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신입생이 되었다-155화 (155/242)

155. 초대 (7)

“아깐 죄송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가서 그만.”

무언가 추궁할 것 같았던 분위기와 달리 염 기사의 입에선 룸미러로 힐끗거린 것에 대한 사과부터 나왔다.

“제가 기사님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나요?”

사과와는 별개로 염 기사의 의도가 궁금했던 태주가 눈길을 보낸 이유에 대해 역으로 추궁했다.

“아니요. 도련님을 도와주신 분께 어찌 그런 마음을 품겠습니까. 오해이십니다.”

“오해요? 분명 오해할 만한 눈빛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것도 오해입니까?”

염 기사의 해명이 썩 와닿지 않았던 태주가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단도직입적으로 드러내며 재차 물었다.

“도련님의 보디가드 역할을 10년 넘게 수행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만 경계하는 버릇이 나온 겁니다. 죄송합니다.”

오해의 원인이 습관에 기인한 것임을 고백한 염 기사가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태주가 아니었지만.

“네. 그 정도 기간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그 부분은 저도 이해합니다.”

“아, 너그럽게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

무사히 넘어가는가 싶었던 염 기사가 끝날 듯하면서도 끝나지 않는 태주의 집요한 물음에 순간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저는 눈빛이 아니라 눈빛을 보낸 타이밍을 말씀드린 겁니다. 재룡이가 피크닉을 언급한 순간부터 달라진 그 호의적이지 않은 눈빛을.”

“아, 저 그건…….”

태주의 날카로운 지적에 당황한 염 기사가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말끝을 늘어뜨렸다.

“평범한 헌터가 아니었다는 건 재룡이에게 들었습니다. 첫 만남이 구출 작전인 것도, 폭발물의 파편을 온몸으로 막아낸 것도.”

“……?!”

핑곗거리를 찾고 있던 염 기사의 머릿속이 말문이 막힐 만큼 하얘졌다.

“하아. 어디까지 듣고 오신 겁니까?”

체념 섞인 한숨을 내뱉은 염 기사가 눈빛 못지않게 경계심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까지가 불편한 내용이죠?”

“글쎄요. 상대에 따라 없을 수도 있고, 전부일 수도 있겠죠.”

염 기사가 태주의 구체적인 질문에 모호한 대답으로 응수했다.

“그럼 전 어느 쪽이죠?”

물론 확답을 피하려는 염 기사의 말장난에 순순히 물러날 태주가 아니었지만.

“어느 쪽이고 싶습니까?”

“어느 쪽이 됐든 들어야겠다면요?”

“하하. 역시 도련님과는 결이 다르시군요.”

태주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했던 염 기사가 태주의 당돌한 반문에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뜻이죠?”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염 기사의 발언에 태주의 상상력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혹시 치킨 게임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직접적인 답변 대신 비유를 택한 염 기사가 룸미러에 비친 태주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네. 서로를 향해 차를 몰고 돌진하다 먼저 피하는 쪽이 지는 게임 아닙니까?”

태주가 비유의 의도를 가늠해보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둘 다 직진을 택하면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지만, 어느 한쪽이라도 핸들을 꺾으면 모두가 목숨을 건지는 아주 무식한 승부죠.”

“그 말인즉슨, 기사님과 제가 지금 치킨 게임처럼 아슬아슬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겁니까?”

더 이상의 호기심은 위험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태주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요. 사실 결이라는 표현을 빌려 두 분을 비교한 건 제가 모시는 도련님의 성격이 태주 씨를 닮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던 겁니다.”

“제 성격을요?”

염 기사가 내린 뜻밖의 평가에 태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웬만해선 먼저 핸들을 꺾지 않을 것 같은 그 강단 있는 성격을 말입니다.”

“칭찬입니까?”

재룡과 달리 염 기사의 말을 100% 신뢰하진 않고 있던 태주가 호감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물었다.

