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84화 (184/242)

184. 문제 유출 (4)

17명의 응시자 중 4명이 대형의 중심에서 후방을 돌아봤는데, 그중 태주를 제외한 피크닉의 멤버는 오직 금서윤뿐이었다.

‘역시 서윤이는 따로 알아봤구나.’

서윤이 엿들은 자신과 함 교수의 대화 속엔 후방 습격에 대한 내용이 없었기에 태주는 욕심 많은 서윤이 자신만의 루트로 가형 던전의 공략법을 알아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럼 나부터 간다!”

피크닉의 멤버인 A급 무투가 황건우가 선착순 경쟁을 하듯 몬스터를 향해 제일 먼저 돌진했다.

‘건우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네.’

후방을 주시하던 태주가 건우의 성급한 뒷모습을 돌아보며 도화지 상태로 왔음을 확신했다.

‘하긴, 건우 성격이면 선배들한테 물어보지도 않았겠지.’

태주는 권투 선수 출신인 건우가 합숙 생활 동안 겪은 얼차려의 기억으로 인해 선배들을 어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 혼자서 되겠어?”

감투를 위해 나서는 것은 싫어하지만, 몬스터라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S급 전사 허창민이 황건우의 뒤를 이어 무서운 속도로 튀어 나갔다.

‘으음. 허창민도 지름길을 찾는 스타일은 아니지.’

건우와 마찬가지로 창민의 선택 또한 태주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

이번엔 조심성 많은 A급 어쌔신 민대엽이 두 사람을 선봉장으로 앞세운 뒤 조용히 단검을 뽑아 들었다.

‘여전히 형이랑 안 친하구나.’

태주에게 자신의 형을 꺾어 달라 부탁했던 만큼 민주엽이라는 가장 확실한 멘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조언도 구하지 않은 채 시험에 임하는 대엽이었다.

‘유리야 뭐 볼 것도 없고.’

족보나 선배를 통해 시험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부정행위는 아니었지만, 정직하다 못해 고지식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유리의 성향상 출발선이 동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거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야, 너 왜 거길 보고 있냐?”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온 서윤이 동기들의 행동을 관찰하느라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태주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진짜 경계해야 할 곳은 거기가 아니잖아.”

후방 습격을 암시하는 발언을 떠보듯이 내뱉은 서윤이 족보를 가진 태주에게 자신의 정보력을 자랑했다.

“아니라고? 그럼 어디인데.”

태주가 대놓고 티를 내는 서윤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능청스럽게 물었다.

“그걸 몰라서 물어?”

시험 중에 가벼운 장난을 걸어올 만큼 여유가 느껴지는 서윤이 눈짓으로 후방을 가리켰다.

“꽤 확신에 차 보이네?”

“영상 선배한테 직접 물어봤거든.”

서윤은 피크닉의 직속 선배이자 도제식 트레이닝의 스승인 A급 법사 노영상으로부터 시험에 대한 주의 사항을 소상히 전달받은 상황이었다.

“1년 전 일이라 그런지 엄청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있던데?”

“그래? 그럼 클리어도 문제없겠네?”

지금껏 가형 던전을 통과한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태주가 2페이즈에서 끊긴 최종 보스의 나머지 정보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지 우회적으로 물었다.

“아니. 영상 선배 말로는 죽어도 못 깰 거래. 애초에 깨라고 만든 레벨이 아니라나 뭐라나.”

서윤이 선배의 무기력했던 경험담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까 교수님께서도 너한테 그랬잖아. 지금껏 가형 던전을 통과한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앞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기들의 전투를 남의 일처럼 관망하던 서윤이 함 교수에게 발각되기 직전에 들은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놨다.

“뭐, 다행히 상대 평가라 보스전까지 간 것만으로도 A+가 뜨긴 했다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보스까지 잡고 A+를 받는 게 더 낫지 않겠어?”

“보스를 잡을 자신은 있고?”

태주는 피크닉에 속한 S급 법사인 25기 공슬아와 26기 심수아마저 실패한 가형 던전의 클리어를 A급 법사에 불과한 서윤이 자력으로 달성할 순 없다는 입장이었다.

“아니. 하지만 네가 도와주면 가능하지 않을까?”

“뭐?”

태주가 생각지도 못한 팀플레이 제안에 두 귀를 의심했다.

“게다가 우린 이미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손발이 잘 맞을 거 아니야.”

본색과 함께 드러낸 새하얀 치열과 그 의미심장한 미소 속에 감춰진 최초 클리어에 대한 야망.

성적에 민감한 서윤이 친구에게조차 비밀로 할 법한 힌트 보유 사실을 태주에게만 밝힌 궁극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동맹이었다.

“글쎄. 제안 자체가 별로 끌리진 않는데?”

물론 독식과 독주에 대한 적응기를 마친 태주가, 심지어 자신의 일방적인 화력 지원이 예상되는 서윤의 팀플 제안을 무작정 환영할 리 없었지만.

“더구나 보스전까지만 가도 A+면, 굳이 클리어에 집착할 필요도 없잖아.”

서윤의 말을 인용한 태주가 불필요한 수고임을 강조하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아니지. 아까 교수님이 했던 말 기억 안 나? 적당히 하지 마라. 최선을 다해라. 그럼 최소한 보스를 잡기 위한 노력이라도 해야지. 안 그래?”

동맹의 명분이 필요했던 서윤이 태주의 한계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함 교수의 말까지 끌어다 설득에 활용했다.

“그래야지.”

“뭐야, 내가 지금 너한테 묻어가려는 거 같아서 그래?”

태주의 시원찮은 반응을 접한 서윤이 뾰로통한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아니. 네가 아니라 내가 묻어갈까 봐 그래.”

“뭐?”

이번엔 태주의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서윤의 두 귀를 의심케 했다.

