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초대 (3)
재룡의 등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해골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보여?”
고개를 돌릴 수 있을 때까지 돌린 재룡이 뒤에선 태주를 곁눈질하며 물었다.
“어. 보여. 근데 이런 건 또 언제 한 거야?”
문신에 대한 선입견은 없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고2 때. 두 번째 생일날 나에게 주는 선물로 하나 새겼어. 어때? 느낌 있지?”
“으음. 근데 해골이 좀 화난 거 같은데?”
재룡의 문신을 유심이 들여다보던 태주의 시선이 거대한 낫을 들고 다니는 서양의 저승사자인 그림 리퍼(Grim Reaper)의 해골을 모티브로 한 매서운 눈구멍에 집중됐다.
“문신의 위치도 좀 어중간한 거 같고.”
태주의 지적대로 해골은 오른쪽 등허리에 해당하는 5시 방향으로 치우쳐 있었다.
“오오, 역시 보는 눈이 있는데?”
상의를 내린 재룡이 제법이라는 눈빛을 보내며 피식 웃었다.
“사실 상처가 났던 자리에 문신을 새긴 거야.”
“상처? 힐로 말끔히 치유된 거 같은데, 굳이?”
조별 과제의 멤버였던 보르가넨의 흉터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상처에 얽힌 사연만큼은 그에 못지않을 것 같았다.
“흉터가 꼭 몸에만 남는 건 아니더라고.”
재룡이 검지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사고 당시의 충격을 말하는 거야?”
“한동안 정신과에 다녔었거든. 뭐, 그때를 잊지 않기 위해 문신을 새겼다는 거 자체가 극복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대부분 잊고 싶기 마련이었지만, 재룡은 오히려 그날의 사고로 깨달은 교훈을 언제든지 떠올릴 수 있게 시각적인 각인을 해둔 상태였다.
“아까 생명의 위협 때문에 기사님이 붙었다고 한 거 기억나?”
“어. 초중고 12년 동안.”
“사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납치를 당해서 그랬던 거야.”
“뭐? 납치?”
단순한 사고가 아님은 생명의 위협이란 표현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납치라는 중범죄가 연루되어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 문신을 새긴 자리에 있던 상처도 그때 생긴 거야?”
“어. 문신을 한 시점하고 꽤 동떨어졌지?”
시간상으로는 정확히 10년의 간극이 있었지만, 물리적인 기간보다 중요한 건 그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의 순간에 대해 잊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뭐, 그렇긴 한데, 솔직히 8살짜리의 등에 해골 문신을 새기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하네.”
어린 재룡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본 태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으로 아무 생각 없이 가고 있었는데, 웬 승합차 한 대가 옆에서 멈추더니 나를 번쩍 들어서 차에 태웠어.”
“어린 마음에 진짜 무서웠겠네.”
8살 재룡이 느꼈을 극한의 공포는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설마 처음부터 널 노리고 있었던 거야?”
“어. 경쟁 채굴 업체에서 고용한 양아치들이었는데, 날 볼모로 채굴권을 빼앗을 계획이었나 봐.”
“고작 채굴권 하나 때문에 초등학생을 납치한다고?”
납치의 목적을 알게 된 태주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후계자로서의 무게감과 각성자, 나아가 인간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드러냈던 재룡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그랬잖아. 사업은 총성 없는 전쟁이고, 죽을 고비는 헌터들만 넘기는 게 아니라고.”
재룡이 태주의 반응에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당사자가 눈앞에 버젓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구출되었다는 사실은 자명했지만, 때론 결과보다 경과가 더 궁금한 사건도 있는 법이었다.
“10년 전 삼강은 던전 채굴 사업의 신흥 강자로 급부상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S급 게이트를 낙찰 받을 가능성이 높은 메이저 길드와의 채굴권 계약은 모든 경쟁사들의 선결 과제이자 궁극적인 목표였거든.”
“그러다 결국 과열된 경쟁의 희생양이 된 거구나.”
“회사의 명운이 걸린 만큼 로비면, 로비, 네거티브면 네거티브, 한마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격적인 경영 방침이 당연시되고 있었으니까.”
“그럼 채굴권 포기의 대가로 네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거네?”
“아니. 아버지는 채굴권을 포기하지 않으셨어.”
“……?!”
예상치 못한 전개로 리액션이 고장난 탓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태주였다.
“내가 좀 전에 기업인에겐 자식이 둘이 있다고 했었지? 물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고 하지만, 아버지에게 있어 삼강은 깨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자부심 그 자체였거든. 뭐, 친자식은 하나라도, 탄생 순서는 내가 동생이라 당연한 거 같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지? 근데 그게 사업이고 경영자의 마인드야. 물론 모든 오너가 동일한 선택을 내리진 않겠지만.”
“아버지를 원망하진 않아? 솔직히 채굴권 계약이야 언제든지 다시 딸 수 있지만, 자식의 목숨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거잖아.”
공교롭게도 하 대표와의 첫 만남을 앞두고 인간적인 실망부터 하게 된 태주였다.
“원망하지. 근데 아버지가 어느 날 그러시더라. 당장엔 채굴권 하나만 포기하는 것 같지만, 상대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다시 말해, 협박이 먹히는 순간, 다음에도 협박, 그 다음에도 협박, 계속 협박, 협박, 협박…….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끌려만 다니다 끝난다고. 그래서 자식이 약점인 걸 들키지 않게 더 강하게 대응하신 거라고. 어때. 핑계가 그럴듯하지?”