“네. 특히 기세가 중요한 헌터에게 있어 배짱이 두둑해 보인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죠.”

“재룡이가 들으면 섭섭하겠네요.”

염 기사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이 의아할 수밖에 없는 태주가 차창 밖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아니요. 오히려 도련님이 더 인정하셨을 겁니다. 솔직히 대표님께서도 그렇고, 도련님 본인도 그렇고, 도련님의 강인하지 못한 성격에 대해선 늘 아쉬움을 느끼고 계셨거든요.”

“하지만 삼강의 후계자인 이상 레이드보다 경영 쪽에 무게를 둘 텐데, 그럼 차라리 리스크를 피해 핸들을 꺾는 재룡이의 성격이 더 나은 거 아닙니까?”

재룡을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염 기사의 분석이 틀렸다고 볼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맞장구를 칠 만한 내용도 아니었기 때문에 최대한 염 기사의 의견에 반박하며 재룡의 부족함을 두둔하고 나선 태주였다.

“네. 그 또한 일리 있는 해석입니다. 물론 레이드가 경영보다 더 치열하고 위험하다는 편협한 전제하에서는 말이죠.”

‘뭐야, 재룡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순간, 헌터들만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게 아니라는 말과 함께 사업을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했던 재룡의 열변이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경영도 레이드만큼이나 배포가 커야 한다는 뜻입니까?”

“레이드가 됐든 사업이 됐든, 인간이 모여 경쟁하는 곳은 어디나 목숨을 걸어야 살아남는 법입니다.”

이번엔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것이 인간의 고약한 습성 중 하나라고 했던 재룡이의 일침과 일맥상통하는 발언이 염 기사의 입을 통해 나왔다.

“막말로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게 인간의 본성인데, 하물며 피 한 방울 안 섞인 놈들이 치고 나가는 꼴을 보면, 그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12년을 같이 다녀서 그런가? 두 사람의 가치관이 거의 똑같네.’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 모두 각성자에 대한 사회적인 과대평가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네. 그러니 반인륜적인 수단도 서슴지 않았겠죠. 삼강의 경쟁 업체 대표가 어린 재룡이의 납치를 사주했던 것처럼.”

재룡의 사건을 떠올린 태주가 대화 이후 처음으로 염 기사의 사견에 동의하던 바로 그때.

“도련님께서 그러시던가요? 경쟁 업체의 대표가 납치를 사주했었다고?”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던 염 기사가 태주의 예시에 헛웃음을 지으며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아니라는 겁니까?”

“아니요. 맞습니다. 물론 가해자가 피크닉의 멤버란 사실은 모르고 계시지만.”

“……?!”

생각지도 못 한 가해자의 특이사항에 태주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서 피크닉이란 단어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던 건가?’

염 기사가 보내던 곱지 않은 시선이 피크닉 때문인 건 알게 됐지만, 그 사실만 숨긴 이유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근데 왜 지금껏 재룡이에게만 비밀로 한 거죠?”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하신 거죠.”

“대표님께서 말씀이십니까?”

“이미 아신 거죠. 도련님의 앞날이 피크닉의 영향권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헌터가 됐든 경영인이 됐든 업계에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더러워도 피크닉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겁니까?”

“때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듯, 지금처럼 피크닉에 대한 적개심이 없이 살아가는 게 도련님의 정신 건강에도 이로울 테니까요.”

“대체 그 파렴치한 가해자가 누굽니까?”

태주가 부끄러운 선배의 정체를 노골적으로 물었다.

“안 그래도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도련님도 모르시는 정보를 알려드린 것도 다 그 때문이었고요.”

“제삼자인 제가 꼭 알아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태주는 10년 넘게 덮어뒀던 비밀을, 그것도 초면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밝힌 이유가 궁금했다.

“같은 피크닉인 이상, 특히 태주 씨처럼 유능한 후배라면, 그쪽에서 먼저 접근할 수도 있으니까요.”