“함 교수님의 오해를 실력으로 반박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럼 나 때문에 운이 좋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지.”

“……?!”

거절의 이유를 자신의 손해가 아닌 상대의 자존심 회복에서 찾은 태주가 배려심으로 포장된 언변으로 서윤의 말문을 막았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함 교수님이 틀렸다는 걸 보여줘. 나도 네 말대로 최선을 다할 테니까.”

서윤의 코앞에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 태주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전방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 스킬 『점멸』이 발동되었습니다.

“아니, 저기, 태……. 하아.”

함 교수에게 그랬듯 태주의 무심한 뒷모습을 향해 또 한 번 손을 뻗은 서윤이 부르다 만 이름을 뒤로한 채 단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지만, 동맹은 서로 주고받을 게 있을 때만 성립하는 거란다.’

서윤으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난 태주가 제안자의 자격 미달을 지적하며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 “야 이 씨! 뭐야 이거!”

- “야! 뒤에! 뒤에!”

뒤쪽에서 들려오는 동기들의 어수선한 외침들.

전방에서 시선을 끈 뒤 뒤를 덮치는 고전적인 수법이었지만, 고전적이라는 것은 곧 오래전에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드디어 나왔구나.’

족보에 기술된 선배들의 후기를 바탕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했던 터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것도 없이 소리만 들어도 후방에서 전개되고 있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 “야, 인간적으로 뒤에서 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 “인간이 아니라 그런가 보지.”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함정에 당황한 학생들이 이미 지나친 구멍에서 등장한 몬스터들의 기습에 심각한 대미지를 입고 있었다.

‘몸도 풀 겸 공격 포인트나 좀 쌓아볼까?’

▶ 체이싱 애로우[C]를 선택하셨습니다.

던전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활을 세운 태주가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한 뒤 활시위를 당겼다.

쉬이익!

쿠아아아!

목표물을 놓치는 법이 없는 태주의 예리한 화살촉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몬스터의 미간을 관통했다.

“……?!”

동기들을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 의도적으로 뒤쳐져 있던 녀석들과 달리 클래스에 맞는 위치 선정을 위해 후방으로 물러나 있던 양궁 선수 출신의 A급 궁수 손은재가 눈앞의 적을 대신 제거해 준 태주의 완벽한 지원 사격에 놀란 눈으로 돌아봤다.

“…….”

궁수 모임의 의리로 도움을 준 것이라 여긴 은재가 엷은 미소와 함께 화살통을 뒤적이던 손을 태주에게 들어 보이며 말없이 감사를 표했다.

‘점수도 얻고 이미지도 챙기고, 완전 일석이조네.’

물론 은재의 착각과 달리 태주는 후방에 빠져 있는 원딜들을 지켜야 중후반을 버틸 수 있다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한 명의 궁수라도 더 살려보자는 의도였지만.

“…….”

은재와 눈이 마주친 태주가 남들 모르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 손짓했다.

“…….”

태주의 신호에 고개를 끄덕인 은재가 활을 내린 뒤 황급히 자리를 이동했다.

‘이제 한 명 남았네.’

가형 던전에 도전한 궁수의 숫자는 태주를 포함해 총 3명.

회귀 전, 피크닉의 멤버였을 만큼 탄탄한 기본기를 가진 은재부터 1순위로 구해낸 태주가 상대적인 실력에서 밀리는 A급 궁수 최희범을 차순위로 살리기 위해 다시 한번 활시위를 당겼다.

‘미안하지만, 좋아서 살려주는 거 아닙니다.’

쉬이익!

태주의 손끝을 떠난 화살이 궁수 클래스의 유일한 재수생이자 태주에게 도전한 대가로 벌금과 함께 잡무까지 떠안게 된 희범의 어깨 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 몬스터의 아가리에 명중했다.

꾸웨엑!

“아이, 깜짝이야!”

화살에 맞은 건 몬스터였지만, 오히려 화살이 일으킨 바람에 식겁한 희범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야, 놀랐잖아.”

다른 녀석이 그랬다면 그 즉시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10000점 사건 이후 태주의 앞에서만큼은 납작 엎드린 채 지내고 있는 터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소극적으로만 항의하는 희범이었다.

‘역시 사람은 쉽게 안 변하네.’

물론 태주가 자신을 돌아보는 희범의 원망스러운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건 요령을 피우는 성격인 희범이 은재와는 다른 의도로 후방에 빠져 있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챘기 때문이지만.

“거기서 뭐 해. 시작한 지 5분 만에 죽을 거야?”

쉬이익! 쉬이익!

동기들을 앞세운 채 뒷걸음질 치고 있는 희범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헛웃음이 나온 태주가 후방에서 활개 치는 적들을 잡아내며 소리쳤다.

“어? 어, 알았어!”

태주의 곁에서 이미 엄호 사격을 하고 있는 은재를 발견한 희범이 대답과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내달렸다.

바로 그때.

[사망으로 간주하여 테스트가 종료됩니다.]

- “안 돼!”

F가 확정된 첫 번째 탈락자의 절규를 시작으로 총 4명의 응시자들이 방심을 이용한 함 교수의 노련한 함정을 극복하지 못한 채 줄줄이 고글을 벗어야 했다.

- “에이 씨,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형이나 보는 건데.”

- “아아, 내 학점!”

때늦은 후회와 함께 아쉬움 가득한 테스트를 마친 탈락자들이 하나둘 비상구로 빠져나가는 동안 전후방에서 정신없이 이루어지던 초반 교전이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제 13명 남았네.’

물론 지금까진 방심한 녀석들을 1차적으로 가려내기 위한 몸풀기 단계에 불과했을 뿐, 공벌레에서 보스전으로 이어지는 가형 던전의 진정한 무서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지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