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66화 (166/242)

166. 협상 테이블 (1)

[자폭 몬스터가 대박임. 구멍에서 공처럼 굴러 나오는데 죽이는 순간 폭발해서 광역 딜이 들어감.]

[몸을 동그랗게 만들 수 있는 벌레 몬스터가 있는데, 전투로 혼란스러울 때만 슬쩍 나타나서 롤링 어택을 함. 몸에 부딪히면 터짐. 물론 죽여도 터짐.]

‘공벌레가 이런 거였구나.’

3년 치 후기에서 추려낸 공통적인 의견들을 토대로 자폭 몬스터의 생김새와 주의 사항 등을 알아낸 태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는 두 마리이면서 한 마리임.]

[중간 보스가 너무 세서 최종 보스인 줄 알았음. 근데 최종 보스가 맞았음.]

‘으음?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또 다른 주의 사항이 없는지 살펴보던 태주가 보스전의 후기를 담은 수수께끼 같은 코멘트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드 중반에 보스몹이 나오는데, 대미지가 누적되면 알아서 도망침. 근데 그놈이 막판에 또 나옴. 물론 2페이즈로 넘어갈 때 외적인 변이가 일어나고 무지막지하게 강해짐.]

‘아아, 두 마리이면서 한 마리라는 게 이런 뜻이구나.’

초반부에 심어둔 후방 기습에서부터 보스의 등장 패턴까지 상세히 파악하고 나니 가형 던전이 주는 막연함과 불안함으로부터 확실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알고도 못 깬다는 함 교수의 던전답게 방심은 금물이었지만.

*

*

*

3일 뒤, 토요일 오후.

인턴십 논의를 위한 7시 모임을 앞둔 태주가 예정보다 일찍 호텔 로비에 나타났다.

‘역시 아무 데서나 안 모이네.’

협회장으로부터 전달받은 약속 장소는 5성급 호텔 안에 위치한 고급 중식당이었다.

‘너무 빨리 왔나?’

자신이 주인공인 자리였지만, 참석자 개개인의 면면이 워낙 거물급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서두른 감이 없지 않았다.

‘뭐, 20분 정도야.’

시계를 확인한 태주가 느긋해진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

바로 그때.

‘으음?’

심상치 않은 마력이 접근하고 있는 것을 느낀 태주의 고개가 나침반의 바늘처럼 저절로 돌아갔다.

‘어?’

태주의 시야에 들어온 익숙한 얼굴.

‘왜 이렇게 일찍 왔지?’

각성자의 정체를 확인한 태주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아레나의 이동규 대표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왔어요?”

늘 그렇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띤 이 대표가 태주의 인사에 화답했다.

“그나저나 주인공이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에요?”

“기다리시게 하는 거보단 기다리는 게 더 편해서요.”

띵!

이 대표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스르륵 열렸다.

“아 참, 내가 남긴 명함은 잘 받았어요?”

엘리베이터에 먼저 오른 이 대표가 2층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네.”

▶ 선택한 물품을 소환하시겠습니까? (Y/N)

안 그래도 명함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던 태주가 하 대표를 통해 전달받은 정진천의 명함을 기다렸다는 듯이 꺼냈다.

“아무도 못 가져가게 아주 잘 보관하고 있었네요.”

태주의 인벤토리 능력을 코앞에서 목격한 이 대표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손에 들린 명함을 내려다봤다.

“명함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죠?”

“네.”

“그럼 혹시 거기 적힌 연락처로 전화해 봤어요?”

“아니요. 그전에 확인할 게 있어서요.”

명함을 남긴 이유와 그 위에 그어진 붉은 사선의 의미가 궁금했던 태주가 이 대표에게 명함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 그거요. 그건 정진천과의 고용 계약이 해지됐다는 의미로 그은 거예요. 연락처는 주고 싶은데, 예전 명함을 그냥 주면 여전히 아레나의 소속인 줄 착각할까 봐.”