재룡이 나란히 걷고 있던 태주를 돌아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한마디로 네가 약점인 게 드러나면, 채굴권을 포기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구출을 포기하셨다는 거야? 널 지키기 위해?”
하 대표의 깊은 뜻을 머릿속으로 이해했다 한들 마음으로까지 납득되는 건 아니었다.
“따로 구조대를 보내긴 하셨거든.”
“구조대?”
“어. 혹시 머니 길드라고 들어봤어?”
“머니 길드?”
아직 진도를 나가진 않았지만, 회귀 전, 헌터의 역사 시간에 배웠던 내용 중 하나라 이름을 듣자마자 길드의 특징이 바로 떠오른 태주였다.
“그거 돈만 주면 뭐든지 다하는 길드를 뜻하는 말 아니야?”
태주의 말대로 머니 길드는 특정한 길드의 이름이 아니라 본업인 레이드 이외에 돈이 되는 일이라면 불법적인 의뢰도 불사하는 맹목적인 길드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맞아. 페이가 좀 세긴 하지만, 절차와 법규를 중시하는 공권력과 달리 거침이 없고, 일처리 하난 확실한 부류들이지. 나도 그 덕분에 구출된 거고.”
“그래도 완전히 손을 놓진 않으셨네.”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지. 삼강을, 그리고 인간 하도철을 협박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구출 과정이 꽤 처참했나 봐?”
협상이 아닌 반격을 택한 하 대표의 성격상 범인들을 그대로 경찰에 인계하라 지시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납치범들을 죽이진 않았는데, 차라리 죽여 달라고 소리치는 건 똑똑히 들었어.”
“그럼 그 광경을 너도 목격한 거야?”
“아니. 내 트라우마를 걱정한 기사님이 눈부터 가려주셔서 직접 보진 못했어.”
“으음. 그나마 다행이……. 뭐? 기사님?”
스토리에 묻혀 흘려들을 뻔했던 뜻밖의 키워드에 정신이 번쩍 든 태주였다.
“어. 날 12년 동안 등하교시킨 기사님이 바로 그때 그 머니 길드의 수장이었거든.”
순간, 원래 직업은 헌터였다고 했던 재룡의 말이 불현 듯 스쳐갔다.
“그럼 너희 아버지께서 아예 구출에 성공한 헌터를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고용하셨던 거야?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어. 나도 물론 좋다고 했었고.”
“꽤 실력자였나 보네.”
“초기 각성은 나처럼 B급이었는데, 2차 때 A급이 되고, 3차 각성 때 S급이 됐대. 클래스는 전사고.”
똑같이 3차 각성에 성공한 S급 헌터라고 해도, 초기 각성이 S급인 경우와 B급인 경우는 엄연히 달랐지만, 경험적인 측면에선 어느 한쪽이 부족하다고 볼 수 없었다.
“그래? 그럼 초기 각성도 같고, 클래스도 같으니까 배울 점이 많겠네.”
“안 그래도 각성자 판정을 받은 이후부턴 틈틈이 검술 지도를 받았었어. 뭐, 입시 학원에서 따로 배운다는 핑계로 거르기 일쑤였지만.”
따로 학원에 다닐 여력이 없었던 태주는 협회장의 추천서로 운 좋게 헌터학과에 응시했지만, 초기 각성에 성공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헌터학과로의 지원을 목적으로 한 입시 학원에서 원하는 클래스에 대한 훈련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쩐지.’
헌터와 빌런을 나눠 진행했던 가상의 레이드 당시, 태주는 롱소드를 휘두르는 재룡의 무난한 기본기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적이 있었다.
“아무튼 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조가 되는가 싶었는데, 막판에 몰래 숨어 있던 양아치 새끼 하나가 사제 폭탄을 던지는 바람에 커다란 파편이 박혔었어. 문신은 바로 그 위에 새겨진 거고.”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원래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기사님이 몸으로 막아주신 덕분에 이 정도로 끝났던 거야.”
“그럼 기사님도 많이 다치셨겠네.”
“아저씨가 기사로 고용된 결정적인 계기였지. 뭐, 기사님께선 나를 무사히 데려가야 수고비를 받을 수 있어서 그랬다고는 하셨지만.”
진심인지 알 수 없는 기사의 현실적인 고백을 회상하던 재룡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근데 문신은 왜 그렇게 살벌한 걸로 골랐어? 어떻게 보면, 목숨과 맞바꾼 행운의 상처로 볼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이 안에 화가 좀 많거든.”
재룡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명치를 가볍게 토닥였다.
“뭐, 너무 복합적인 감정이라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구차하지만, 그냥 다른 그림은 눈에 안 들어왔어.”
“하긴, 본인 몸인데, 본인 마음이 제일 중요하지. 잘했어.”
해골 문신을 택한 이유에 대해선 끝끝내 듣지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미루어보아 그 결단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순 있었다.
“와아, 너랑 얘기하니까 시간이 진짜 빨리 가는 거 같아.”
어느덧 회장실에 다다른 재룡이 특유의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던 바로 그때.
“오셨습니까?”
회장실 앞에 자리하고 있던 여비서가 조용히 일어나 재룡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네. 아버지 안에 계시죠?”
“네. 근데 손님이 한 분 와 계십니다.”
“네? 손님이요?”
선약이 없다고 알고 있던 재룡이 비서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