태주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접점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염 기사는 언제 어떠한 이유로 마주칠지 모르는 피크닉 선배를 태주가 미리미리 손절하도록 만들 작정이었다.

“바로 이 사람입니다.”

염 기사가 안주머니에서 꺼낸 사진 한 장을 뒤에 앉은 태주에게 넘겼다.

“이름은 백승걸. 당시엔 3차 각성에 성공한 S급 궁수였는데, 그 사건 이후로 모든 사업을 정리한 뒤 해외로 나갔다고 합니다. 현재는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무기 관련 사업을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요.”

“으음.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만, 인상이 썩 좋지는 않네요.”

사진 속 백승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태주가 매서운 눈매와 탁한 눈빛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근데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치곤 너무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거 아닙니까?”

가해자의 얼굴과 이름을 똑똑히 익힌 태주가 사진을 돌려주며 물었다.

“그건 녀석이 퍼스트 에이드를 발동시켰기 때문입니다.”

“네? 퍼스트 에이드요?”

“네. 피크닉의 내부 결속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사기적인 상부상조 시스템이죠.”

“하지만 자식을 잃을 뻔한 부모가 죄를 무마시키려는 시도를 손 놓고 지켜보진 않았을 텐데요.”

퍼스트 에이드의 범위가 합법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태주가 하 대표의 대처 방식에 의문을 표하며 물었다.

“신태주 씨. 그게 바로 퍼스트 에이드이고, 그게 바로 피크닉입니다.”

염 기사가 내린 정의는 간결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벼이 여길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물론 운전기사에 불과한 제가 피크닉의 중진들을 만난 대표님께서 어떠한 논의를 거쳐 사건을 덮기로 하셨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찰나의 정적으로 집중력을 극대화시킨 염 기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팩트에 위험한 추측을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그날 이후 삼강의 성장세에 날개가 달렸다는 겁니다.”

“설마 회사의 성장을 대가로 자식의 복수를 포기했다는 겁니까? 목숨을 잃을 뻔한 자식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면서까지?”

재룡이처럼 원망할 아버지는 없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은 탓에 무책임하거나 매정한 부모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유독 목소리가 격양되는 태주였다.

“아니요. 복수를 포기했다기보다 포기 당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겁니다.”

“합의 이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겁니까?”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아마도 협상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또 다른 협박을 받으셨을 겁니다. 예를 들면, 거절하는 순간 업계에서 퇴출당하거나 도련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불합리한 협박을요.”

피크닉의 영향력이 업계 전반에 미치고 있다는 것쯤은 회귀 전에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힘이 꼭 양지에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은 늘 기득권을 잡고 있는 이들에 의해 입막음되기 마련이었다.

‘자식과 자식 같은 회사의 안전을 모두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니 하 대표님의 입장에서도 다른 방도가 없었겠네.’

조금 전, 재룡의 배웅을 받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듣게 된 태주는 하 대표가 두 번째 생일을 만들 만큼 기뻐했던 또 다른 이유가 안전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폭발물 앞에서 살아난 염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듯, 각성자가 되었다는 건 곧 신체 능력과 소위 말하는 맷집의 상승을 의미했고, 이는 일반인에 비해 목숨이 질겨진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럼 가해자는 피크닉의 뒤에 숨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겁니까? 피해자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하 대표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알게 된 이후에도 태주의 목소리는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사건을 덮는다는 건 아예 없던 일로 하자는 건데, 왜 굳이 사과를 해서 죄를 인정하겠습니까.”

“하기야 상식이 통하는 인물이었으면, 애초에 그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겠죠.”

태주가 백승걸의 뻔뻔함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들은 내용은 다 비밀로 해야 되는 거겠죠? 특히 재룡이에겐?”

“모쪼록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태주에게 침묵을 부탁한 염 기사가 이번엔 의문의 카드 한 장을 뒤로 넘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