이 대표가 매직으로 거칠게 그어진 빨간 줄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명함은 모르는 번호가 떴을 때 안 받을까 봐 미리 저장해 두라고 남긴 거고요.”

명함을 두고 간 이유에 대해 입을 연 이 대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띵!

“일단 가면서 얘기할까요?”

첫 방문인 태주와 달리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기 무섭게 왼쪽 길로 들어서는 이 대표였다.

‘여긴 나만 처음이겠지?’

이곳에 오기 전, 해당 중식당의 메뉴를 검색해 본 태주는 한 그릇에 3만 원씩 하는 짜장면과 10만 원에 육박하는 탕수육 대자의 가격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일주일 전에, 그러니까 삼강에서 보기 며칠 전에 전화가 한 통 왔어요. 태주 씨와 따로 붙어 보고 싶은데, 허락해 주실 수 있냐고.”

“정진천 씨가요?”

“네.”

“당사자는 전데, 왜 대표님께 허락을 구하는 거죠? 말씀하신 대로 더 이상 아레나의 소속도 아닌데.”

대결을 승낙한 적이 없는 태주의 입장에선 정진천의 도전 의지만큼이나 거슬리는 보고 체계였다.

“본인도 아는 거죠. 두 사람의 대결이 두 사람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수험생에게 제대로 망신을 당한 사람이 할 걱정은 아니었지만,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태주의 패배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그 파급력은 단순한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으로까지 번질 수 있었다.

물론 잃을 게 없는 사람과의 이겨야 본전인 싸움을 벌일 만큼 태주의 판단력이 흐리진 않았지만.

“누가 들으면 이미 성사된 대결인 줄 알겠네요. 제가 진다는 걸 전제로 한 질문 같기도 하고.”

나란히 복도를 걷던 태주가 정진천의 주제넘은 걱정에 헛웃음을 지었다.

“웃기죠? 이미 나락을 경험한 패자가 압도적인 승자인 태주 씨를 걱정하는 게.”

“웃기다기보단 좀 황당하네요.”

“네. 그럴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정진천과의 통화 내용을 전한 이 대표 역시 태주를 따라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일단은 거절했어요.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니 정 붙고 싶으면 당사자인 태주 씨에게 직접 연락해 보라고.”

“순순히 그러겠답니까?”

“그럼 연락처라도 알려 달라 하더군요. 학교에도 한 번 전화했는데 규정상 알려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면서.”

“네? 학교로요?”

순간, 태주의 연락처를 묻는 전화가 학과 사무실로 온다 했던 조교의 말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대책 없죠? 그래서 연락처는 알려줬어요. 괜히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 헛소리만 퍼트릴 것 같아서.”

“근데 왜 아직까지 연락이 없죠?”

명함을 거둔 태주가 일주일 가까이 잠잠한 정진천의 거동에 수상함을 느끼며 물었다.

“글쎄요. 궁금하면 거기 적힌 번호로 한번 연락해서 물어봐요. 왜 연락처만 받아 가서 깜깜무소식인지.”

두 사람의 싸움을 부추기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연락을 취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정진천의 소극적인 태도가 의아한 건 이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요. 어차피 다급한 쪽이 먼저 움직이겠죠.”

단순한 호기심에 섣불리 움직였다간 대결을 승낙한 것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었다.

- “어서 오십시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말끔히 차려입은 점원이 두 사람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 “예약하셨습니까?”

“네. 이동규란 이름으로 8명이요.”

- “아, 네. 확인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VIP실로 마련해 두었습니다.”

간단한 확인 절차를 마친 점원이 두 사람을 앞장섰다.

‘아아, 이 대표님이 예약한 곳이었구……. 어? 잠깐. 왜 사람이 8명이지?’

송기철 협회장과 5대 길드의 수장들을 포함해 총 6명의 동석자만 있다고 생각했던 태주가 예정에 없던 초대 손님의 등장에 후보군을 좁혀봤다.

