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동아리 (6)
“네, 선배님.”
문을 열어주었던 선배가 약속된 절차를 이행하듯 스위치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
그에 반해 신입생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려고 그러지?’
이는 회귀자인 태주마저 처음 겪는 일이었다.
탁!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을 뜨고 있는 것과 감고 있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면접이 시작된 것이다.
‘면접관은 각 학년에서 한 명씩 뽑았네. 진행요원은 2학년이고.’
불이 꺼지기 직전의 광경을 떠올리던 태주가 한 공간에 있던 선배들의 기수를 단번에 구분했다.
물론 수업을 같이 듣고 있는 4학년 선배나 회귀 전, 인사 교육을 위해 기계적으로 외웠던 2학년 선배와 달리 3학년 선배의 얼굴은 많이 낯설었지만.
“한 명은 늦는답니다.”
출입문 옆에 위치한 스위치를 내렸던 2학년 선배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알았어.”
이번엔 가운데 앉은, 다시 말해, 불을 끄라고 했던 4학년 선배의 대답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일단 오느라 수고했어.”
진행요원의 보고를 받은 4학년 선배가 신입생들에게 뒤늦은 첫인사를 건넸다.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무표정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딱딱한 목소리였다.
“아닙니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위축된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쫓기듯이 대답했다.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경직된 표정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긴장된 목소리였다.
“난 피크닉의 25대 회장인 민주엽을 대신해서 온 4학년 조성빈이야.”
가운데 앉아 있던 선배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래도 나름 부담은 느꼈나 보네.’
태주는 혈연에 의한 부정 선발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민주엽이 이번 기수의 면접 과정에서 아예 손을 뗀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두 사람은 차기와 차차기 회장이 될 에이스 중의 에이스들이고.”
성빈이 함께 면접을 진행하게 될 2, 3학년 대표를 뒤이어 소개했다.
“안녕. 난 3학년 심수아야.”
“난 2학년 배현우.”
성빈의 양옆에 위치한 두 사람이 클래스와 등급을 생략한 자기소개를 간략히 마쳤다.
“그리고 저기 뒤에 있는 선배는 2학년 류근석이야. 내 동기.”
배현우가 문 옆에 있던 진행요원의 정체를 대신 소개했다.
“자, 그럼 우리 소개는 끝났으니까 이제 너희들 목소리나 한번 들어볼까?”
성빈의 시선이 첫 번째 의자 앞에 서 있던 서윤에게로 옮겨졌다.
물론 불이 꺼진 탓에 누가 누굴 보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금서윤.”
신입 부원의 프로필을 이미 파악하고 온 성빈이 마치 출석 체크를 하듯 서 있는 순서를 떠올리며 차례대로 호명했다.
“네.”
“A급 법사 금서윤……. 사실 널 뽑을 땐 고민이 좀 많았어.”
“……?!”
대엽의 선발 여부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자신이 뽑히는 것에 대해선 확신을 가지고 있던 서윤이 면접관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고백에 화들짝 놀랐다.
“매직 아처로의 전직을 시도하고 있다며?”
“네?!”
불을 끈 것이 다행일 만큼 표정 관리에 실패했던 서윤이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또 한 번 당황했다.
“물론 이례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만에 하나 전직에 성공하면 법사 클래스는 없어지고, 궁수만 둘이 되는 거잖아.”
“아니요. 그건 그냥 수업 시간에 도전의 의미로 발표했던 거지 매직 아처로 전직할 때까지 무조건 매달리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기간도 1년만 투자하겠다고 했던 거고요.”
행여나 달성하지도 못한 목표 때문에 면접에서 탈락할까 두려웠던 서윤이 보이지 않는 손사래까지 치며 격하게 부정했다.
“그래? 그럼 앞으로도 계속 법사로 남겠다는 거야?”
“네.”
욕심에 의한 도전이었을 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조차 막막했던 서윤이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선배의 질문에 결국 매직 아처로의 전직 시도를 포기했다.
“좋아. 그럼 예비 후보에 대한 얘기는 잠시 접어두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한고비를 넘긴 서윤이 자신도 모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음. 허창민.”
성빈이 서윤의 옆에 서 있던 창민의 이름을 불렀다.
“네.”
“S급 전사 허창민……. 피크닉의 회장은 대대로 S급 각성자가 맡고 있어. A급 전사인 난 입후보조차 할 수 없는 아주 높은 자격 요건이지.”
자신의 클래스와 등급을 자연스럽게 밝힌 성빈이 회귀 전, 28대 회장을 지냈던 창민에게 피크닉의 전통을 알려줬다.
“물론 S급이 한 명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지금처럼 한 기수에 두 명 이상의 경쟁자가 존재할 땐 실력으로 회장을 결정하게 돼. 그래서 우리 기수도 S급 어쌔신인 민주엽과 S급 법사인 공슬아가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거고.”
태주와 창민의 맞대결을 암시하는 성빈의 예시에 일순간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자신 있어?”
“네?”
“회장이 될 자신이 있냐고.”
창민의 속마음이 궁금했던 성빈이 경쟁에 대한 의지를 노골적으로 확인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금서윤 못지않게 자존심이 강한 창민이 쉽게 물러설 마음이 없다는 것을 모호한 대답으로 대신했다.
“모르겠다라…….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나 보네.”
창민의 의도를 읽어낸 성빈이 헛웃음을 지었다.
“뭐, 본인이 더 잘 알겠지만, 지금으로선 신태주의 당선 가능성이 99퍼센트 이상이야. 미안하지만, 나머지 1퍼센트 미만의 낙선 가능성 중 신태주가 자발적으로 사퇴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으음.”
