음에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까닭을 설명하며 은재를 설득했다.

“그럼 희범 오빠는 저쪽에 가서 붙어. 나랑 태주는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엄호하고 있을 테니까.”

희범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은 은재가 황건우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아니. 난 태주의 곁에 있겠다는 거지 무작정 모여 있자는 게 아니야.”

은재와 같은 곳을 바라보던 희범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만의 절충안을 내세웠다.

“오합지졸보단 일당백. 알잖아. 머릿수만으로 유불리를 따지기엔 태주가 너무 강하다는 걸.”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 희범이 태주를 힐끗 쳐다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야 그렇지만, 오빠가 곁에 있는 걸 태주가 싫어할 수도 있잖아.”

동기들을 향한 희범의 아슬아슬한 비유에 덩달아 목소리를 낮춘 은재가 자신에게 떨어져 있자 제안했던 태주의 의견을 존중하며 말했다.

“태주야, 싫어?”

“어.”

희범을 살려둔 목적이 뚜렷했던 태주가 다급해진 희범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주저 없이 답했다.

‘형의 힘이 필요하긴 한데, 가까이 두기엔 아직 짐이 될 것 같거든.’

물론‘어’라는 대답 뒤에 생략된 이유까지 들었다면 희범의 충격이 더욱 컸겠지만.

“어?”

내심 긍정적인 검토를 기대했던 희범이 고민의 흔적 따윈 없는 태주의 냉정한 답변에 두 귀를 의심했다.

“싫다고?”

계획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 희범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태주의 결정을 재확인했다.

“일당백이라며, 그럼 당연히 혼자 있어야지.”

“……?!”

자신의 아부성 발언이 자충수가 되어 돌아올 줄 몰랐던 희범이 태주의 한결같은 단호함에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

*

*

잠시 후.

후방에서 기습하는 패턴이 두어 번 더 반복되자 서로의 등을 맡긴 응시자들의 간격은 더욱 더 좁아져 있었고, 그중 일부는 아예 뒷걸음질로 이동하며 경비병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공벌레의 자폭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함 교수의 계산된 함정이었지만.

“얘들아! 또 시작이다!”

다수의 아이들과 선두 그룹을 형성해 나아가던 건우가 앞길을 막아선 몬스터들의 질서정연한 전투 대형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소리쳤다.

“으음. 돌파하는 게 쉽진 않겠는데?”

검 끝을 세운 채 빈틈을 찾고 있던 창민이 적들의 병력 구성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쪽엔 커다란 방패를 든 몬스터들이 갑옷을 두른 채 두 줄로 진을 치고 있었고, 그 뒤로는 활을 든 몬스터 수십 마리가 성난 얼굴로 소나기 화살을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딜을 살려 두라는 의미가 저거였구나.’

앞서가던 아이들을 따라 발걸음을 멈춘 태주가 힌트의 실체에 헛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지금까지 살려 둔 보람이 있나 한번 확인해 볼까?’

은재와 희범의 활용도를 시험해 볼 최적의 타이밍을 맞이한 태주가 두 사람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렸다.

“먼 곳에 있는 녀석들부터 제거해야 되는 거 알지? 뒤쪽에서부터 차례대로.”

전면에 나선 적들의 경우 전사, 무투가, 어쌔신으로 대표되는 근거리 딜러의 공격이 가능했지만, 배후에 포진한 적들의 화력을 큰 대미지 없이 무력화시킬 수 있는 건 원거리 딜러인 법사와 궁수밖에 없었다.

“응.”

클래스 리더이자 궁수 모임의 회장인 태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은재가 활의 각도를 조금 더 높여 후방에 위치한 적들을 겨냥했다.

“저 정도 숫자면 눈 감고 쏴도 맞겠는데?”

정확도에 자신이 없는 희범마저 명중을 확신할 만큼 통로 안에 빼곡히 들어선 적들의 규모는 상당했다.

물론 목표물이 많다는 것은 역으로 화망을 형성하며 날아들 화살의 숫자도 많다는 뜻이었지만.

쉬이익!

희범의 손끝을 떠난 화살이 방패를 든 적들의 머리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후방에 있던 적의 이마를 사정없이 관통했다.

꾸럭! 철퍼덕!

화살에 맞은 몬스터가 기괴한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고꾸라지자 미동조차 없던 적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전투태세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꾸롸아아아!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동료의 복수를 10배, 아니 100배로 갚아주려는 듯 이번엔 희범의 화살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적들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이런 씨!”

눈을 감아도 맞출 수 있다 자신했던 희범이 언제 그랬냐는 듯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하여간 손이 많이 가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한 명의 원딜이 아쉬웠던 태주가 위기에 빠진 희범의 곁으로 이동했다.

툭!

그리곤 자신의 어깨로 희범의 어깨를 밀쳐낸 뒤 화살이 당도하기 직전, 희범이 나가떨어질 위치로 순식간에 자리를 옮겼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쿵!

누가 집어던진 것처럼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진 채 수평으로 날아가던 희범의 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안착했다.

“크흡!”

낙법과는 거리가 먼 클래스였지만, 일반인의 신체 능력을 상회하는 각성자이다 보니 무방비 상태로 요령 없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비명을 지르거나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진 않았다.

“내가 이럴까 봐 곁에 안 둔 거야.”

태주가 바닥에 널브러진 채 인상을 구기고 있던 희범을 한 손으로 일으켜 세웠다.

“고, 고마워.”

탈락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희범이 학점의 은인인 태주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알았으면 빨리 활부터 들어.”

태주가 화살이 들이쳤던 자리에 떨어져 있는 희범의 활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 어! 알았어!”

몰라보게 순종적으로 바뀐 희범이 원래 있던 자리로 황급히 돌아가 활부터 집어 들었다.

“태주야, 근데 넌 왜 안 쏴?”

화살 한 발을 뽑아 활시위에 걸고 있던 희범이 활을 내리고 있는 태주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쏠 거야. 저기서.”

턱을 들어 적들이 있는 곳을 가리킨 태주가 화살의 종류를 교체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파이어 애로우[F]를 선택하셨습니다.

“뭐? 저기로 쏘는 게 아니라 저기서 쏜다고?”

희범이 말실수처럼 들리는 태주의 계획에 어리둥절해하던 바로 그때.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5초에서 3초로 줄어든 차징 시간을 효율적으로 채우기 위해 활시위를 당긴 상태로 연속적인 앞점멸을 사용한 태주가 병력의 배치가 두터운 적진을 눈 깜짝할 사이에 가로질러 버렸다.

‘뒤는 너희들만 칠 수 있는 게 아니야.’

함 교수의 첫 번째 함정에 대한 복수를 하듯 적들의 배후로 보란 듯이 파고든 태주가 화염 효과가 발동된 화살을 지체 없이 발사했다.

화르르!

꾸롸아아아!

한순간에 전열이 흐트러진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태주가 만든 빈틈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창민이 방패를 든 몬스터를 향해 매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야! 법사들! 빨리 실드 안 치고 뭐 하냐!”

창민의 뒤를 이어 돌파를 강행한 건우가 서윤을 비롯한 법사들에게 화살에 대한 방어를 요청했다.

‘일단 흔드는 데는 성공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태주가 두 번째 화살을 발사하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던 바로 그때.

펑!

“……?!”

때아닌 폭발음이 동기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선명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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