‘혹시 총장님께서 오시나?’

방학을 이용한 인턴십 프로그램 자체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지금으로선 최지문 총장의 참석이 가장 유력해 보였다.

드르륵!

- “실례하겠습니다.”

미닫이문을 연 점원이 두 사람을 VIP실 안으로 안내했다.

‘와아. 지름이 거의 3미터는 되겠는데?’

점원을 따라 들어선 태주가 VIP실 중앙에 놓인 거대한 원형 테이블에 시선을 빼앗겼다.

“밥상이 참 쓸데없이 크죠?”

이미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이 대표가 테이블 위에 달린 회전 선반을 시계방향으로 돌리며 말했다.

“네. 크긴 크네요.”

반면 업계를 대표하는 대선배들과의 식사 자리가 낯선 태주는 여전히 테이블 앞에 선 채 적당한 자리를 물색하고 있었다.

“왜요. 내 옆에 앉는 게 싫어요?”

태주가 상석을 피해 앉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이 대표가 옆자리에 놓인 의자를 빼며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아니요. 이왕이면 말석에 앉는 게 맞을 것 같아서요.”

“참 겸손하네요. 모름지기 실력과 인성은 반비례하는 법인데……. 굳이 따지자면 출입문과 가까운 쪽이 말석이니까 저 자리에 앉으면 될 거예요.”

자신이 뺐던 의자를 도로 집어넣은 이 대표가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 한 곳을 가리켰다.

- “식사는 천천히 준비해드릴까요?”

태주가 자리를 잡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점원이 이 대표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네. 아직 일행이 안 와서요.”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한 이 대표가 점원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 “네.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드르륵!

“…….”

점원이 문을 닫고 나가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오늘도 팔찌 차고 왔어요?”

대각선에 위치한 이 대표가 자신의 오른쪽 손목을 들어 보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네.”

태주가 테이블 밑에 감춰져 있던 오른쪽 손목을 똑같이 들어 보였다.

“피크닉에 대해 뭐 궁금한 거 없어요? 난 회원이 아닌 임원이라 학교 선배들이 모르는 것도 다 알고 있는데.”

피크닉의 핵심 인물인 이 대표가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물었다.

“궁금한 거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은 태주의 머릿속에 문득 어린 재룡을 납치한 뒤 퍼스트 에이드로 면죄부를 얻은 백승걸의 이름이 떠올랐다.

“아, 혹시 피크닉의 회원 명부나 프로필도 공유가 되나요?”

“왜요? 누구 찾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어요?”

“아니요. 그냥 어떤 선배들이 있는지 궁금해서요.”

질문의 의도를 숨긴 태주가 이 대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아아, 그냥.”

태주의 대답을 들은 이 대표가 묘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피크닉 테이블이라는 회원 전용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긴 해요.”

“네? 피크닉 테이블이요?”

회귀 전에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름에 궁금증이 더해졌다.

“아마 못 들어본 게 당연할 거예요. 피크닉 테이블엔 오직 프로의 자격을 갖춘 회원들만 가입할 수 있으니까.”

“어? 그럼 피크닉에 들어가도 학부생 시절엔 가입할 수 없다는 겁니까?”

4년간의 유예라는 생각지도 못한 자격 제한에 걸린 태주가 차별의 이유를 물었다.

“어느 단체든 조직 문화에 스며들기 위한 최소한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거든요. 특히 여러모로 미성숙한 예비 헌터들에겐 더더욱 필요한 조치고요.”

“아, 네.”

이 대표의 말에 수긍하는 척 추가 질문을 이어가진 않았지만, 사이트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과는 이룬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또 뭐 궁금한 거 없어요? 아직 10분이나 남았는데.”

답변을 마친 이 대표가 다시 한번 시계를 확인하던 바로 그때.

드르륵!

“……?!”

두 사람의 고개가 노크도 없이 열리는 문을 향해 동시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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