창민의 당선 확률을 가늠해보던 성빈이 나머지 말을 아꼈지만, 말끝을 흐린 것이 무의미할 만큼 무슨 말이 이어질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제가 자력으로 회장이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말씀이십니까?”
창민 역시 서윤과 마찬가지로 불을 끈 것이 다행일 만큼 표정 관리에 실패한 상태였다.
“어. 하지만 난 누구의 편도 아니야. 그냥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객관적인 양상이 그렇다는 거지.”
“…….”
객관적이라는 말에 더욱 자존심이 상한 창민이 대선배인 성빈이 있는 곳을 매섭게 노려봤다.
“지금 눈으로 욕하고 있지?”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성빈의 눈치에 흠칫 놀란 창민이 억울하다는 말투로 황급히 발뺌했다.
“자, 그럼 이제 한유리?”
더 이상의 추측을 자제한 성빈이 세 번째 멤버인 유리를 지목했다.
“네.”
“A급 힐러 한유리……. 혹시 축구 좋아해?”
“예? 축구요? 어어,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어떻게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성빈의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고민을 하던 유리가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성의 있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힐러와 골키퍼의 세 가지 공통점이 뭔지 알아?”
“예? 힐러와 골키퍼의 세 가지 공통점이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생소한 비교 대상에 머릿속이 하얘진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첫째, 팀에 없어서는 안 된다. 둘째, 실력에 따라 팀의 승패가 결정된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잘해야 본전이다.”
“아아,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두 직업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던 유리가 성빈의 명쾌한 해설에 강한 공감대를 드러냈다.
성빈의 말대로 힐러의 경우 귀족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큼 공대를 구성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구성원이자 레이드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클래스였지만, 축구의 골키퍼처럼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포지션을 차지한 탓에 힐러가 된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 만큼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포지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몬스터를 직접적으로 잡는 위치가 아니다 보니 딜러나 탱커들에게 승리의 공을 빼앗기는 그림자 같은 클래스이기도 하거든. 한마디로 들러리가 되는 것을 못 참는 성격이면, 힐러만큼 보람 없는 클래스도 없는 셈이지.”
표현은 달랐지만, 서윤에게 그랬듯 유리에 대한 질문 역시 전직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일종의 떠보기였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평생 힐러로 남을 자신이 있어?”
물론 성빈의 우려와 달리 최고의 힐러가 되는 것이 목표인 유리에겐 너무나도 쉬운 질문이었지만.
“네.”
어둠에 익숙해진 유리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좋아. 이번엔 황건우.”
유리의 목소리에서 진정성을 느낀 성빈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학생을 호명했다.
“넵!”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건우가 앞선 동기들과 달리 방 안이 울릴 만큼 우렁차게 대답했다.
“A급 무투가 황건우……. 파이팅이 넘치는 걸 보니 웬만해선 긴장을 안 하는 타입인가 봐?”
“아닙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합숙 생활을 했던 탓에 선배들이 질문을 하면 습관적으로 대답 소리가 커져서 그런 겁니다. 죄송합니다.”
권투 선수 출신으로 선배들의 눈치를 보는 것에 익숙했던 건우가 건방진 후배로 찍히지 않게 황급히 해명했다.
“죄송하긴. 막말로 대답을 씹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여긴 친목을 위해 모인 동아리지 성적을 내는 것이 목적인 운동부가 아니야. 다시 말해,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는 있어도 이유 없는 부조리는 없다는 뜻이지.”
“감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인간적인 입단식이 존재할 것이란 음모론을 제기했던 건우가 피크닉의 이성적인 분위기를 가장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피크닉엔 개개인의 효율적인 성장을 돕기 위한 직속 선후배 간의 도제 시스템이 있어.”
“어? 도제식이면 선배의 노하우를 1대1로 배울 수 있다는 겁니까?”
“어. 네 경우엔 S급 무투가이자 내 옆에 앉아 있는 배현우가 스승이 되는 거지.”
성빈이 2학년 대표로 참석한 현우의 클래스와 등급을 건우에게 공개하며 말했다.
“물론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하는 바람에 저 뒤에 있는 A급 궁수, 류근석의 입지가 좀 애매해지긴 했지만.”
성빈은 A급 궁수인 근석이 S급 매직 아처인 태주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신태주?”
“네.”
“왜 이렇게 늦었지?”
“쪽지에 적힌 문구 때문이었습니다.”
불을 끄기 전에, 아니, 7시를 넘겼을 때 바로 나와야 했던 상식적인 질문이 늦어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쪽지에 적힌 문구? 아아, 선후배와 동기를 위해 희생할 수 없는 자는 돌아가라는 그 문구? 그래서 다 같이 혼날 생각으로 끝까지 동기를 기다린 거야? 선배들을 1시간 넘게 바람맞히면서까지?”
“죄송합니다.”
“아니. 오히려 다섯 명만 제시간에 들어왔으면 더 실망했을 거야. 잘했어.”
태주의 예상대로 성빈은 지각을 한 사실 자체에 대해선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대엽이가 민주엽의 동생인 건 다들 알고 있지?”
“네.”
“그럼 선발 과정에 의혹을 품은 사람도 당연히 있었겠네?”
“……?!”
별다른 고민 없이 대답하던 아이들이 성빈의 민감한 추측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좋아. 그럼 아직 당사자가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너희들에게 어쌔신 멤버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줄게. 석연치 않은 선발 과정에 얼룩진 불명예스러운 기수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아이들의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한 성빈이 어둠 속에 감춰진 새하얀 치열을 드러내며 물었다.